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CB, “시장 위험 과소평가 속 규제 완화는 시기상조”…유럽 은행 자본규제 유지 촉구

프랑크푸르트유럽중앙은행(ECB) 단일감독기구 수장인 클라우디아 부흐는 금융시장이 지정학적 위험을 과소평가하고 있으며 유로존 대부분의 은행이 크고 작은 노출을 안고 있는 만큼, 지금 규제를 약화할 경우 장기적으로 부문의 지속 가능성을 훼손할 수 있다고 밝혔다.

2025년 11월 13일, 로이터 보도에 따르면, 미국 당국은 은행의 규제 부담을 덜기 위해 자본 규칙 완화, 감독 현장검사의 축소, 은행 합병에 대한 우호적 심사 기조 등 일련의 조치를 검토하고 있다.

이에 대해 부흐는 자본요건이 수익성을 훼손하지 않으며, 예측이 어려운 시나리오에 대비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특히 재정 여력이 제한된 상황에서 향후 충격에 대응하기 위한 공공지출의 여지가 크지 않다는 점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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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범위한 회복탄력성은 장기 수익성을 희생하지 않는다.”

부흐는 핵심 쟁점으로, 현재의 시장 밸류에이션이 위험을 정확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어 급격한 재평가(repricing)가 발생할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 경우, 보다 높은 자본 수준이 은행을 충격으로부터 더 잘 보호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거시경제 충격과 신용위험을 연결하던 전통적 상관관계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을 수 있다. 이러한 모든 정황은 시장이 지정학적 위험을 과소평가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그는 팬데믹이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에너지 비용 급등과 같은 체계적 충격의 경우, 정부가 중앙은행과 공조해 위험을 완충해 왔다고 상기시켰다.

그러나 현재 부채 수준이 이미 높아 향후 위기에서도 동일한 수준의 지원을 제공할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고 덧붙였다.

또한 자본 제약 때문에 은행권 전반에 광범위한 손실이 발생하거나 신용공급이 위축되고 있다는 징후는 보이지 않는 만큼, 충분한 자본완충(buffer) 요건을 유지하는 것이 여전히 중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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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B는 핵심 감독 활동을 간소화하고, 자체 업무의 효과성을 점검하는 방식으로 역할을 수행하겠다고 했다.

다만 이러한 변화가 규제 완화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고 부흐는 못 박았다.

“우리는 새로운 규제 체계를 필요로 하지는 않는다. 다만, 입법자들이 현행 체계를 약화하지 않겠다는 약속이 필요하다.”


해설과 맥락: 유럽 vs 미국, 규제 기조의 갈림길

이번 발언은 ECB 감독 수장미국의 규제 완화 기류에 공개적으로 선을 긋고, 유럽 은행권의 자본 탄력성을 재확인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미국에서는 자본 규칙 완화·감독 축소·합병 우호론이 병행 논의되는 반면, 유럽은 시장의 위험 가격 책정이 느슨해진 국면에서 오히려 완충력 강화를 우선시하는 셈이다. 이는 지정학 리스크의 빈번화와 공급망 재편, 에너지 안보 변수 등이 전통적 리스크 모델의 상관구조를 흔들고 있다는 판단과 맞닿아 있다.

부흐의 논지는 단순하다. 첫째, 위험의 가격이 낮게 책정돼 있을수록 재평가 충격은 크다. 둘째, 그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최후의 보루는 은행의 자본이다. 셋째, 국가 재정은 팬데믹 이후 여력이 축소됐고, 과거와 같은 범정부적 보호막을 재가동하기 어렵다. 따라서 지금 이 국면에서의 규제 완화는 비용 대비 편익이 불확실하다는 것이다.

눈에 띄는 부분은 수익성과 자본요건의 관계에 대한 시각이다. 부흐는 자본확충과 수익성의 상충을 부정한다. 이는 건전성 강화가 자본조달비용 상승으로 곧바로 수익성 악화로 이어진다는 통념에 반기를 든다. 시장 신뢰자금조달 비용의 안정, 위기시 손실흡수 능력 등 간접 효과를 고려하면 지속 가능한 수익성이 오히려 강화될 수 있다는 시각이다.

또한, 상관관계의 붕괴 가능성 언급은 리스크 관리 실무에 직접적 함의를 갖는다. 과거 데이터에 기반한 VaR·스트레스 테스트저빈도 고충격 이벤트를 충분히 포착하지 못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즉, 두꺼운 꼬리(thick tail)체계적 상호연결성을 반영한 보수적 자본 관리가 요구된다는 메시지다.


핵심 포인트 정리

시장 위험 과소평가: 지정학 리스크가 가격에 충분히 반영되지 않아 급격한 재평가 가능성 존재

자본완충 유지: 현 시점에서 은행 전반의 손실 확대나 신용공급 제약의 명확한 증거는 없으며, 충분한 버퍼 유지 필요

규제 일관성: 감독 간소화·효율화는 추진하되, 완화로 오인될 변화는 지양

정책 여력 제약: 국가부채가 높은 환경에서 과거 수준의 재정·통화 공조는 재현 어려움


용어 설명

자본요건: 은행이 예기치 못한 손실을 흡수하기 위해 보유해야 하는 자기자본의 최소 기준을 뜻한다. 바젤 규제 체계 하에서 보통주자본(CET1) 등 다양한 층위의 자본과 자본보전버퍼·경기대응완충 등이 포함된다.

재평가(repricing): 시장이 위험을 새로 반영하면서 자산가격이 급격히 조정되는 현상으로, 유동성 악화와 변동성 확대를 동반할 수 있다.

감독 현장검사: 감독당국이 은행의 리스크 관리, 자본 적정성, 유동성 등을 점검하는 절차로, 빈도와 강도가 낮아지면 단기 부담은 줄지만 잠재 리스크의 조기 발견 능력이 저하될 수 있다.

체계적 충격: 팬데믹, 전쟁, 에너지 가격 급등처럼 광범위한 경제주체에 동시다발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충격으로, 전통적 분산효과가 작동하기 어렵다.


전망

유럽 은행권은 최근 순이자마진 개선자본비율 안정로 양호한 펀더멘털을 보였으나, 지정학·정책·기후 전이와 같은 비선형 리스크의 빈도가 높아지고 있다. 이런 환경에서 규제 신뢰성은 그 자체로 시스템 안정의 공공재에 가깝다. 부흐의 메시지는, 감독의 효율화는 가능하지만 완화는 곤란하다는 선명한 기준을 제시한다. 이는 시장 참여자에게 자본·유동성 관리의 보수적 기준을 재확인시키며, 정책 당국에는 규제 일관성의 중요성을 환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