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뤼셀·런던·스톡홀름—유럽연합 집행위원회(EC)가 2035년부터 신차의 내연기관 판매를 사실상 금지한 정책을 되돌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독일과 이탈리아, 그리고 중국·미국 경쟁사와의 경쟁에 시달리는 유럽 완성차업계의 강한 압력에 굴복하는 조치다.
2025년 12월 15일, 로이터통신의 보도에 따르면, 집행위원회는 화요일(현지시각) 관련 제안을 내놓을 예정이며 그 세부 내용은 발표 직전까지 EU 관료들 사이에서 조율되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이 조치는 금지 시행 시점을 5년 후로 미루거나, 혹은 무기한으로 완화하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문제의 근거가 되는 것은 2023년 제정된 법으로, 이 법은 27개 회원국에서 2035년부터 판매되는 모든 신차와 소형 상용차는 CO2 배출이 없는(즉 전기차·수소연료전지 등) 모델이어야 한다고 규정해 제조업체에 목표 미달성 시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설계됐다. 이번 수정안은 지난 5년간 유럽의 녹색 정책 기조에서 가장 중대한 후퇴로 평가된다.
“유럽집행위원회는 내연기관 금지를 폐지하는 명확한 제안을 제시할 것이다. 이는 심각한 산업정책적 실수였다”라고 유럽의회 최대 정당인 유럽인민당 대표 맨프레드 베버(Manfred Weber)가 금요일 밝혔다.
분열된 산업 반응
전통 완성차 업체인 폭스바겐과 피아트 소유주인 스텔란티스 등은 중국의 저비용 경쟁자들과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목표 완화를 강력히 요구해왔다. 반면 전기차(EV) 업계는 이번 조치가 전력화 전환에서 중국에 더 많은 우위를 내주는 결과가 될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기술은 준비되어 있고, 충전 인프라도 준비되어 있으며, 소비자도 준비되어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가?”
전기차 제조사 폴스타(Polestar) 최고경영자 마이클 로셸러(Michael Lohscheller)의 발언이다.
내연기관의 향후 지위
2023년 법은 내연기관에서 배터리·수소로의 전환을 가속화하고 목표 미달성 업체에게 벌금을 부과하기 위해 고안됐다. 목표를 달성하려면 전기차 판매를 늘려야 하는데, 유럽 제조사들은 테슬라(Tesla)와 중국의 BYD, 지리(Geely) 등과의 경쟁에서 뒤처져 있다.
유럽의 완성차업계는 전기차를 생산하고 있으나 소비자 수요가 기대에 못 미치고, 전기차가 더 비싸다는 점과 충전 인프라가 불충분하다는 점을 이유로 들고 있다. EU의 중국산 전기차에 대한 관세 완화는 이 압박을 다소 완화했을 뿐이다.
“오늘날 유럽에서 지속 가능한 현실이 아니다”
포드(Ford) 최고경영자 짐 팰리(Jim Farley)는 프랑스에서의 기자회견에서 르노(Renault)와의 협력을 발표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업계의 필요와 EU의 CO2 목표가 ‘잘 균형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EU는 이미 올해 3월 업계에 숨통을 틔워주는 조치를 승인해 자동차 업체들이 2025년 목표를 3년에 걸쳐 준수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그러나 제조업체들은 내연기관 모델을 계속 판매하길 원하며, 플러그인 하이브리드(PHEV), 레인지 익스텐더(range extender) 방식의 전기차와 함께 ‘CO2 중립’ 연료(폐식용유 등 농업 잔재·폐기물로 만든 바이오연료 포함)의 사용을 허용하길 요구하고 있다.
“다중 기술 접근법을 권장한다”
내연기관 연료 시스템 제조사 Phinia의 최고기술책임자 토드 앤더슨(Todd Anderson)은 내연기관이 “세기 말까지 남아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분열된 의견과 이해관계
전기차 업계는 이번 조치가 투자 저해 요인이 되며 EU가 중국에 비해 더욱 뒤처지게 만들 것이라고 경고한다. 충전 하드웨어·소프트웨어 제공업체인 ChargePoint의 최고경영자 릭 윌머(Rick Wilmer)는 “분명히 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자동차 업계는 2030년까지 자동차 배출량을 55% 감축해야 한다는 목표를 수년간 단계적으로 완화하고 싶어하며, 밴의 경우 50% 감축 목표를 낮추기를 원한다. 독일은 저탄소 강재 사용 등 지속가능한 관행을 CO2 감축 실적으로 인정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집행위원회는 또한 회사 소유의 차량, 특히 유럽 신규차 판매의 약 60%를 차지하는 법인용 차량의 전기차 비중을 높이는 방안도 제시할 예정이다. 업계는 의무적 목표보다는 인센티브를 원하며, 벨기에의 보조금 정책을 성공 사례로 지목하고 있다.
