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런던발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니코틴 파우치 제조사에 대한 심사 요건을 완화하는 시범 프로그램을 추진하기로 했다. 내부 회의록이 공개된 것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흡연 대체 제품에 대한 규제 기조가 처음으로 완화될 조짐을 보였다는 점에서 시장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2025년 9월 19일, 로이터 통신 보도에 따르면 FDA는 그간 모든 신(新) 니코틴 제품에 대해 판매 허가 전 ‘제품별 인구‧공중보건 영향 연구’를 요구해 왔으나, 이번 시범사업에서는 일부 항목에서 해당 의무를 면제하기로 했다.
“새로운 니코틴 파우치가 실제로 흡연자를 얼마나 줄이는지에 관한 개별 효과 연구를 더 이상 제출하지 않아도 된다.”
이는 회의에 참석한 브렛 케플로(Bret Keplow) FDA 담배제품센터(CTP) 국장대행의 발언으로 확인됐다.
니코틴 파우치란 무엇인가? 니코틴 파우치는 스웨덴 ‘스너스(snus)’ 형태를 변형한 무가연 제품이다. 사용자는 작은 파우치를 입술과 잇몸 사이에 넣어 니코틴을 흡수하며, 연소 과정이 없어 타르‧일산화탄소 등 발암물질 노출을 대폭 줄인다는 점이 특징이다. ※제품 대표 브랜드로는 필립모리스 인터내셔널(PMI)의 ‘Zyn’, 알트리아의 ‘On!’, 브리티시 아메리칸 토바코(BAT)의 ‘Velo’ 등이 있다.
심사 요건 완화의 구체적 내용
이번 시범 프로그램에서 FDA는 ① 흡연 감소 효과에 대한 제품별 연구, ② 특정 연령층(청소년 포함)의 사용 가능성 예측 연구, ③ 시장 진입 후 소비 행태 추적 연구 등 복수 항목의 제출을 면제했다. 대신 “이미 축적된 일반 연구 자료와 문헌”을 활용해 위험‧편익을 평가하겠다는 방침이다.
로이터는 앞서 FDA가 니코틴 파우치 심사 속도를 ‘패스트트랙’ 방식으로 전환할 예정이라고 단독 보도한 바 있다. 이번 회의록 공개로 해당 보도의 신빙성이 더욱 높아졌다는 평가다.
완화 배경과 업계 반응
이번 조치는 세계 최대 흡연 대체 시장으로 꼽히는 미국에서 높은 진입 장벽으로 지적돼 온 ‘PMTA(Premarket Tobacco Application)’ 절차를 일부 개선하려는 첫 신호로 풀이된다. PMI·알트리아·BAT와 같은 글로벌 담배사들은 심사 지연 또는 반려로 수년간 시장 출시가 늦춰진 사례가 적지 않았다.
PMI와 알트리아는 “세부 내용 공개 전까지는 언급을 자제하겠다”고 했으며, BAT는 “과학 기반의 합리적 규제가 공중보건에 필수적”이라며 환영 입장을 밝혔다.
과학적 기준 유지 논란
회의에서 케플로 국장대행은 “시범사업 결과가 전자담배 등 다른 제품군 심사 기준 개정에도 참고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트럼프 행정부나 FDA 수뇌부로부터 과학적 기준을 낮추라는 압력은 없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FDA CTP 전직 국장인 브라이언 킹(Brian King)과 미치 젤러(Mitch Zeller)는 각각 “제품 간 니코틴 함량‧향(flavor) 차이가 사용 패턴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개별 연구 없이는 공중보건 편익을 확증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젤러 전 국장은 특히 청소년의 은밀한 사용 가능성을 문제 삼으며 “전자담배에서 이미 겪은 사태가 재현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전문가 시각과 잠재적 파급효과
러트거스대 메리 흐리브나(Mary Hrywna) 부교수는 로이터 인터뷰에서 “허가 절차 단축이 흡연자에게 ‘덜 해로운 선택지’를 넓힐 수 있다”면서도 “실제 전환 효과는 별개의 문제”라고 분석했다.
시장 분석가들은 “심사 간소화가 이미 고성장 중인 니코틴 파우치 시장의 판매량 확대를 가속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반면 컨설팅사 ARAC의 제시카 즈디낙(Jessica Zdinak) 대표는 “회의록을 보면 임상시험 일부는 여전히 요구된다”며 “기업 입장에선 여전히 상당한 시간‧자원이 필요하다”고 선을 그었다.
기자 해설
이번 시범사업은 FDA가 ‘위해 저감 제품’(MRTP) 전략을 어떻게 구체화할 것인지 탐색하는 시험대가 될 가능성이 있다. 만일 니코틴 파우치가 전자담배처럼 빠르게 보급될 경우, 과세 체계·광고 규제·청소년 접근성 등 후속 정책 과제도 급부상할 전망이다. 따라서 업계·투자자·공중보건 단체 모두 시범사업의 공식 가이드라인 공개를 주시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