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컨 미리리 기자가 나이로비에서 전한 바에 따르면, 사하라 사막 이남(Sub-Saharan Africa) 국가들의 중앙은행이 최근 보유 외환보유액 가운데 금(gold) 비중을 빠르게 늘리고 있으나, 가격 급락 시 유동성 및 평가 손실 위험에 직면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왔다.
2025년 7월 30일, 로이터 통신의 보도에 따르면, 글로벌 신용평가사 피치 그룹(Fitch Group) 산하 리서치 기관인 BMI는 투자자 설명회에서 “금이 사하라 사막 이남 시장에서 전략적 가치 저장 수단(strategic store of value)으로 부상하고 있다”면서도 “가격 변동성이 확대될 경우 유동성 부족과 외환보유액 축소가 동시에 발생할 위험을 간과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가나(Ghana), 탄자니아(Tanzania), 나이지리아(Nigeria) 중앙은행은 최근 자국 내 금을 매입해 보유고를 늘렸다. 올해 들어 미·중 무역관세 갈등 및 지정학적 위험으로 시장 변동성이 커지자 이들 국가는 금화를 공격적으로 사들여 위험 분산을 시도했다. 케냐(Kenya)와 우간다(Uganda)도 금 편입을 검토 중이며, 르완다(Rwanda)·나미비아(Namibia)는 이미 매입 절차에 착수했다. 부르키나파소(Burkina Faso)는 비축 확대를 예고했고, 짐바브웨(Zimbabwe)는 신통화 ‘ZIG’을 금으로 담보한다고 밝힌 상태다.
“금 비중 30%”로 치솟은 가나 사례
BMI의 시니어 애널리스트 오슨 가드(Orson Gard)는 “가나는 공격적인 금 매입으로 전체 외환보유액 중 약 1/3이 금이 됐다”면서 “이에 따라 현지 통화 세디(cedi)가 급등했고, 수출 가격 경쟁력이 약화되는 부작용이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금 가격이 갑작스레 하락하면 국제준비자산에 충격이 불가피하다. 이를 완화하기 위해 헤지(hedge) 프로그램을 진행 중” — 존슨 아시아마(Johnson Asiama) 가나중앙은행 총재
아시아마 총재는 같은 날 기자회견에서 “원자재 가격 변동성에 크게 노출돼 있는 만큼 선물·옵션 등 파생상품을 활용한 헷지로 위험을 줄이겠다”고 밝혔다.
금 가격 전망과 통화정책 변수
BMI는 올해 사상 최고치를 찍었던 금 시세가 정점(peak)에 근접했을 가능성을 제시했다. 특히 미국의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이 현실화될 경우 달러 약세가 심화돼 금값이 단기적으로 조정을 받을 수 있다는 관측이다.
가드는 “사하라 사막 이남 국가 중 금 편입 비중을 빠르게 높인 곳일수록 가격 급락의 1차 피해를 볼 수 있다”며 “금값이 완만하게 하락하더라도 최근 고점에서 매수한 국가들은 보유고 평가손실과 정책 신뢰도 약화를 동시에 겪게 된다”고 분석했다.
수출 감소와 보유고 가치 하락 ‘이중고’ 우려
가나와 탄자니아처럼 금 수출 의존도가 높은 국가의 경우, 금값 하락 시 외화보유액 평가손실과 수출 대금 감소가 동시 발생하는 ‘더블 와미(double whammy)’ 가능성이 제기된다.
또한 과거 1990년대 인도와 2000년대 아르헨티나가 외환위기 당시 금을 담보로 외채를 조달했으나, 실제 현금화에 상당한 시일이 소요돼 심각한 유동성 경색을 겪은 사례가 언급됐다. 가드는 “사하라 사막 이남 국가들도 국제결제에 즉시 활용 가능한 경화(hard currency)로 전환하는 데 애로를 겪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전문 용어 해설
* BMI: 피치그룹 자회사로 거시경제·정책 리서치를 제공하는 기관.
* 헤지(Hedge): 파생상품을 활용해 가격 변동 위험을 줄이는 금융기법.
* 세디(Cedi): 가나의 법정통화.
* 유동성(liquidity): 자산을 손실 없이 빠르게 현금화할 수 있는 정도.
* 더블 와미(Double Whammy): 두 가지 악재가 동시에 발생해 충격을 배가시키는 현상.
기자의 시각
국가 신뢰도 관점에서 보면, 중앙은행이 금 비중을 늘리는 전략 자체는 외부 충격에 대한 일종의 ‘보험’ 역할을 한다. 그러나 포트폴리오 비중이 일정 수준을 넘어설 경우, 금 가격 하락이 곧바로 재무 건전성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 특히 수입 결제에 필수적인 달러·유로 등 경화 비중이 줄어드는 점은 정책 당국이 예의주시해야 할 부분이다.
향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금리 방향성과 중국 경기 회복세, 지정학적 변수 등이 금 가격에 복합적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사하라 사막 이남 각국이 위험관리 체계를 강화하고, 금 이외의 안전자산 다변화를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된다.
결국 ‘금 보유 확대’는 단기적 환율 방어와 가치 저장이라는 장점과, 급락 시 외환위기를 촉발할 수 있는 단점이 공존한다. 가나·탄자니아·나이지리아 등 자원 수출국들이 구조적 취약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원자재 수입국과의 통화 스와프나 다자간 유동성 지원 프로그램도 병행 검토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