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델리―워싱턴] 미국의 45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예고한 추가 관세가 현실화될 경우, 인도의 대(對)미국 수출이 최대 100억 달러(약 13조 원) 감소할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2025년 8월 7일, 인베스팅닷컴의 보도에 따르면, 미국계 투자은행 BofA 시큐리티스 연구팀은 “향후 3주 안에 인도와 미국 간 협상이 실패하면 관세율이 50%까지 치솟을 것”이라며 이같이 경고했다.
현재 기준으로 인도 수출품에는 25%의 관세가 부과되고 있으나, 8월 28일 추가로 25%p가 얹히면 총 관세율은 50%가 된다. BofA의 수석 이코노미스트 라훌 바조리아(Rahul Bajoria)가 이끄는 애널리스트들은 보고서에서 “별도 대응책이 마련되지 않을 경우 인도의 對미 수출에 적용되는 실효 관세율이 20% 수준에서 32% 이상으로 뛰어오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 100억 달러 충격, 인도 GDP에도 ‘직격탄’
BofA는 “관세 차등이 벌어질수록 인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에도 부정적 영향이 불가피하다”며 “추가 관세가 고착화될 경우 ‘상당한(slippage)’ 경기 둔화가 나타날 것”이라고 우려했다. 2024년 기준 인도의 對미 수출액은 800억 달러, 양국 간 교역 규모는 1,900억 달러에 달한다. 여기서 100억 달러가 증발하면 단순 계산으로 전체 수출의 12.5%가 사라지는 셈이다.
무역전쟁이 길어지면 섬유·의류, 화학·의약품, 정보기술(IT) 서비스 등 미국 수요 의존도가 높은 산업이 즉각적인 압박을 받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는 대규모 고용을 책임지는 제조업·서비스업 전반에 타격을 주어 실업률 상승, 소비 둔화, 투자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
■ ‘첫 협상국’에서 ‘주요 타깃’으로… 왜?
모디(Modi) 총리 정부는 올해 초, 트럼프 행정부가 ‘미·중 2차 관세 합의’ 직후 설정한 양자협상 우선 대상국에 포함되며 조기 합의를 노렸다. 그러나 ① 인도의 러시아산 원유 구매 지속 ② 농업·유제품 시장 개방 거부가 걸림돌로 작용해 5개월 협상이 결국 결렬됐다.
“우리는 농민의 이익을 결코 타협하지 않을 것. 설령 그것이 나에게 ‘무거운 대가(heavy price)’를 요구하더라도.” —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 8월 7일 뉴델리 기자회견 중
모디 총리의 이 같은 발언은 트럼프 정부가 요구한 농축산물 시장 추가 개방, 즉 미국 농가의 ‘인도 진출’ 확대 요구를 정면으로 거부한 것으로 풀이된다. ‘자국 농민 보호’를 내세우는 모디 정부와 ‘무역 적자 해소’를 앞세운 미국 정부의 이해충돌이 극명해진 것이다.
■ 관세, 어떻게 계산되나?
관세율이 20%에서 32%로 상승하면, 예컨대 출고가 1달러 상품은 미국 통관 시 1.20달러 관세부담에서 1.32달러로 늘어난다. 여기에 운임·보험료 등을 포함한 과세가격 상승 효과까지 합치면 최종 소비자 가격은 15~20% 추가 상승이 예상된다. 가격 경쟁력이 약화되면 바이어는 대체 공급국을 찾게 되며, 단기적 ‘수요 이탈’은 중장기적 ‘시장 상실’로 이어질 위험이 높다.
상대적으로 ‘FTA(자유무역협정) 네트워크’가 약한 인도는 관세 충격을 흡수할 안전판이 부족하다. 이는 베트남·멕시코 등 생산기지 다변화가 활발한 경쟁국 대비 불리한 점으로 작용한다.
■ 전문가 시각
뉴델리 소재 경제연구소의 한 연구위원은 “미국이 실제로 50% 관세를 매기면 인도는 ‘무역 특혜상실국’(전략적 파트너 → 잠재적 보호무역 대상)로 전락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IT 서비스와 제약은 미국 시장 의존도가 30~40%에 이르러, 관세 인상이 곧바로 ‘수익성 악화→임금 삭감→R&D 축소’로 연결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반면 일부 애널리스트는 “트럼프 대통령 특유의 ‘협상용 고관세 전략’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실제 적용 전 막판 협상이 재가동될 여지를 언급했다. 그러나 라훌 바조리아 팀은 보고서에서 “정치적 요인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 단기간 해결이 쉽지 않다”고 강조했다.
■ 용어 설명
‘실효 관세율(effective tariff rate)’은 표면상의 세율 외에도 상품 분류·원산지 증명·가공 방식 등에 따라 실제로 적용되는 총 관세 부담을 의미한다. 수출업체 입장에선 ‘표시 세율’보다 실효 세율이 수익성을 좌우한다.
‘무역 특혜상실국’이란 일반적으로 상대국이 일방적인 관세 인상이나 무역제한 조치를 통해 기존의 우대관세·쿼터 등을 철회하는 경우를 가리키는 비공식 용어다. GSP(일반특혜관세제도) 제외와 유사한 개념이지만, 반드시 제도적·법적 용어는 아니다.
■ 전망과 과제
애널리스트들은 단기 대응책으로 ① 환율 탄력성 확보 ② 대체 시장 개척 ③ 수출 인센티브 확대를 제시한다. 그러나 이는 구조적 대응책이 아닌 ‘시차 조정’ 수단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제조 기반 경쟁력 강화와 글로벌 공급망 재편이라는 장기 전략이 병행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결국 3주 후로 다가온 ‘관세 시한폭탄’이 해제될지, 아니면 현실화돼 양국 관계에 깊은 균열을 남길지는 모디 정부와 트럼프 행정부의 막판 담판에 달려 있다. 인도 수출기업들은 ‘플랜 B’ 준비에 돌입했고, 글로벌 시장 역시 양국 협상 테이블의 작은 단서라도 놓치지 않으려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