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화가 다시 한 번 존재감을 드러냈다. 29일(현지시각) 뉴욕 외환시장에서 달러화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 인덱스(DXY)는 전장 대비 0.22% 상승하며 5주 만의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는 전일 발표된 EU·미국 간 관세 협상 결과가 미 달러에 유리하게 작용한 가운데,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기준금리 동결 전망까지 더해진 결과다.
2025년 7월 30일, 나스닥닷컴의 보도에 따르면 EU·미국이 합의한 15% 관세 부과 조치가 유럽연합(EU) 상품 전반에 적용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유로존 경기 둔화 우려가 커졌다. 시장 참가자들은 해당 합의가 미국 무역수지 및 성장률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이에 따라 글로벌 외환시장은 유로화 매도·달러화 매수 흐름이 강화되는 분위기다.
같은 날 발표된 미국 6월 상품무역수지(Advance Goods Trade Deficit)는 시장 컨센서스(-980억 달러)를 크게 하회한 -860억 달러로 집계됐다. 이는 2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추정치 상향 요인으로 평가된다. 한편 7월 콘퍼런스보드 소비자신뢰지수는 97.2로 예상치(96.0)를 상회, 소비 여력이 견고함을 시사했다.
반면 노동 시장에서는 둔화 조짐이 관측됐다. 6월 구인·이직 보고서(JOLTS)상 구인 건수는 -27만5,000건 감소한 743만7,000건으로 조사돼 예상치(750만 건)를 밑돌았다. 고용 수요 식음이 확인되자 미 국채(T-note) 금리는 하락했고, 이는 달러화 추가 상승 폭을 제한했다.
유럽중앙은행(ECB) 기대 인플레이션 둔화…유로에 악재
유럽 측 지표도 약세 요인을 더했다. ECB가 발표한 6월 1년 기대 인플레이션은 2.6%로 전월(2.8%)보다 낮아졌고, 3년 기대 인플레이션은 2.4%로 동결됐다. 물가 기대가 완화되면서 시장은 9월 11일 ECB 통화정책회의에서 14% 확률로 금리 인하를 반영하고 있다.
이에 따라 EUR/USD 환율은 전일 대비 0.28% 떨어지며 5주래 최저 수준으로 미끄러졌다. 유럽산 상품에 부과될 높은 관세가 수출 경쟁력을 약화시킬 것이라는 우려 역시 유로 매도 압력을 증폭시키고 있다.
엔화, 국채금리 하락에 반등
한편 USD/JPY 환율은 0.11% 하락했다. 미국 금리 하락으로 엔화 쇼트 포지션의 일부가 청산되며 엔화가 완만히 강세를 보였다. 정치적 불확실성 역시 완화됐다.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7월 20일 참의원 선거에서 자민당(LDP)이 과반을 상실했음에도 “총리직을 유지하겠다”고 밝힌 점이 안정 요인으로 작용했다. 다만 시장에서는 자민당의 의석 감소가 재정 지출 확대와 감세로 이어져 국가 재정 건전성을 훼손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귀금속, 안전자산 수요로 상승 전환
같은 날 금 8월물은 온스당 14달러(0.42%) 올랐고, 은 9월물도 0.17% 상승했다. 이는 미국 국채 수익률 하락과 주식시장 반락이 맞물리며 안전자산 선호가 강화된 결과다. 특히 우크라이나·중동 분쟁 등 지정학적 리스크가 고조된 상황에서 ETF를 통한 자금 유입이 이어지며 금·은 가격을 지지하고 있다.
다만 달러 인덱스가 5주래 최고치로 오른 점은 귀금속에는 부담 요인이다. 전문가들은 “무역 긴장 완화로 안전자산 수요가 일시적으로 줄어들 수 있으나, 장기적인 리스크 헷지가 귀금속 가격의 하방을 방어할 것”이라고 진단한다.
연준·ECB 금리 전망이 관건
시카고상품거래소(CME)의 연방기금선물에 따르면, 이번 FOMC(30~31일)에서 25bp(0.25%포인트) 금리 인하 가능성은 2%에 불과하다. 그러나 9월 16~17일 차기 회의에서는 65% 확률로 반영돼 있다. 미국 물가가 점진적으로 둔화되고 있다는 점에서 연준이 더욱 완화적인 입장을 취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다.
유럽 역시 경기예상치 하향 및 인플레이션 둔화로 기존의 긴축 스탠스를 완화할지 주목된다. 만약 ECB가 예상보다 일찍 금리 인하에 나설 경우, 달러화 강세·유로화 약세 흐름이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다.
전문가 해설: JOLTS·FOMC·달러 인덱스란 무엇인가?
JOLTS(Job Openings and Labor Turnover Survey)는 미국 노동부가 발표하는 고용 지표로, 일자리 공고·이직·해고 등 노동 이동 현황을 담고 있다. 구인 건수 감소는 기업이 인력 충원을 주저하고 있음을 시사, 경기둔화 신호로 해석된다.
FOMC(Federal Open Market Committee)는 연준의 통화정책 결정기구로, 연간 8차례 회의를 통해 기준금리·양적완화(QE)·보유자산 축소 등 정책을 조정한다. 시장은 FOMC 회의 결과를 통해 향후 금리 방향성을 예측한다.
달러 인덱스(DXY)는 주요 6개 통화(유로, 엔, 파운드, 캐나다 달러, 스웨덴 크로나, 스위스 프랑) 대비 달러의 상대 가치를 측정한 지수다.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위험 선호·회피 정도, 각국 통화정책 방향성을 가늠하는 핵심 지표로 활용된다.
시장 관계자들은 “EU·미국 관세 합의로 유럽 경기 하방 압력이 커지고 있다”면서 “달러 강세·유로 약세 구도가 당분간 유지될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다만 달러화는 이미 5주 동안 상승세를 기록해 단기 과열 논란이 제기된다. 향후 발표될 미국 7월 고용보고서와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예상보다 부진할 경우 달러 랠리가 숨 고르기에 들어갈 수 있다는 분석도 제시된다.
결론적으로, 미·EU 관세 합의가 미 통화가치에 우호적으로 작용하는 가운데, 연준·ECB의 통화정책 변수가 달러 방향성을 좌우할 핵심 요인으로 부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