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전쟁 이후 우크라 지원 위해 동결 러시아 자산 활용 방안 검토…몰수는 ‘현실적 어려움’

코펜하겐발 로이터 통신— 유럽연합(EU)이 전쟁이 끝난 뒤 우크라이나의 방위·재건을 지원하기 위해 동결된 러시아 자산을 어떻게 활용할지 본격적으로 검토하기로 했다. 다만 현 단계에서 자산을 즉시 몰수(confiscation)하는 방안은 정치적으로 실현 가능성이 낮다고 카야 칼라스 EU 외교·안보정책 고위대표가 30일(현지시간) 밝혔다.

2025년 8월 30일, 로이터 통신 보도에 따르면, EU는 러시아의 침공에 대응해 부과한 제재로 약 2,100억 유로(약 2,458억 달러) 규모의 러시아 자산을 동결해 두고 있다. 이 가운데 상당수는 벨기에 브뤼셀에 본사를 둔 국제 증권예탁결제기구 ‘유로클리어(Euroclear)’ 계좌에 예치돼 있다.

우크라이나 정부와 에스토니아·리투아니아·폴란드 등 일부 회원국들은 ‘즉각적 몰수→우크라 지원’ 방안을 강하게 촉구해 왔다. 우크라이나는 내년도 예산만 해도 수백억 유로 규모의 재정 공백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요구는 전쟁 장기화와 함께 더욱 거세지고 있으나, 프랑스·독일 등 EU 핵심국과 자산을 가장 많이 보유한 벨기에는 법적·재정적 리스크를 이유로 일단 선을 긋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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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라스 대표는 회의 후 기자들에게 “러시아가 전쟁 피해에 대한 완전한 보상을 하지 않는 이상, 해당 자금을 다시 손에 넣을 가능성은 상상할 수 없다”면서 “전쟁이 끝나는 즉시 자산을 활용할 수 있도록 미리 ‘출구전략(exit strategy)’을 설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벨기에 외무장관 막심 프레보는 “현행 국제법상 이러한 자산은 강력히 보호되고 있다”며 “몰수는 시스템적 금융 불안을 초래하고 유로화에 대한 신뢰를 훼손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한, 동결 자산에서 발생하는 이자수익을 보다 공격적으로 운용해 고수익을 추구하자는 제안에 대해서도 “재정·법적 위험이 너무 크다”고 일축했다.

지난해 G7(주요 7개국)과 EU는 동결 자산에서 발생하는 이자만을 활용해 최대 500억 달러 규모의 우크라이나 지원 대출을 조달하기로 잠정 합의한 바 있다. 칼라스 대표는 “벨기에를 비롯한 여러 회원국이 지금 당장 ‘원금 몰수’를 거론하는 데는 부정적이지만, ‘전쟁 피해는 러시아가 책임져야 한다’는 원칙에는 이견이 없다”고 전했다.

러시아 측은 동결 자산을 우크라 재건에 쓰는 방안 자체에는 조건부로 동의할 수 있다는 입장을 비친 바 있다. 다만 자국군이 통제 중인 우크라 동부·남부 지역에 일정 부분이 투입돼야 한다는 단서를 달고 있어, 실제 협상 과정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용어·배경 설명

Euroclear는 전 세계 채권·주식 등의 결제를 처리하는 거대 금융 인프라 기업으로, 국채·회사채·ETF 등 각종 증권의 소유권 이전을 기록·정산한다. EU가 동결한 러시아 국부펀드·외환보유액 상당수가 이곳 계좌에 예치돼 있어, 벨기에 정부가 법적 책임을 크게 의식하는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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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결(freeze)과 몰수(confiscation)의 차이: 동결은 자산의 이동·사용을 일시적으로 금지하는 행정조치인 반면, 몰수는 소유권 자체를 박탈하는 사법행위다. 후자는 국제법·헌법 원리와 충돌할 소지가 커, 금융시장 신뢰와 통화 가치에 미칠 영향을 신중히 따져야 한다.


전문가 시각 및 전망

전문가들은 EU가 ‘몰수 대신 이자 활용’이라는 절충안을 우선 추진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일단 기존 법체계 내에서 실행 가능하며, 금융시장 교란을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전쟁이 장기화될수록 우크라이나의 재정 수요가 폭증할 것이 명확해, 정치적 압박은 가중될 전망이다.

또한, 러시아가 자국 영토 통제 지역에 자금 투입을 요구하고 있어, 전후 합의 과정에서 자산 분배와 영토 문제가 복합적으로 얽힐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는 평화 협상 테이블에서 중요한 지렛대로 작용할 수 있으며, EU·G7·우크라이나·러시아 간 다자 협상이 장기화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결론적으로, EU 외교 당국은 ‘자산 몰수’라는 고강도 카드 대신, 국제법·시장안정·정치적 실리 사이에서 최대한 균형점을 찾으려는 모습이다. 향후 몇 달간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재원 조달 구조를 설계하는 작업이 EU 재무·외교 당국의 핵심 과제로 부상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