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O 실적 호조, 바이오테크·제약 지출 회복 신호

【뉴욕】 임상시험 등을 대행하는 계약 연구 기관(Contract Research Organization·CRO)들이 2분기 기대치를 웃도는 실적을 잇달아 발표하며 바이오테크와 제약 업계의 지출이 최악의 국면을 지나 안정을 찾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2025년 7월 24일, 인베스팅닷컴의 보도에 따르면 다나허(Danaher), 메드페이스(Medpace), 아이큐비아(IQVIA), 아이콘(ICON), 써모피셔(Thermo Fisher) 등 글로벌 CRO 및 연구 장비 업체들은 혁신 의약품 개발을 위한 도구·서비스 수요가 견조하다는 점을 배경으로 실적이 크게 개선됐다고 밝혔다.

특히 TD 카우언(TD Cowen)의 애널리스트 찰스 리(Charles Rhyee)는 ‘올해 4월부터 6월까지 바이오테크 자금 조달이 월간 기준으로 늘어났다’며 ‘매크로 환경이 여전히 도전적이지만 안정 국면으로 접어든 신호’라고 분석했다.

지난 2년간 CRO들은 투자 위축·금리 상승으로 바이오테크 고객사의 주문이 줄어들며 고전했다. 실제로 연구·제조를 위탁받는 생산 부문(CDMO)까지 영향을 받았고, S&P 바이오테크 ETF 지수는 4월 18개월 최저치를 기록, 2021년 고점 대비 절반 수준에 머물렀다.

“바이오테크 자금 조달은 회복세를 보이고 있으며, 아이큐비아와 메드페이스 실적을 통해 거시 환경이 점차 안정되고 있음을 확인했다.” – 찰스 리, TD 카우언 애널리스트

일부 월가 전문가들은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거론해온 의약품 관세와 대(對)중국 무역 갈등이 연구개발(R&D) 예산을 추가로 압박할 수 있다고 우려해 왔다. 중국은 원료의약품과 의료기기 부품의 핵심 공급처이며, 다수 CRO가 중국에서 임상·생산을 수행하고 있다.

그럼에도 경영진들은 지역을 불문하고 의약품 개발 장비·분석 도구 수요가 견조하다고 입을 모았다. 아이큐비아의 아리 부스빕(Ari Bousbib) CEO는 ‘불확실성 속에서도 우리 고객사는 신약 출시를 멈추지 않았다’며 예상을 밑돌았던 계약 취소율을 강조했다.

에버코어 ISI의 엘리자베스 앤더슨(Elizabeth Anderson) 애널리스트는 ‘아이큐비아 실적은 2026년을 앞두고 바이오파마 수요가 분기점을 맞이할 가능성을 시사한다’고 평가했다.

메드페이스는 자금 조달 여건 개선, 취소 감소, 의사결정 가속화를 근거로 연간 매출 전망을 중간값 기준 28억 달러 증액했다. 어거스트 트렌들(August Troendle) CEO는 ‘여전히 자금 압박을 겪는 고객이 많지만 대다수 고객이 임상시험을 지속할 정도의 자금을 확보했다’며 ‘조달 환경은 안정 또는 개선 기조’라고 밝혔다.

“자금 조달의 어려움은 여전하지만, 진행 중인 대부분의 임상은 필요한 자금을 확보해 중단 없이 유지되고 있다.” – 어거스트 트렌들, 메드페이스 CEO

하지만 신중론도 있다. 리어링크 파트너스(Leerink Partners)의 마이클 체니(Michael Cherny) 애널리스트는 ‘CRO 실적이 개선된 것은 사실이지만 임상시험 수요가 완전히 정상화됐다고 단언하기엔 이르다’고 지적했다.


용어 설명과 시장 의미

CRO(Contract Research Organization)는 신약 후보 물질의 전임상·임상시험, 데이터 관리, 규제 컨설팅 등을 제약·바이오 기업 대신 수행하는 전문 업체다. 연구개발 초기 비용이 큰 바이오테크의 필수 파트너로 꼽힌다.

CDMO(Contract Development and Manufacturing Organization)는 의약품 개발뿐 아니라 공정개발과 대량 생산까지 맡는 외주 생산업체다. 팬데믹 이후 백신 위탁생산으로 주목받았으나, 고금리 충격으로 바이오 투자액이 급감하며 성장세가 둔화됐다.

S&P 바이오테크 ETF는 미국 중소형 바이오 기업을 묶은 상장지수펀드로, 바이오 섹터의 자금 흐름과 투자심리를 가늠하는 대표 지표다.


전문가 시각과 향후 관전 포인트

자본시장 회복 여부: 2024~2025년 글로벌 IPO(기업공개) 한파가 지속됐으나, 최근 빅파마의 파이프라인 공백과 맞물려 후속 펀딩 창구가 재개될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미국·중국 리스크: 미·중 갈등이 소재·부품 공급망을 흔들면 CRO·CDMO의 비용 구조가 악화될 가능성이 있다. 다만 주요 업체들은 생산지 다변화디지털 플랫폼 확장으로 충격을 완화하겠다는 전략을 내놨다.

AI·머신러닝 기반의 임상 설계: 실험 설계 최적화, 환자 모집 효율화 등을 통해 신약 개발 기간·비용을 단축할 솔루션이 CRO의 차별화 포인트로 부상하고 있다.

이번 실적 시즌은 CRO 업계가 침체를 벗어나고 있음을 보여주는 첫 신호로 평가된다. 그러나 고금리·지정학적 변수 등 불확실성이 남아 있는 만큼, 하반기 실제 임상 개시 건수와 벤처 펀딩 동향이 추가적인 회복세를 가를 핵심 변수로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