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 2025년 눈부신 성과를 기록한 뒤, 투자자들은 유럽 은행들의 주가가 2026년에도 강세를 이어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 같은 기대는 견조한 실적과 무엇보다도 인공지능(AI)에 따른 비용 절감 효과에 기반하고 있다.
2025년 12월 15일, 로이터의 보도에 따르면, 경기 침체와 유럽중앙은행(ECB)의 금리 인하 우려가 진정되면서 투자자들은 복잡한 거시환경에도 불구하고 유럽 은행 섹터에 대한 전망을 상향 조정했다. 이러한 분위기는 섹터에 대한 시장의 신뢰를 회복시키며 주가 상승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
한편, AI는 유럽 금융주에 대한 투자 매력을 끌어당기는 새로운 동력으로 부상했다. 이는 유럽 내 기술기업의 부족으로 인해 많은 투자자들이 AI 수혜자를 구(舊)경제 분야에서 찾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결과적으로 전통적 산업에 속한 은행들이 AI 도입을 통해 투자 고평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실제 은행권은 운영 효율화, 사기 탐지 강화, 인건비 절감 등을 위해 AI를 도입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변화는 단기적으로는 비용 구조 개선을 통해 수익성에 기여하고, 장기적으로는 비즈니스 모델의 일부를 재편하는 촉매제가 될 가능성이 크다.
“유럽 은행은 AI의 진정한 수혜자가 될 수 있다”고 블랙록(BlackRock)의 기본주식 운용 최고투자책임자(Chief Investment Officer for Fundamental Equities)인 헬렌 주얼(Helen Jewell)은 말했다. 블랙록은 약 12조 달러 규모의 운용자산을 보유한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다.
그는 이어서 “AI 관련 논의의 상당 부분이 매출 측면의 승자에 집중돼 있지만, AI는 비용구조 개선의 수혜자도 분명히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이 발언은 AI가 단지 새로운 매출원을 창출하는 데 그치지 않고, 기존 비즈니스의 비용 효율성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투자은행 UBS는 투자자 대상 메모에서 AI가 단기 밸류에이션과 장기 이익의 잠재적 상승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다만 AI 관련 기대감에는 버블 형성의 위험이 수반된다고 경고했다.
리스크 역시 존재한다. 국제통화기금(IMF)과 영란은행(Bank of England) 등은 AI 관련 과열과 닷컴 버블과 유사한 붕괴 위험을 경고해왔다. 이러한 경고는 AI 투자 확대가 가져올 수 있는 과도한 기대와 시장 불안정성을 상기시킨다.
또한 위험 요인은 AI에 국한되지 않는다. 유럽중앙은행(ECB)는 유로존 은행들이 지정학적 긴장, 무역정책 변화, 기후 관련 위기, 그리고 변동성이 큰 미 달러화에 노출된 은행에 대한 달러 조달 압박 등 ‘전례 없이 높은’ 충격 위험에 직면해 있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투자자들은 은행주를 적극적으로 매수하고 있다. 예컨대 소시에테 제네랄(Société Générale)의 주가는 올해 140% 급등했고, 코메르츠방크(Commerzbank)는 125% 상승했으며 바클레이스(Barclays)는 거의 70% 올랐다. 유럽 은행주 지수는 올해 60%를 넘는 상승률을 기록해, 2024년의 25% 상승에 더해 범유럽 지수보다 4배 이상 높은 성과를 보였다.
투자자들은 또한 유럽 은행주를 상대적으로 저평가되어 있다고 보고 있다. LSEG(레피니티브 전신) 데이터에 따르면 유럽 은행주의 현재 주가순자산비율(PBR, price-to-book)은 약 1.17배로, 2007년 정점 대비 약 40% 낮고 미국 은행의 평균인 1.7배보다 낮다.
실적 및 비용 전망
수익성 기대치도 상승하고 있다. 골드만삭스(Goldman Sachs)는 메모에서 2025년부터 2027년까지 비용 증가율을 연평균 1% 수준으로 예상했다. 이 은행은 은행권의 비용/수익비율이 2026년까지 전년 대비 130bp(베이시스포인트) 개선될 것으로 전망해, 기업들이 동일한 수익을 내기 위해 지출하는 비용이 줄어들 것으로 봤다.
