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2035년 디젤·휘발유 신차 판매 금지 규정 완화할 전망

유럽연합(EU)이 2035년부터 시행하기로 한 내연기관(디젤·휘발유) 신차 판매 금지 규정을 완화할 것으로 보인다. 관련 이해관계자들의 로비와 산업계의 반발이 작용한 결과로, 독일과 이탈리아 등 회원국 및 일부 자동차업계 단체의 압력으로 정책이 축소 조정될 가능성이 있다는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

2025년 12월 16일, CNBC의 보도에 따르면, EU 집행부가 화요일(현지시간) 중으로 당초의 강력한 규제를 완화하는 방안을 발표할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여러 매체는 이 같은 완화를 보도했으며, 유럽의회(EP) 소속의 마니프레드 베버(Manfred Weber) 의원이 독일 Bild지에 최근 해당 금지 조치가 약화될 것이라고 전한 사실도 공개됐다.

정책의 성격과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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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EU의 2035년 내연기관 신차 판매 금지 규정은 2023년 채택될 때 유럽 그린딜의 핵심 상징 정책으로 평가받았다. 이 정책은 2035년까지 승용차와 소형 화물차(밴)에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CO2)를 사실상 제거한다는 목표를 담고 있다. 그러나 최근 수개월간 자동차업계와 일부 회원국은 산업 경쟁력과 공급망의 전략적 탄력성 유지를 위해 규정 재조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해 왔다.

산업계의 우려와 로비

산업계는 이미 미국 관세, 공급망 차질, 중국 기업과의 치열한 경쟁전기차(EV)로의 전환 과정에서의 혼란 등 여러 도전에 직면해 있다. 이 가운데 원부품 제조업체(OEM: Original Equipment Manufacturer)들은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해왔다. 유럽자동차제조업협회(ACEA)의 사장급인 시그리트 드 브리스(Sigrid de Vries)는 “유연성이 시급하다”고 밝히며, “2030년이 코앞인데 시장 수요가 낮아 제조사들이 수십억 유로의 벌금을 피할 수 없을 위험”이라고 경고했다. 그녀는 링크드인(LinkedIn) 게시물에서 EU의 발표를 “자동차 패키지의 정오(High noon)”라고 묘사했다.

ACEA와 회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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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EA는 유럽에 본사를 둔 16개 주요 자동차 제조사를 대표하는 단체로, 폭스바겐(Volkswagen), BMW, 페라리(Ferrari), 르노(Renault) 등의 기업들이 포함되어 있다. ACEA 측은 충전 인프라 구축과 구매 인센티브 등 시장 형성을 위한 재정적·정책적 지원이 병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전기차 업계의 반대 입장

반면 일부 전기차 제조사와 전기차 생태계 관련 기업들은 EU가 2035년 목표를 고수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9월 중순 공개된 공개서한에는 유럽 전기차 산업의 150명 이상의 리더들이 서명했으며, 이들은 규제 도입으로 이미 수천억 유로 규모의 신규 투자가 촉발됐다고 밝혔다. 공개서한 서명자에는 볼보(Volvo), 폴스타(Polestar) 등 전기차 제조사와 소재 공급업체, 배터리 제조업체, 전력망 운영사 등이 포함됐다.

전문가 분석

네덜란드 은행 ING의 운송물류 담당 수석 섹터 이코노미스트인 리코 루만(Rico Luman)은 CNBC에 이메일로 예측된 규제 완화에 대해 “이는 산업이 직면한 어려운 시기에 단기적 선택”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이어 “목표를 뒤로 미루는 것은 위험한 전략일 수 있다”면서 “장기적으로 유럽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진 못할 것이며, 일자리도 지키지 못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루만은 특히 중국 경쟁사들과의 격차가 벌어질 위험을 지적하며, 전환 속도를 늦추면 장기적 불이익이 발생할 수 있음을 경고했다.


