시드니(Reuters) – National Australia Bank(이하 NAB)가 호주 내 기술·엔터프라이즈 운영 부문에서 410명을 감원하고, 인도와 베트남에 127개의 신규 일자리를 창출한다고 은행 대변인이 밝혔다. 이번 발표는 호주 금융산업노조(Finance Sector Union·FSU)가 최초로 공개한 구조조정 계획을 공식 확인하는 형태다.
2025년 9월 10일, 로이터 통신 보도에 따르면 NAB의 이번 인력 재편은 경쟁사 ANZ 그룹이 하루 전 3,500명 감원을 발표한 지 불과 24시간 만에 나왔다. ANZ의 신임 최고경영자 누노 마토스(Nuno Matos)는 조직 단순화와 중복 업무 제거를 위해 대규모 감원을 단행하겠다고 밝혔으며, NAB도 비슷한 재구조화를 택한 셈이다.
NAB 주가는 수요일(현지시간) 오전 1.2% 상승한 43.29호주달러(A$)에 거래됐다. 반면 S&P/ASX200 1 (호주 증시를 대표하는 시가총액 가중지수)는 보합권에 머물렀다.
NAB는 성명에서 “우리가 영위하는 사업 환경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으며, 고객에게 최상의 가치를 제공하려면 올바른 구조와 적합한 기술·역량을 적재적소에 배치해야 한다”고 밝혔다. 은행 측은 동시에 호주 국내에서도 별도의 기술 직무를 신설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금융산업노조의 웬디 스트리츠(Wendy Streets) 위원장은 “이틀 연속 호주를 대표하는 두 대형 은행이 인력을 줄이는 상황은 실망스럽다”고 말했다.
“먼저 ANZ, 그리고 이제 NAB다. 은행들이 도미노처럼 칼을 휘두르고 있다.” – 웬디 스트리츠 FSU 위원장
그녀는 또 “이번 감원은 은행의 성공을 가능하게 만든 사람들에게 파괴적 결과”라고 비판했다.
용어 해설 및 배경
S&P/ASX200 지수는 호주 증권거래소에 상장된 시가총액 상위 200개 기업으로 구성된 주가지수로, 한국의 코스피200과 유사하다. 이 지수의 등락은 호주 증시 전반의 투자심리를 가늠하는 대표적 척도로 쓰인다.
엔터프라이즈 운영(Enterprise Operations)은 금융기관의 내부 프로세스·시스템을 총괄해 효율성을 높이는 부서를 의미한다. 여기에는 백오피스 업무, 디지털 채널 관리, IT 인프라 운용 등이 포함된다. 최근 글로벌 은행들은 비용 절감을 위해 해당 부문을 인건비가 상대적으로 낮은 해외로 이전하는 추세다.
기자 관점·시사점
이번 NAB의 인력 재배치 결정은 글로벌 대형은행들이 채택해 온 ‘오프쇼어링(offshoring)’ 전략과 궤를 같이한다. 특히 AI·클라우드 전환으로 단순 업무가 축소되면서, 고임금 국가에서는 감원이, 저임금 국가에서는 채용이 이루어지는 이중 구조가 심화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NAB 주가가 감원 발표에도 상승했다는 사실이다. 시장은 비용 절감과 수익성 개선 효과를 선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단기 주가 상승이 사회적 비용과 조직 문화의 약화를 상쇄할 수 있을지에 대한 논란은 계속될 전망이다.
또한 ANZ와 NAB가 불과 하루 차이로 대규모 감원 계획을 공개했다는 점은, 호주 은행권 전반의 구조조정 압박이 상당히 거세졌음을 시사한다. 이는 고금리·저성장 국면에서 수익성 방어를 위한 비용 혁신이 시급해진 결과로 해석된다. 향후 다른 대형 금융기관으로 구조조정 바람이 확산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노조의 강력한 반발이 예상되는 가운데, 은행들은 비용 절감과 ESG 경영 간 균형, 그리고 고용 안정이라는 사회적 책무 사이에서 해답을 찾아야 한다. 특히 AI 도입 속도가 빨라질수록 단순·반복 업무는 줄어들 것이며, 직원들은 재교육(reskilling)·업스킬링(upskilling)을 통해 고부가가치 영역으로 이동해야 한다.
결국 이번 사건은 ‘글로벌 인력 재배치’가 하나의 불가역적 트렌드임을 재확인시켰다. NAB와 ANZ 사례는, IT와 금융이 융합되는 디지털 전환 시대에 기업과 노동시장이 어떻게 재편되는지를 보여주는 축소판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