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레브라스 시스템즈(Cerebras Systems)가 엔비디아(Nvidia)의 독점적 지위에 도전하기 위해 개발 중인 ‘저녁 식사 접시 크기’의 AI 전용 반도체를 앞세워 11억 달러(약 1조 5천억 원)에 달하는 자금을 유치했다.
2025년 9월 30일, 로이터 통신 보도에 따르면 이번 라운드는 피델리티 매니지먼트 앤드 리서치(Fidelity Management & Research Co)와 아트레이디스 매니지먼트(Atreides Management)가 공동 주도했으며, 회사의 사후 평가가치는 81억 달러(약 11조 원)로 뛰어올랐다.
새롭게 합류한 투자자는 타이거 글로벌(Tiger Global), 밸러 이쿼티 파트너스(Valor Equity Partners), 그리고 1789캐피털(1789 Capital)이다. 1789캐피털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장남,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Donald Trump Jr.)가 파트너로 참여하고 있다는 점에서 정·재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세레브라스 최고경영자(CEO) 앤드루 펠드먼(Andrew Feldman)은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1789캐피털의 투자 결정은 시티그룹(Citigroup) 출신 베테랑 투자 은행가 폴 아브라힘자데(Paul Abrahimzadeh)가 주도했다”며, “
“우리는 이미 알고 지낸 사이였고, 그들은 막대한 자금을 과감히 투입할 준비가 돼 있었다”
고 설명했다.
IPO 지연과 미·중동 규제 변수
세레브라스는 지난해 나스닥 상장을 목표로 기업공개(IPO) 예비 신고를 마쳤지만, 아부다비 기반 클라우드·AI 기업 G42의 3억 3,500만 달러 투자에 대한 미국 국가안보 심사가 길어지면서 일정이 미뤄졌다. 2023년 G42가 세레브라스로부터 슈퍼컴퓨터를 조달하기로 한 계약도 같은 이유로 주목받았다.
결국 트럼프 행정부(당시)의 검토를 거쳐 올해 3월 해당 투자는 ‘국가안보에 위협이 없다’는 판단을 받고 최종 승인됐다. 펠드먼 CEO는 “상장 계획은 여전히 유효하며, IPO 절차에 들어가기 전 ‘월드 클래스’ 기관투자자로부터 막판 추가 자금을 확보하는 것은 전혀 드문 일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세레브라스가 G42에 제공한 슈퍼컴퓨터는 현재까지 미국 내에만 설치돼 있다. 지난해에는 사우디 아람코(Aramco)와의 공급 합의도 발표됐다. 다만 중동 지역으로의 장비 반출은 미국 정부의 수출통제 라이선스가 필수다. 펠드먼 CEO는 “일부 장비에 대한 선적 허가를 이미 확보했으며, 추가 장비 운송을 위한 라이선스를 신청 중”이라고 말했다.
‘저녁 접시 크기’ 칩이란?
세레브라스의 AI 칩 ‘웨이퍼 스케일 엔진(WSE)’은 면적이 무려 46,225㎟로, 일반 CPU 대비 수백 배 크기가 크다. 실제로 평균적인 식사용 접시(dinner plate)와 비슷한 직경을 가지며, 85만 개 이상의 AI 연산 코어를 하나의 웨이퍼에 집적해 대규모 파라미터를 갖는 생성형 AI 모델 학습 시간을 단축한다. 이는 엔비디아의 GPU 클러스터를 여러 장 연결했을 때의 복잡성과 비용 문제를 단번에 해결할 잠재력이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다만 웨이퍼 단위의 거대한 칩을 만들기 위해서는
① 수율 문제(불량률 관리),
② 발열 및 냉각,
③ 패키징 기술 등 고난도 공정이 요구된다. 세레브라스는 이러한 기술적 난제를 극복하기 위해 TSMC의 7나노 공정을 활용하며, 자체 냉각 솔루션을 설계해 성능과 신뢰성을 모두 확보했다고 강조한다.
시장·투자 관점에서 본 의미
첫째, 11억 달러 규모의 이번 투자 라운드는 엔비디아에 집중된 AI 하드웨어 생태계에 두 번째 축을 형성할 가능성을 시사한다. 최근 빅테크와 스타트업들은 생성형 AI 모델의 매개변수(parameter) 폭증으로 인해 ‘수평적 GPU 스케일링’ 한계에 부딪히고 있어, 단일 칩으로 학습 시간을 줄일 수 있는 대안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둘째, 미국 대선 국면에서 트럼프 일가와 연계된 1789캐피털이 첨단 AI 인프라 기업에 베팅했다는 사실은 정책·규제 리스크에 대한 내부 정보 접근성을 기대하게 한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그러나 동시에 정치적 논란이 향후 기술·수출 규제 심사 과정에서 ‘양날의 검’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해석이 공존한다.
셋째, 중동·사우디아라비아를 포함한 글로벌 에너지 기업들의 AI 전략 투자가 확대되고 있는 만큼, 세레브라스가 에너지·인프라 산업용 초거대 모델 학습 시장의 ‘숨은 승자’가 될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특히 사우디아라비아의 네옴(NEOM) 프로젝트와 같은 초대형 스마트시티 사업은 고성능 AI 컴퓨팅 수요를 동반할 것으로 예상된다.
딜 구조 및 자문사
이번 거래에서 시티그룹(Citigroup)과 바클레이즈 캐피털(Barclays Capital)이 공동 배치 주선사(joint placement agent) 역할을 맡았다. 기존 주주인 알티미터(Altimeter), 알파웨이브(Alphawave), 벤치마크(Benchmark)도 추가 지분 투자에 참여하며 ‘지속 지원’ 의사를 확인했다.
펠드먼 CEO는 “우리가 계획한 일정대로 IPO를 성사시킨다면, 신규 자금은 생산 능력 확장과 고객 맞춤형 슈퍼컴퓨터 구축에 투입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 코멘트 & 전망
시장조사업체 세미애널리시스(SemiAnalysis)는 보고서에서
“세레브라스 WSE는 대규모 모델 훈련에서 연산 밀도와 통신 병목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독자적 설계”
라고 평가했다. 다만 “생태계 소프트웨어 지원과 업계 표준화 측면에서 GPU 대비 취약점이 여전히 존재한다”고 지적한다.
필자는 1) 엔비디아 단일 공급망 리스크 완화, 2) 미국 수출 규제 강화, 3) 생성형 AI 시장 팽창이라는 세 가지 구조적 요인이 맞물려 세레브라스의 기업가치가 가속 상승할 것으로 본다. 향후 12~18개월 내 IPO 시기에 따라 공모가 밴드가 결정되겠으나, ’네오 GPU 시대’의 공백을 채우려는 대체 솔루션 수요는 꾸준히 늘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