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크푸르트/브뤼셀—유럽중앙은행(ECB)이 실시한 최근 설문조사에서 유로존(유로화 사용 20개국) 주요 기업들은 경기 둔화와 함께 중국산 제품과의 경쟁 격화를 가장 큰 위험으로 지목했다. 특히 미국발 관세(관세율 인상)가 기업 및 소비자 심리를 위축시키면서, 아시아(중국) 수출업체들이 미국 대신 유럽으로 방향을 돌려 가격 경쟁을 가중시키고 있다는 분석이다.
2025년 7월 25일, 로이터 통신 보도에 따르면 ECB는 6월 23일부터 7월 2일까지 유로존에서 활동하는 대기업 72곳을 대상으로 심층 인터뷰를 진행했다. 해당 결과는 전날(24일) 열린 통화정책회의에서 금리를 동결한 ECB가 경제전망을 ‘완만한 개선’으로 설명한 것과 달리, 현장 체감경기가 여전히 냉각 국면임을 보여준다.
ECB는 “
무역관세, 지정학적 긴장, 그리고 이에 따른 불확실성이 비즈니스·소비 심리를 훼손해 활동이 둔화됐다
”고 전했다. 기업들은 올해 2·3분기 성장률이 ‘매우 미약할 것’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제조업뿐 아니라 서비스업에서도 신규 주문 감소와 가격 결정력 약화가 동시 발생하며, 고용·물가 전망 모두 한층 보수적으로 바뀌었다.
주요 숫자·논점 정리
• 72개 대기업 대상 인터뷰(6월 23일~7월 2일)
• 임금 상승률: 2024년 4.5% → 2025년 3.3%, 2026년 2.8%
• 영향권: 중간재(intermediate goods) → 향후 소비재로 확대 가능성
기업들은 미국의 대중(對中)·대EU 관세 협상이 “성장에 부정적”이라고 평가했다. 특히 무역전환(trade diversion)—아시아 업체들이 미국 시장 대신 유럽으로 수출 방향을 틀어 생기는 현상—으로 인해 중간재 가격에 하방 압력이 커졌으며, “향후 수개월~수분기 내 완제품(소비재)까지 영향을 확대할 것”이라는 경고도 나왔다.
반면 소매·생활형 서비스 업종에서는 아직까지 가격 변동이나 수요 위축이 “미미하거나 전혀 없다”는 응답이 지배적이었다. 이들은 향후에도 단기적 영향이 제한적일 것으로 전망했으나, 소비 심리 악화가 장기화될 경우 간접 피해가 불가피할 것으로 내다봤다.
용어 해설
1) 관세(Tariff): 국가 간 수입품에 부과하는 세금으로, 자국 산업 보호·무역흑자 달성 등을 목적으로 한다. 미국이 자국 시장 방어를 위해 관세를 인상할 경우, 해당 국가(중국 등) 기업은 미국을 대신할 새로운 시장—유럽—으로 수출을 전환한다.
2) 무역전환(Trade Diversion): 관세·무역장벽 변화로 인해 교역 흐름이 기존 경로에서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현상이다. 이번 설문에서는 아시아(특히 중국) 업체들이 미국 시장 대신 EU로 물량을 돌리면서 유럽 내 경쟁이 격화되는 상황을 설명한다.
3) 중간재(Intermediate Goods): 최종 소비재 생산에 투입되는 부품·원재료·반제품을 말한다. 가격 등락이 생산비와 최종재 가격에 시간차를 두고 반영되므로, 중간재 가격 하락은 향후 소비자물가를 끌어내릴 수 있다.
전문가 인사이트
기자가 살펴본 바로는, ECB의 공식 전망과 현장 체감 사이의 괴리가 커지고 있다. ECB는 2% 목표 물가 달성을 위해 긴축을 유지하고 있으나, 설문에 나타난 ‘가격 하방 압력’은 추가 금리 인하 필요성을 시사한다. 특히 임금 상승세가 전년 4.5%→금년 3.3%로 둔화된 것은 서비스 물가 압력을 완화시킬 수 있는 요인이다.
또한 중국산 중간재 유입 확대는 유럽 제조업의 마진을 축소시키지만, 소비자 단계에서는 물가 안정을 돕는 양면성을 지닌다. 이에 따라 통화정책과 통상정책 간 조율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질 전망이다. 필자는 ECB가 4분기 중 최소 1차례 인하 카드를 만지작거릴 것으로 본다.
마지막으로, 유로존 내 고용시장은 아직 견조하지만, 기업들이 채용 확대를 보류하면 실업률 반등이 현실화될 수 있다. 이는 가계소비 위축→매출 감소→투자 감축이라는 ‘하방 스파이럴’ 위험을 내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