컨설팅회사 맥킨지(McKinsey)는 지난해 보고서에서 AI가 전 세계 은행 산업에 연간 최대 3,400억 달러의 추가 가치를 가져올 수 있으며, 운영비를 최대 20%까지 낮출 여지가 있다고 추정했다. UBS는 AI 도입에 따른 비용 절감 효과가 완전히 실현되기까지 수년이 걸리더라도 이는 밸류에이션 확장에 충분한 변화를 일으킬 것이라고 평가했다.
실제 증권사 및 애널리스트들의 전망도 개선되고 있다. 지난달 애널리스트들은 섹터에 대한 순수정정치(순수정정치: analysts’ net revisions)를 2023년 5월 이후 최대폭으로 상향 조정했고, 12개월 선행 이익 성장 기대치는 2023년 이후 최고 수준으로 뛰었다(IBES 데이터 기준).
은행 대출도 회복 신호를 보이고 있다. ECB의 최신 자료에 따르면 기업에 대한 신용 성장률은 10월 기준 연율 2.9%로 유지돼 2023년 5월 이후 높은 수준을 이어갔고, 가계 대출 성장률은 2.6%에서 2.8%로 가속해 2년 반 만에 최고치로 올라섰다.
배당·자사주 환원과 인수합병(M&A)
블랙록의 헬렌 주얼은 유럽 은행들이 향후 3년간 배당 및 자사주 매입을 통해 시장가치의 20~25%를 주주에게 환원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는 밸류에이션과 결합할 때 여전히 매력적인 자산군임을 의미한다.
“밸류에이션과 주주환원 정책을 고려하면 여전히 매력적인 자산군이다”고 증권사 Equita의 공동 연구책임자 도메니코 길로티(Domenico Ghilotti)는 덧붙였다. 그는 또한 M&A 활동이 섹터를 지지하는 또 다른 요인이라고 말했다.
올해의 대표적 거래로는 국영 지원을 받는 몬테 데이 파스키 디 시에나(Monte dei Paschi di Siena)의 메디오뱅카(Mediobanca) 인수가 있다. 이 거래는 이탈리아 은행업 구조를 변화시킨 큰 규모의 딜 중 하나였다. 시장에서는 추가적인 M&A 가능성도 열려 있다고 보고 있다.
헬렌 주얼은 “유럽 내 경제적 회복력을 목격하고 있으며, 이는 금리 인하가 더 발생하더라도 경제 회복력은 유럽 은행에 호재가 될 것”
용어 설명
이 기사에서 언급된 주요 금융 용어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덧붙인다. 주가순자산비율(PBR)은 기업의 시가총액을 장부상 순자산으로 나눈 값으로, 숫자가 낮을수록 자산 대비 저평가됐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비용/수익비율(Cost/Income ratio)은 영업비용을 영업수익으로 나눈 비율로, 낮을수록 효율성이 높다는 의미다. 마지막으로 선행 이익(Forward earnings)은 향후 12개월 예상 이익을 기준으로 산출한 지표로, 투자자가 미래 수익성을 평가할 때 사용한다.
시장 영향 및 향후 전망(분석)
유럽 은행 섹터에 대한 현재의 긍정적 모멘텀은 세 가지 축에서 나오고 있다. 첫째, AI에 따른 비용 구조 개선 기대는 단기적인 실적 상향과 더불어 장기 밸류에이션의 재평가를 촉발할 수 있다. 둘째, 배당 및 자사주 환원 등 주주환원 정책은 주가를 지지하는 핵심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셋째, 경기 회복과 신용성장의 지속은 대출 기반 수익의 확대로 이어질 수 있다.
하지만 리스크 관리도 중요하다. IMF·영란은행·ECB의 경고는 AI 과열과 지정학적·기후적 충격, 달러 유동성 위험 등이 결합될 경우 은행 섹터의 하방 변동성이 확대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AI 관련 비용 절감이 실제 수치로 확인되는 시점까지는 주가의 변동성이 클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
종합하면, 현재의 주가 상승은 실적 개선 기대와 AI에 따른 비용 혁신이 결합된 결과로 볼 수 있다. 만약 AI 도입에 따른 비용 절감이 맥킨지·골드만삭스 등의 예상 수준으로 현실화된다면, 유럽 은행주의 밸류에이션은 추가 상승 여지를 갖는다. 반대로 AI 기대치가 과도하게 선반영되거나 글로벌 경제 및 지정학적 충격이 현실화되면 조정 위험이 커질 수 있다.
투자자들은 비용·수익성 지표와 은행들의 AI 도입 성과, 배당 및 자사주 정책 변화, 그리고 ECB의 규제·리스크 평가를 면밀히 관찰할 필요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