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뤼셀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유럽 주요 방송사들이 구글, 아마존, 애플, 삼성의 스마트TV 운영체제와 가상비서에 대해 EU의 가장 강력한 디지털 규제인 디지털 시장법(Digital Markets Act, DMA)을 적용해야 한다고 유럽연합(EU) 경쟁·규제 책임자에게 촉구했다.
2026년 3월 23일, 로이터 통신의 보도에 따르면, 세계 최대 방송사 연합인 유럽 상업 텔레비전 및 주문형 비디오 서비스 협회(Association of Commercial Television and Video on Demand Services in Europe, ACT)는 월요일 EU 반독점 담당 책임자인 테레사 리베라(Teresa Ribera)에게 보낸 서한에서 이 같은 요구를 제기했다. 이 협회는 카날플러스(Canal+), RTL, 메디아셋(Mediaset), ITV, 파라마운트+(Paramount+), NBC유니버설, 월트디즈니, 워너브라더스 디스커버리, 스카이(Sky), TF1 그룹 등을 회원사로 둔다.
방송사들은 서한에서 Android TV의 시장점유율이 2019년 16%에서 2024년 23%로 증가했고, Amazon Fire OS는 같은 기간 5%에서 12%로, 삼성의 Tizen OS는 24%의 시장점유율을 기록했다고 지적하며, 이러한 운영체제들이 DMA의 ‘게이트키퍼(gatekeeper’)로 지정돼야 한다고 요구했다. 방송사들이 인용한 자료는 2025년 시장 연구 데이터이다.
“소수의 운영자가 수백만 이용자와 사업자에 대한 접근과 콘텐츠 배포를 통제함으로써 결과를 좌우할 수 있는 능력을 점점 더 갖추고 있다.”
ACT는 서한에서 “중요한 TV 운영체제를 게이트키퍼로 지정하고 공정성과 경쟁 가능성을 보장하기 위한 적절한 감독을 확보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빅테크 기업들이 자사 생태계에 이용자를 묶어두려는 인센티브를 가질 수 있고, 한 미디어 애플리케이션에서 다른 미디어 애플리케이션으로의 연결이나 리디렉션을 계약적 또는 기술적으로 제한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DMA는 2023년부터 적용되기 시작했으며, 주요 기술 기업의 시장 지배력을 억제하고 경쟁을 촉진하며 소비자 선택권을 확대하기 위한 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DMA의 정량적 게이트키퍼 기준은 월간 활성 이용자 4,500만 명 이상과 시장 자본총액 750억 유로 이상 등으로 설정돼 있다.
방송사들은 또한 음성 기반 가상비서(Virtual Assistants)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했다. 가장 널리 알려진 예로는 아마존의 알렉사(Alexa)와 애플의 시리(Siri)가 있으며, 지난해 OpenAI는 AI 챗봇 ChatGPT에 ‘Tasks’라는 베타 기능을 도입하면서 이 분야에 진입했다.
현재까지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C)는 어떤 가상비서도 DMA의 게이트키퍼로 공식 지정하지 않았다. ACT는 “가상비서의 미지정은 규제의 공백을 만들며, 강력한 AI 비서들이 모바일폰, 스마트스피커, 차량용 라디오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을 통해 미디어 콘텐츠의 사실상 게이트키퍼가 되는 것을 허용한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또한 정량적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더라도 질적(qualitative) 기준에 근거해 스마트TV와 가상비서를 DMA 적용 대상으로 삼을 것을 리베라에게 촉구했다. 즉, 단순히 사용량·자본규모의 수치만으로 판단하지 말고, 시장 지배력의 성격과 이용자·사업자에 대한 영향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서한의 서명 단체로는 ACT 외에도 유럽 라디오 협회(Association of European Radios, AER), 유럽 방송 연합(European Broadcasting Union, EBU), 텔레비전·라디오 판매사 연합(egta), 이탈리아의 Confindustria Radio Televisioni(CRTV), 스페인의 Televisión Comercial en Abierto(UTECA), 오스트리아의 Verband Österreichischer Privatsender(VOP) 등이 포함돼 있다.
