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TI 9월물과 RBOB 가솔린 9월물이 23일(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혼조세로 장을 마쳤다. WTI는 배럴당 0.06달러(-0.09%) 내린 67.94달러에, RBOB 가솔린은 갤런당 0.0187달러(+0.90%) 오른 2.095달러에 각각 거래를 마감했다.
2025년 7월 23일, 나스닥닷컴의 보도에 따르면 이날 미국 에너지정보청(EIA) 주간 재고 통계가 발표된 직후 원유 및 정제품 시장은 상반된 반응을 보였다. 원유 선물 가격은 공급 과잉 우려로 밀렸으나, 가솔린은 계절적 수요와 재고 감소에 힘입어 상승세를 나타냈다.
투자자들이 특히 주목한 지표는 미국 오클라호마주 Cushing(쿠싱) 비축 기지 재고다.
쿠싱은 WTI 선물 인도 지점으로, 이곳의 재고 증감은 미국 원유 수급 상황을 가늠하는 핵심 척도
로 여겨진다. 이번 주 쿠싱 재고는 +45.5만 배럴로 3주 연속 증가했다. 이는 공급 확대 우려를 부추기며 WTI의 상승 동력을 제약했다.
반면 EIA가 발표한 전국 상업용 원유 재고는 -317만 배럴 감소해 시장 예상치(-150만 배럴)보다 큰 폭 줄었다. 또 가솔린 재고도 170만 배럴 감소해 예상치(-20만 배럴)를 웃돌았다. 정제 제품의 재고 감소는 여름철 운송 수요가 견조함을 시사하면서 RBOB 가솔린 가격을 끌어올렸다.
달러 약세도 유가 하락을 일부 제한했다. 23일 달러 인덱스(DXY)는 2주 만의 최저치로 내려앉으며 달러 표시 원자재 가격을 뒷받침했다. 일반적으로 달러 가치가 하락하면 해외 투자자들이 원자재를 더 저렴하게 매수할 수 있어 수요 확대 효과가 발생한다.
미국과 일본이 당일 무역 증진 합의에 서명한 점도 시장 심리에 긍정적이었다. 양국은 관세·규제 장벽 완화를 골자로 한 협정을 통해 교역 확대를 모색한다는 방침이다. 이는 글로벌 원유·정제 제품 수요에 일정 부분 우호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그러나 미국 6월 기존주택 판매가 전월 대비 2.7% 감소해 9개월 만의 최저치(393만 건)를 기록한 점은 부정적 요인으로 작용했다. 주택 거래 부진은 건설·운송 연료 소비 둔화로 연결될 수 있어 에너지 수요 전망을 약화시킨다.
글로벌 공급 변수
시장 참여자들은 이라크 북부 쿠르드 자치정부(KRG)의 수출 재개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다. 이라크 내각은 쿠르드산(産) 원유를 이라크-터키 파이프라인을 통해 다시 선적하는 계획을 승인했다. 수송이 재개될 경우 일평균 23만 배럴이 추가로 시장에 공급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라크는 석유수출국기구(OPEC) 내 2위 생산국이다.
유럽연합(EU)의 러시아산 석유 추가 제재도 변수다. EU는 러시아계 은행 20곳을 SWIFT에서 퇴출하고, ‘셰도우 플리트(제재 회피 선단)’ 소속 105척을 제재 명단에 올렸다. 또한 인도 대형 정유소(러시아 로스네프티 지분 보유)를 블랙리스트에 포함했다. 중-장기적으로 러시아 공급이 위축될 경우 글로벌 수급 긴축이 심화될 수 있다.
