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중앙은행(ECB)이 시장의 추가 금리인하 전망을 진정시키려는 가운데, 유로존(유로화 사용 20개국) 경제가 글로벌 교역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견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각종 지표가 제시됐다.
2025년 7월 25일, 인베스팅닷컴 보도에 따르면 ECB는 전날 기준금리를 동결했으며, 경기 판단을 소폭 상향 조정했다. 이에 따라 1년간 이어져 온 완화 사이클이 막바지에 이르렀다는 시장의 기대가 한층 강화됐다.
최근 1년 동안 ECB는 기준금리를 4%에서 2%로 절반가량 인하하며 완화적 기조를 유지해 왔다. 그러나 전일 회의에서 크리스틴 라가르드 총재는 “지난 분기 유로존 경제가 예상보다 약간 더 나은 성과를 보였다”며 낙관적인 시각을 내비쳤다. 이러한 발언은 투자자들로 하여금 추가 인하 가능성을 낮춰 보게 만든 주요 요인으로 작용했다.
ECB 통계에 따르면, 6월 대출 증가율은 전년 동기 대비 5.8%로 나타나 2년 만에 가장 빠른 속도를 기록했다. 동시에 ECB가 분기마다 실시하는 중기 거시경제 전망 조사(Survey of Professional Forecasters)에서는 2025년 유로존 성장률이 1.4%로 상향 조정되고, 물가상승률이 2% 목표치를 정확히 달성할 것으로 제시됐다.
독일 뮌헨 소재 Ifo 경제연구소가 발표한 7월 기업경기지수도 7개월 연속 상승세를 이어 갔다. 특히 제조업 부문 기대지수가 개선돼, 세계 교역 긴장과 관세 위험에도 불구하고 독일 경제가 여전히 견인차 역할을 수행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정책 기대와 시장 반응
라가르드 총재의 신중한 낙관론과 각종 지표 개선은 곧바로 금리선물 시장에 반영돼 투자자들의 포지션이 변화했다. 현 시점에서 시장은 2025년 내 추가 인하 가능성을 50% 수준으로 반영하고 있으며, 이는 불과 며칠 전 100% 베팅에서 크게 후퇴한 것이다.
그러나 ECB 내부에서는 보다 조심스러운 기류가 여전하다. 프랑수아 빌루아 드 갈로 프랑스 중앙은행 총재는 “
성장 리스크가 여전히 하방으로 편향돼 있고, 불확실성이 매우 높은 만큼 데이터에 따라 기민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
“고 강조했다.
그는 강한 유로와 미국발 관세 충격이 물가를 끌어내릴 수 있다는 점에 우려를 표하며, 물가가 과도하게 낮아질 경우 추가 부양이 불가피하다고 시사했다. 핀란드 중앙은행 총재 올리 레헨 역시 블로그 글을 통해 “결정을 서두르기보다 충분한 정보를 기다리는 옵션 가치가 매우 크다“며 인내 기조를 지지했다.
시중은행 전망 변화
골드만삭스, BNP파리바, 노무라, 코메르츠방크 등 주요 글로벌 투자은행들은 이날 일제히 연내 추가 인하 전망을 철회했다. 반면 JP모건은 최종 인하 시점을 9월에서 10월로 미룬다고 조정했다.
이에 비해 뱅크오브아메리카, 바클레이스, 유니크레디트는 9월 한 차례 추가 인하가 여전히 가능하다는 견해를 유지하고 있으나, 그 확률이 과거 대비 낮아졌다는 점을 인정했다.
주요 용어·지표 해설
Ifo 기업경기지수는 독일 9,000여 개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해 경기 상황과 전망을 종합한 수치다. 100을 기준으로 100 이상이면 경기 확장, 이하이면 위축을 의미한다.
Survey of Professional Forecasters는 ECB가 분기마다 실시하는 설문으로, 경제학자·시장전문가들이 전망한 성장률·물가·실업률을 집계한다. ECB 통화정책의 선행지표로 활용된다.
옵션 가치(option value) of waiting란 불확실성이 높을 때 정책 결정을 미루는 것이 가져다주는 잠재적 편익을 의미한다. 이는 향후 정보가 축적되면 정책 실패 위험을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보수적인 중앙은행들이 자주 언급한다.
전문가적 시각
금융시장에서는 사실상 최종금리(terminal rate)가 2% 부근에 형성됐다는 컨센서스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다만 인플레이션이 목표를 상회하지 않는 한, ECB가 당분간 금리 인상으로 돌아서기보다는 현 수준 동결을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
유로화 강세가 수출기업의 가격경쟁력을 다소 약화시키는 동시에 수입 물가 하락을 통해 디스인플레이션(물가 상승 압력 약화)을 초래할 위험이 있다는 점도 주요 변수다. 관세 충격 역시 연쇄 효과를 통해 제조업 투자 지연과 성장 둔화를 유발할 수 있다.
향후 점검 포인트로는 8월 발표될 2분기 국내총생산(GDP) 속보치, 9월 소비자물가(Eurostat) 예측치, 그리고 10월 예정된 ECB 통화정책회의가 꼽힌다. 이들 지표와 이벤트에 따라 9~10월 금리 경로가 최종 결정될 공산이 크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채권 듀레이션 조정과 달러 대비 유로 포지션 관리가 관건이다. 금리동결 시 장·단기 금리 스프레드가 좁혀질 가능성이 높아 장기물 선호가 제기될 수 있으며, 통화정책 불확실성이 완화될 경우 유로화는 기술적 반등을 지속할 수 있다.
결국, ECB가 추가 인하를 단행할지 여부는 무역전쟁 전개 양상, 환율 추이, 그리고 유로존 내수의 회복 속도에 달려 있다. 현재로서는 완화 사이클 종료가 주류 전망이지만, 비둘기파(통화 완화 지지)와 매파(긴축 선호) 간 의견 차이는 여전히 큰 상황이다.
시장 참여자는 단기적인 “노 모어 컷(no more cut)” 분위기에 쏠리기보다는, ECB가 수치화한 데이터 의존적(data-dependent) 접근 방식을 염두에 두고 리스크 관리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