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국제통화기금(IMF)은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훼손될 경우 물가 기대를 통제하려는 정책적 노력이 약화돼 금융·통화·거시경제 전반에 불안정성이 확산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2025년 7월 29일, 로이터 통신 보도에 따르면, IMF는 이날 발표한 세계경제전망(World Economic Outlook·WEO) 업데이트와 Pierre-Olivier Gourinchas 수석 이코노미스트의 별도 인터뷰를 통해 이 같은 메시지를 재차 강조했다.
IMF는 보고서에서 장기화되는 무역 긴장과 관세 변화에 대한 불확실성이 고조된 현재의 경제 환경에서는 금융 안정성을 지키고 중앙은행 독립성을 확보하기 위한 강력한 정책 대응이 필수적이라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만약 관세 충격이 외환시장과 위험 프리미엄에 교란적인 변동을 일으킬 경우, 해당 국가는 일시적인 외환시장 개입이나 자본흐름 관리 조치를 시행하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모호하고 변덕스러운 환경일수록 중앙은행의 명확하고 일관된 커뮤니케이션과 법적·실질적 독립성 보장이 결정적이다.”
라고 IMF는 강조했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연방준비제도(Fed)를 향해 반복적으로 금리 인하를 요구하는 동시에 2026년 5월까지 임기가 남은 제롬 파월 의장의 리더십을 공개적으로 문제 삼아왔다.
지난 26일(현지 시각) 트럼프 전 대통령과 파월 의장은 연준 청사 리모델링 비용을 놓고 설전을 벌였으며,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도 “더 낮은 금리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거듭했다.
중앙은행 독립성(Central Bank Independence)이란?
중앙은행이 정부의 단기적 정치 압력으로부터 자유롭게 통화 정책을 결정할 수 있는 제도적·운영적 자율성을 가리킨다. 이는 1970~1980년대 인플레이션 시대를 거치며 전 세계 거시경제 운영의 핵심 규범으로 자리 잡았다.
Gourinchas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지난 40년 동안 학습된 가장 중요한 교훈 중 하나가 바로 중앙은행의 독립성 유지”라며, 직접적으로 연준을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정치권의 간섭 가능성에 우려를 표했다.
그는 “시장과 소비자는 누군가가 운전대를 잡고 물가 안정이라는 목적지를 향해 통화정책을 집행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2021~2024년 사이 기록적인 물가 상승이 이어졌음에도 시장의 중기 인플레이션 기대는 대체로 안정적으로 유지돼 디앤커링(de-anchoring) 사태는 발생하지 않았다.
Anchoring과 디앤커링은 무엇인가?
‘앵커링’은 경제 주체들이 중앙은행의 2% 내외 물가 목표를 신뢰해 앞으로의 물가 상승률을 그 수준으로 예상하는 현상이다. 반대로 디앤커링은 이 믿음이 흔들려 기대 인플레이션이 방향성을 잃고 급격히 상승·하락하는 상태를 뜻한다.
Gourinchas는 “중앙은행의 신뢰(credibility)가 흔들리면 물가와 기대 인플레이션 간 연결고리가 훨씬 더 약해진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충격이 재차 발생해 인플레이션이 급등하는데도 사람들이 중앙은행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고 판단하면, 임금 인상 요구가 물가를 더 끌어올리고, 이는 더 높은 금리와 경기 침체로 이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결국 거시경제·통화·금융 불안정이 한꺼번에 닥치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피하려면 중앙은행이 스스로의 판단에 따라 신속하게 행동할 수 있다는 확신을 시장에 심어줘야 한다.”
기자 해설
IMF의 이번 경고는 세계 각국에서 포퓰리즘 정치가 확산되면서 통화정책에도 ‘단기적 인기 몰이’가 개입될 위험이 고조된 시점에 나왔다. 특히 미국처럼 기축통화국의 중앙은행 독립성이 흔들릴 경우 글로벌 금융시장 변동성이 동시다발적으로 확대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작지 않다.
한국은행 역시 1997년 외환위기를 계기로 독립성을 제도화했으나, 물가와 성장률이 엇갈리는 스태그플레이션 국면에서 정치적 압력을 완전히 차단하기란 쉽지 않다. 전문가들은 금통위 의결 구조 개선, 의사록 투명성 강화 등 ‘실질적 독립성’을 높이기 위한 보완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결국 중앙은행이 인플레이션 파이터라는 위상을 지키려면, 정치권이 통화정책을 단기 경기부양 수단으로 삼으려는 충동을 스스로 억제하는 문화적 합의가 선행돼야 한다는 것이 이번 IMF 보고서가 던지는 함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