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뤼셀발 ―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가 미국으로 수출되는 와인·증류주에 대해 현행 15% 관세보다 낮은 우대 관세율을 확보하기 위해 협상을 지속하겠다고 밝혔다.
2025년 8월 21일, 인베스팅닷컴의 보도에 따르면 EU 통상담당 마로슈 셰프초비치 부위원장은 “이번 합의에 해당 조항이 포함되지 못했지만, 집행위는 이를 다시 의제로 올리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는 지난달 체결된 EU-미국 간 무역협정을 둘러싼 세부 이행계획 발표 직후 나온 발언이다. 협정은 자동차·의약품·반도체·목재 등 대부분의 EU산 제품에 15%의 미 관세를 부과하는 내용을 담고 있으며, 주류·와인도 예외가 아니다.
15% 관세가 의미하는 것
업계 추산에 따르면, 15% 관세가 그대로 적용될 경우 미국 내 프랑스 샴페인·아일랜드 위스키·이탈리아 프로세코 소비자가격이 크게 오를 가능성이 있다. 미 시장에 수입되는 EU산 주류 규모는 연간 약 100억 달러(약 13조 원)에 달한다.
대표적 브랜드로는 디아지오의 ‘기네스 맥주’와 페르노리카의 ‘제임슨 아일리시 위스키’가 있다. 두 기업은 생산 거점이 각각 영국·아일랜드와 프랑스에 있어 관세 직격탄을 맞게 된다.
업계·단체의 목소리
“양측이 완전한 무관세(zero-for-zero) 원칙으로 복귀하지 않는다면, 미국 증류주 업계는 보복관세 재발 우려 속에서 수출·고용 계획을 세우지 못한다.” ― 미국 증류주협회(Distilled Spirits Council of the United States)
미국 증류주협회는 양측의 상호 영구적 무관세를 촉구하며 우대세율 부재에 대해 ‘실망스럽다’는 공식 성명을 냈다. 협회는 특히 “트럼프 행정부와 추가 협상을 이어가겠다”고 밝혔다.*트럼프 전 대통령은 2024년 대선 재도전 후 재집권한 상태
EU 측 대표 단체인 스피리츠유럽(spiritsEUROPE)의 에르베 뒤메니 사무총장도 “양측이 계속 협상 테이블에 머물러야 한다”며 “EU산 주류에 대한 미 관세를 철폐하고, EU가 잠정 중단한 대미 보복관세도 완전히 해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협정 내용과 앞으로의 변수
EU는 지난 8월 5일부로 미국산 위스키·와인 등 주요 주류 품목에 부과하던 보복관세를 6개월간 유예했다. 이는 대서양 양측이 미·EU 항공기 보조금 분쟁, 철강·알루미늄 관세 갈등 등으로 잇달아 보복조치에 나선 ‘관세 전쟁’ 국면을 완화하기 위한 조치다.
무역 전문가들은 “EU가 유예 기간 내에 관세 감면 협상을 마무리하지 못할 경우, 업계 불확실성이 커질 것”이라고 전망한다. 특히 15% 관세는 미 의회 동의 없이 행정명령으로 조정이 어려운 만큼, 조 바이든 전 행정부 때와 달리 현행 트럼프 행정부의 대EU 무역 기조가 더욱 강경해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전문가 해설: ‘우선순위’에서 밀린 배경은?
EU가 자동차·반도체 등 전략 산업에 먼저 협상 역량을 집중한 결과, 주류·와인 부문이 후순위로 밀렸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주류업계가 EU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매출 기준 1% 남짓이나, 농업·관광·문화 등 연관 산업과의 시너지를 고려하면 고용·지역경제 효과가 크다.
또한 프랑스·이탈리아·스페인 등 전통 와인 강국이 EU 내부에서 로비력을 행사하고 있음에도, 바이오·그린테크 등 신산업과 비교해 정치적 ‘실각복(失脚幅)’이 작은 분야로 평가돼 협상 테이블 우선순위에서 밀렸다는 분석도 있다.
용어 설명
• 우대 관세율(Preferential Tariff)은 특정 국가나 품목에 적용되는 낮은 관세율을 의미한다. FTA(자유무역협정)나 특별 협정으로 정해지며, 모든 품목에 동일하게 적용되는 MFN(최혜국 대우) 관세와 구분된다.
• Zero-for-Zero 관세는 양국이 동일 품목의 관세를 상호 0%로 설정하는 방식이다. 1997년 체결된 ‘정보기술협정(ITA)’ 등에서 최초 도입돼 디지털·의료기기 분야로 확대됐다.
전망과 결론
EU·미국 간 협상이 향후 6개월 유예 기간 내 실질적 진전을 보이지 못할 경우, 1) 유럽 주류 브랜드의 미국 내 판매가격 상승, 2) 미 증류주 업계의 EU 시장 점유율 변동, 3) 관광·호스피탈리티 산업의 연쇄 영향 등이 불가피할 것으로 관측된다.
반대로 우대 관세 또는 무관세 합의가 이뤄질 경우, 유럽 주류업계는 약 10억 달러 규모의 관세 부담을 덜 수 있고, 미 소비자 역시 다양한 프리미엄 주류를 가격 인상 없이 즐길 수 있게 된다.
따라서 EU 집행위와 미국 통상대표부(USTR)의 정무적 협상력이 관세 향방을 좌우할 것으로 보인다. 업계 및 투자자들은 오는 10월 열릴 EU-미국 무역·기술위원회(TTC) 회의에 주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