또한 집행위는 소형 전기차에 대해 세금을 낮추고 CO2 목표 달성에 추가 크레딧을 부여하는 새로운 규제 범주를 신설하는 방안을 제안할 가능성이 높다.
환경단체의 반발
환경운동단체들은 EU가 2035년 목표를 고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바이오연료의 공급량이 부족하고, 진정한 CO2 중립성이 확보되지 않으며, 바이오연료 공급은 비용적으로도 매우 부담스러울 것이라고 강조한다.
“유럽은 전기 중심의 노선을 유지해야 한다”
청정교통 옹호 단체 T&E의 집행이사 윌리엄 토즈(William Todts)는 “전기가 미래라는 사실은 명백하다”고 말했다.
용어 설명
본 기사에서 사용된 주요 용어의 의미를 이해하기 쉽게 정리한다. e-연료(e-fuels)는 전력(주로 재생에너지)을 이용해 합성 연료를 만드는 기술로, 기존 내연기관 차량에서도 사용 가능하나 생산비가 높다. CO2 배출이 없는 차량은 주로 배터리 전기차(BEV)나 수소연료전지차(FCEV)를 지칭한다. 플러그인 하이브리드(PHEV)는 전기 배터리로 주행이 가능하고 필요시 내연기관을 병행하는 차량이다. 레인지 익스텐더 방식 전기차는 배터리 주행이 기본이나 주행거리를 늘리기 위해 소형 엔진을 보조 동력원으로 탑재한다.
경제 및 시장 영향 분석
이번 조치는 자동차 산업과 에너지·원자재 시장에 다층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첫째, 장기적으로 전기차 전환 시점을 늦출 경우 전기차 관련 설비와 충전 인프라에 대한 투자 회수 기간이 늘어나며 일부 투자 매력이 약화될 수 있다. 이는 배터리 제조업체, 충전 인프라 사업자, 전력수요를 대비한 전력망 확충 관련 산업에 부정적 신호로 작용할 수 있다.
둘째, 내연기관 판매 연장이 허용될 경우 단기적으로 완성차업체의 재무적 부담은 완화될 수 있다. EV 전환을 위해 이미 투입한 생산 설비 전환 비용과 R&D 집행의 부담이 완화되어 가격 경쟁력 확보에 시간을 벌게 된다. 이는 소비자 관점에서 당장 차량 가격이 급등하는 것을 억제할 수 있으며, 특히 중고가·대중적 차종에서 가격 안정화 효과가 있을 수 있다.
셋째, 글로벌 공급망 측면에서는 중국산 전기차와의 경쟁이 완화되지 않는 한 유럽업체의 점유율 회복은 어렵다. 규제 완화가 중국산 EV의 유럽 시장 진입을 제한하는 실질적 해법은 아니므로, 장기적으로는 기술·원가 경쟁력 제고가 병행되어야 한다.
넷째, 환경정책 측면에서 규제 후퇴는 탄소 감축 경로에 차질을 빚을 수 있어 유럽의 기후 목표 달성 일정과 연계된 탄소시장, 에너지 전환 관련 금융상품의 가격 형성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 예컨대 탄소배출권 가격과 재생에너지 투자에 대한 기대수익률이 조정될 수 있다.
산업계와 환경단체의 갈등, 그리고 회원국 간의 정치적 힘겨루기가 결말을 좌우할 전망이다. 집행위원회가 어떤 타협안을 제시하느냐에 따라 유럽 자동차 산업의 향후 경쟁력, 소비자 가격, 그리고 기후 목표의 실행 가능성이 결정될 것이다.
향후 일정 및 관전 포인트
집행위원회의 공식 제안 발표 이후 유럽의회, 회원국 협의 과정을 거쳐 법적·정책적 최종안이 도출될 것이다. 관련 쟁점은 금지 시점의 연기 폭(예: 5년 연기), 바이오·합성연료의 인정 범위, 법인 차량 전기화 인센티브 및 소형 전기차 규제범주 신설 등이 될 전망이다. 각 회원국의 산업적 이해관계와 환경 목표 간 균형을 어떻게 맞출지가 핵심 관전 포인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