집행위원회와 구글, 아마존, 애플, 삼성 측은 로이터의 이메일 질의에 즉각적인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기사 말미에 제시된 환율 표기에 따르면 $1 = 0.8643 유로이다.
배경 설명 — DMA와 ‘게이트키퍼’ 개념
디지털 시장법(DMA)은 플랫폼 경제에서 특정 사업자가 시장 접근과 거래 흐름을 통제해 경쟁을 저해하는 것을 막기 위한 규제 틀이다. 게이트키퍼로 지정되면 해당 플랫폼은 경쟁을 촉진하기 위해 인터페이스 개방, 데이터 접근성 보장, 자체 서비스 우대 금지 등 다양한 의무를 부과받는다. 정량적 기준(예: 월간 활성 사용자 수, 매출·시가총액) 외에 플랫폼의 시장 구조적 영향력·상호운용성 문제 등 질적 요소도 고려 대상이다.
용어 설명 — 스마트TV 운영체제와 가상비서
스마트TV 운영체제(OS)는 텔레비전 내장 소프트웨어로, 앱 설치·동영상 스트리밍·인터넷 접속 등을 제어한다. 대표적 예로 Android TV, Amazon Fire OS, Samsung Tizen이 있다. 가상비서는 음성 명령을 통해 정보검색·미디어 재생·기기 제어 등을 수행하는 소프트웨어로, AI 기반 챗봇이나 음성인식 서비스가 여기에 해당한다.
시장 영향 분석 및 전망
이번 방송사들의 요구는 플랫폼 사업자가 콘텐츠 배포의 관문을 통제함으로써 광고·구독 기반의 전통 방송사 수익 구조에 압박을 가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 나온 것이다. 스마트TV OS와 가상비서가 이용자 인터페이스와 추천 알고리즘을 통해 특정 서비스로 트래픽을 유도할 경우, 전통 방송사 및 스트리밍 사업자들은 시청자 유입과 광고 수익에서 불리한 위치에 놓일 가능성이 있다.
규제가 강화되어 스마트TV 운영체제와 가상비서가 DMA의 의무를 지게 되면, 플랫폼들은 앱 간 링크 허용, 사용자 선택권 강화, 데이터 접근성 개선 등으로 개선 압력을 받을 것이다. 이는 장기적으로 이용자에게 더 다양한 콘텐츠 선택권을 제공하고, 방송사와 스트리밍 사업자 간의 경쟁을 촉진할 수 있다. 반대로 규제 불확실성이 지속될 경우, 플랫폼 사업자들이 투자 결정을 미루거나 자체 생태계 강화 전략을 유지해 단기적으로는 시장의 집중이 계속될 가능성도 있다.
광고 시장 관점에서는 플랫폼의 개입이 제한되면 광고주들이 더 많은 선택지를 갖게 되고 가격 형성에도 변화가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트래픽 분배가 보다 공정해질 경우 중소 플랫폼이나 독립 콘텐츠 제공자들도 광고 및 구독 수익을 확보할 기회가 늘어날 수 있다. 그러나 플랫폼 측의 반발과 법적·행정적 절차가 길어질 경우 규제 시행 시점과 범위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인해 단기적 시장 변동성이 확대될 수 있다.
결론
유럽 주요 방송사들의 이번 요구는 콘텐츠 유통의 관문을 통제하는 플랫폼의 영향력이 미디어 생태계 전반에 미치는 영향을 명확히 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집행위원회가 정량적 기준뿐 아니라 질적 검토까지 포함해 스마트TV 운영체제와 가상비서의 지위를 평가할지 여부가 향후 미디어·플랫폼 규제의 중요한 분기점이 될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