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중앙은행(ECB)이 기준금리를 세 번째 연속으로 동결할 가능성이 사실상 확실시되고 있다. 인플레이션이 목표 수준에 안착하고 성장세도 안정적인 가운데, 미·중 무역 갈등에 따른 변동성이 여전함에도 불구하고 정책 변경 필요성이 낮다는 판단에서다.
2025년 10월 30일, 로이터통신 보도에 따르면 ECB는 이날 열릴 통화정책회의에서 지난해 6월까지 두 차례, 총 2%포인트의 금리 인하를 단행한 이후 세 번째로 금리를 그대로 둘 예정이다. 현재 주요국 중앙은행 가운데 물가 목표를 달성한 곳은 ECB뿐이라는 점에서 “희소한 안정 구간”에 들어섰다는 평가가 나온다.
기존 설문에 참여한 이코노미스트 88명 전원이 이번 회의에서 동결을 예상하는 상황이지만, 크리스틴 라가르드 ECB 총재는 추가 완화 가능성을 완전히 닫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그는 최근 “ECB는 ‘좋은 위치(good place)’에 있으며, 데이터에 따라 유연하게 대응하겠다”고 거듭 밝혀왔다.
무역·환율 변수 속 ‘정교한 엔지니어링’ 지양
ECB 내부 기조는 “통화정책을 과도하게 설계(overengineer)하지 않겠다”는 데 모아진다. 라가르드 총재는 이번 회의를 프랑크푸르트가 아닌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열어 ‘현장 분위기’ 속 정책 논의를 이어간다. 소시에테제네랄의 아나톨리 안넨코프 선임 이코노미스트는 “2026년 추가 인하 가능성이 최근 소폭 높아졌으나, 여전히 문턱은 높다”고 진단했다.
실제 9월 이후 발표된 주요 지표는 ECB 9월 전망치와 대체로 일치한다. 유로존 구매관리자지수(PMI)가 개선세를 보였고, 독일 기업신뢰지수도 반등했다. 관세 불확실성이 다소 완화되면서 기업 심리가 나아진 점도 호재다.
그러나 산업생산 부진과 對미국 수출 급감, 그리고 중국산 제품의 ‘역내 덤핑’ 가능성 등 부정적 신호도 뚜렷하다. 특히 중국이 미국 시장에서 밀려난 재고를 유럽에 방출할 경우, 가격 압력이 한층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좋은 위치가 얼마나 지속될까”
“금융 여건이 상당히 긴축적으로 변했다.” ─ 뱅크오브아메리카 보고서
뱅크오브아메리카는 ECB가 12월 수정 전망에서 인플레이션이 더 크게, 혹은 더 오래 목표를 밑돌 가능성을 반영할 수밖에 없다고 내다봤다. 유로화 강세 역시 물가를 끌어내리는 요인이나, 전날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의 매파적 발언으로 추가 상승은 제한될 수 있다.
ECB 수석 이코노미스트 필립 레인은 “목표 대비 하향 위험이 커지면 ‘약간 더 낮은’ 정책금리가 정당화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시장은 내년 6월까지 마지막 한 차례 추가 인하 가능성을 50% 안팎으로 반영하고 있다.
다만 다수 이코노미스트와 정책위원들은 불확실성이 잦아들고 가계 저축이 소비로 전환되며, 독일 정부의 재정 지출 확대가 경기 회복을 견인할 것이라는 전제 아래 현 수준 금리 유지에 무게를 둔다. 베렌베르크의 펠릭스 슈미트 이코노미스트는 “안정적인 노동시장, 서비스업 성장, 독일의 확장적 재정정책이 향후 몇 달간 유로존 경제의 뒷바람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잠재적 용어 해설
① 언더슛(undershoot): 물가상승률이 목표치(ECB의 경우 2% 근방)를 밑도는 현상을 의미한다. 중앙은행은 과도한 언더슛이 장기화될 경우 디플레이션 위험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② 역내 덤핑: 특정 국가가 자국 시장에서 팔지 못한 상품을 다른 지역에 저가로 대량 판매해 현지 가격을 왜곡하는 행위다. 중국산 제품의 유럽 시장 유입이 이에 해당할 가능성이 거론된다.
향후 일정과 관전 포인트
ECB의 다음 분기별 경제전망은 12월 회의에서 공개된다. 이때 2028년까지의 최초 물가·성장 경로가 제시돼 인플레이션 허용범위에 대한 ECB의 ‘인내심’이 시험대에 오를 전망이다. 시장 참여자들은 “라가르드 총재가 얼마나 비둘기파적 메시지를 내놓을지”에 주목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