용어 설명

ACEA(유럽자동차제조업협회): 유럽에 본사를 둔 주요 자동차 제조사들을 대표하는 산업단체로, 정책 제안과 로비 활동을 통해 제조업의 이익을 대변한다.
OEM(Original Equipment Manufacturer): 자동차 산업에서 완성차를 생산하는 제조사를 지칭하며, 부품 공급망과 조달, 완성차 제조를 담당한다.
내연기관(Internal Combustion Engine, ICE): 연료(디젤·휘발유)를 연소시켜 동력을 발생시키는 엔진을 의미한다.
EV(전기차): 배터리와 전기모터로 구동되는 차량으로, 주행 중 배출가스는 없지만 배터리 생산과 전력공급의 탄소배출 문제 등 간접적 배출 고려가 필요하다.


정책 완화 가능성이 경제·시장에 미치는 영향

전문가들은 규제 완화가 단기적으로는 유럽 완성차업체들이 직면한 벌금 리스크를 줄이고 생산 유연성을 높일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다음과 같은 영향이 예상된다:

1) 가격 및 소비자 선택
규제가 완화될 경우 내연기관 차량의 생산과 판매가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있어 단기적으로 중고·신차 시장에서의 내연기관 차량 가격 하락 압력은 다소 완화될 수 있다. 그러나 전기차에 대한 투자 둔화는 전기차 가격 하락 속도를 늦출 수 있으며, 이는 소비자 보급률 상승을 지연시켜 장기적으로 전기차 평균 가격 하락을 저해할 소지가 있다.

2) 제조원가와 투자
OEM들이 내연기관 관련 설비와 공급망에 더 오래 투자할 경우 전환에 필요한 자본이 분산되어 배터리, 전력 인프라, 전기차 전용 플랫폼에 대한 집중 투자가 줄어들 수 있다. 이는 기술 혁신 속도를 늦추고, 결국 글로벌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3) 공급망과 무역
미국의 관세 정책, 중국 업체의 공세, 그리고 이미 보고된 공급망 차질 상황에서 규제 완화는 제조업체들에게 단기 안정을 주지만, 국제무역 구조가 전기차 중심으로 재편되는 가운데 뒤처질 위험을 증가시킨다. 장기적으로는 전기차 배터리·소재·반도체 등 핵심 공급망 확보 경쟁에서 불리한 위치에 놓일 우려가 크다.

4) 기후목표와 규제 신뢰성
규정 약화는 유럽의 기후 목표 달성 가능성을 낮추며, 규제 신뢰성 약화는 기업의 장기 투자 의사결정에 부정적 신호로 작용할 수 있다. 이는 유럽 내에서의 재생에너지·충전인프라 투자 속도를 저해할 수 있다.

정책적 고려사항
시장 수요를 높이기 위한 재정적 인센티브(보조금, 세제 혜택), 충전 인프라 대규모 투자, 배터리 제조·원료 확보를 위한 산업·무역 전략이 병행되지 않으면 단순한 규제 유예만으로는 산업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전문가들은 단기적 유예가 불가피하더라도, 명확한 전환 로드맵과 시한, 단계별 목표를 제시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지적한다.


향후 전망

EU 집행부의 공식 발표는 화요일 오후 개최될 예정인 기자회견에서 나올 것으로 알려졌다. 발표 내용에 따라 유럽 자동차 산업의 생산 계획, 투자 방향, 소비자 인센티브 설계 등이 크게 영향을 받을 것이다. 당국이 어떤 방식으로 규제를 완화할 것인지(예: 예외 조항, 더 유연한 배출 기준, 일정 연장 등)는 향후 산업과 시장에 대한 영향을 좌우할 핵심 변수다.

전문가들은 단기적인 완화는 산업의 숨통을 틔워줄 수 있으나, 전기차 전환 속도를 늦출 경우 장기적 경쟁력 약화와 기후 목표 달성 실패라는 리스크를 안게 된다고 경고한다. 따라서 정책 결정자는 산업 보호와 기후 목표 간 균형을 찾는 복합적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주요 인용
시그리트 드 브리스(ACEA): 「유연성이 시급하다. 2030은 코앞이며, 시장 수요가 낮아 제조사들이 수십억 유로의 벌금을 피할 수 없을 위험이 있다.」
리코 루만(ING): 「이는 단기적 선택이지만, 목표 연기는 장기적으로 유럽 산업의 경쟁력에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