OPEC+는 지난 7월 5일 회의에서 8월부터 하루 54만8천 배럴 증산을 결정했다. 이는 시장 예상치(하루 41만1천 배럴)를 웃도는 규모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카자흐스탄·이라크 등 할당 초과국에 대한 ‘경고성 증산’으로 해석되는 추가 증산도 시사했다. 다만 블룸버그는 7월 10일 “OPEC+가 10월부터 증산 일시 중단(pause)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최근 “올해 하반기 수요 둔화 시 재고가 하루 100만 배럴씩 늘어 2025년 4분기에는 소비 대비 1.5% 초과 공급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주간 지표·수급 상황
EIA에 따르면 7월 18일 기준 미국 상업용 원유 재고는 계절 5년 평균 대비 8.6% 낮았다. 가솔린 재고는 0.2% 높았으며, 디스틸레이트(난방유·경유) 재고는 평균 대비 18.5% 부족했다. 같은 주 미국 원유 생산량은 하루 1,327만3천 배럴로 전주 대비 0.8% 감소했으며, 2024년 12월 첫째 주 기록한 사상 최고치(1,363만1천 배럴)보다 소폭 낮다.
원유 가격의 또 다른 지지 요인으로 해상 저장 물량 감소가 거론된다. 탱커 추적업체 Vortexa는 7월 18일 주간 기준 정체 상태(7일 이상 대기) 선박 원유 재고가 6,631만 배럴로 전주 대비 14% 감소했다고 밝혔다. 해상 재고 축소는 즉각적인 시장 공급분이 줄었다는 신호로, 가격 상승 압력으로 작용한다.
반면 미국 석유서비스업체 베이커휴스 자료에 따르면 7월 18일 주간 미국 내 가동 원유 시추 플랫폼(리그) 수는 422개로 3년 9개월 만의 최저치를 기록했다. 2022년 12월 고점(627개) 대비 감소 폭이 크다. 낮은 리그 수는 향후 미국 생산 여력 축소를 시사하지만, 기업들의 설비투자 위축 및 비용 절감 기조도 반영된다.
용어 해설
RBOB(Reloaded Blendstock for Oxygenate Blending)은 미국 동부·걸프만 지역 주유소에서 판매되는 휘발유 기준물을 말한다. 옥탄가 87의 일반 휘발유임에도 산소 첨가제를 혼합하기 전 단계의 제품이어서 ‘블렌드스톡’으로 불린다.
쿠싱은 미국 중부 파이프라인 교차점이며, WTI 선물 계약의 실제 인수·도착지다. 재고 증감이 현·선물 가격 차이(콘탱고·백워데이션)에 큰 영향을 미쳐 ‘유가의 심장부’로 불린다.
전문가 시각과 전망
기자 해설‧현재 시장은 수급 상충 요인이 팽팽히 맞서는 국면이다. 쿠르드 지역 수출 재개, OPEC+ 증산 기조 등 공급 확대 요인이 늘어나는 가운데, EU의 러시아 추가 제재와 미국 시추 리그 감소가 공급 축소 변수가 되고 있다. 여기에 달러 약세와 여름철 운송 성수기 수요가 가솔린 가격 지지 역할을 하고 있다.
추세적으로 보면 하반기 수요 둔화와 재고 누적 우려가 확대될 경우 OPEC+가 10월 이후 증산 중단 또는 감산 카드로 돌아설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동시에 미국 셰일 기업들의 현금흐름 관리 전략, 중국·인도 수요 회복 속도, 지정학적 리스크(러-우 전쟁, 중동 정세 등)가 유가 변동성을 키울 전망이다.
시장 참여자들은 앞으로 몇 주간 발표될 미국 여름휴가철 주유 수요와 OPEC+ 9월 정례회의 결과를 주의 깊게 관찰할 필요가 있다. 단기적으로는 WTI 70달러 선, 브렌트 75달러 선이 기술적·심리적 지지선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궁극적으로는 글로벌 경기 둔화 속도가 유가 궤적을 결정할 핵심 변수로 남는다. 투자자들은 금리 수준, 각국 제조업 PMI, 항공 여행 수요 등 거시 지표를 종합적으로 점검해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