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폰 제국” 애플, 인공지능 전쟁의 후발주자가 되다
엔비디아 GPU를 가득 실은 ‘섬 크기의’ 데이터센터를 자랑하는 마이크로소프트·아마존·메타·구글 등 빅테크와 달리, 애플은 아직까지 인공지능(AI) 전선의 변두리에 머물러 있다.
2025년 7월 30일, CNBC 뉴스의 보도에 따르면 월가는 애플이 구체적인 AI 청사진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 갈수록 우려를 표하고 있다. 올해 들어 애플 주가는 15% 넘게 하락하며 ‘매그니피센트 세븐’(미국 시총 상위 7대 기술주의 애칭) 가운데 두 번째로 부진한 성적을 기록했다. 20% 폭락한 테슬라만이 애플보다 더 나쁜 흐름을 보였다.
AI 전략 공개를 꺼린 탓에 시리(Siri)의 차세대 버전도 2026년으로 연기됐다. 설상가상으로 애플의 전(前) 최고 디자인 책임자 조니 아이브가 지난 5월 신생 하드웨어 스타트업 ‘IO’를 64억 달러(약 6조 5,000억 원)에 오픈AI에 매각하면서 시장은 ‘애플의 하드웨어 혁신력이 외부로 유출되고 있다’는 신호를 감지했다.
오픈AI CEO 샘 올트먼은 인수 발표 당시 “새로운 하드웨어 기기를 개발 중”이라고 밝혀, 애플이 장악해 온 하드웨어 시장에 정면으로 도전장을 내밀었다. 분석가들은 애플이 명확한 경쟁 전략을 세우지 못한다면 아이폰 판매량이 언젠가 둔화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애플의 불완전한 AI 전략이 최대 리스크다. 그러나 앞으로 약 1년 반의 ‘유예 기간’이 남아 있으므로 주식은 매수 의견을 유지한다.” — TD 코웬 애널리스트 크리시 샹카르
애플은 8월 1일 예정된 회계연도 3분기 실적 발표에서 AI 문제를 길게 언급하지 않을 전망이다. 팩트셋(FactSet) 추산에 따르면 애플은 분기 중 아이폰 400억 달러어치를 판매하고, 서비스 부문 매출도 11% 성장한 268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애플 인텔리전스’ (Apple Intelligence), 약속은 화려했으나 현실은 미완성
애플은 2024년 여름 이메일·메시지 요약, 이미지·이모지 생성, 시리 시각 재설계 기능을 묶어 ‘애플 인텔리전스’라 명명했지만, 핵심인 ‘다기능 시리’는 결국 2026년으로 밀려났다. 시장은 이를 새로운 아이폰 교체 수요(슈퍼사이클) 촉매로 기대했으나 매출 증가는 나타나지 않았다.
Visible Alpha Research의 멜리사 오토 애널리스트는 “예상했던 교체 사이클이 현실화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애플 측은 논평을 거부했다.
용어 설명: ‘매그니피센트 세븐’은 애플·마이크로소프트·아마존·구글(알파벳)·메타·엔비디아·테슬라 등 미국 증시를 이끄는 7대 대형 기술주를 일컫는 표현이다.
견고한 생태계가 방패…그러나 시간은 무한하지 않다
애플은 높은 고객 만족도와 멀티 디바이스 잠금효과로 단단한 방어막을 구축해 왔다. 딥워터 애셋 매니지먼트 창립자 진 먼스터는 “향후 1년간은 아이폰·맥·애플워치 실적이 견조해 AI 공백에 대한 압박이 제한적”이라며, 안드로이드 진영도 아직 ‘킬러 AI 기능’을 선보이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AI는 결국 실체가 과장을 뛰어넘을 것이다. 다만 기술 리더십 재편까지는 시간이 더 걸린다.” — 진 먼스터
그러나 필요성이 줄어든 아이폰 교체 주기는 애플에 경고등을 켜고 있다. CIRP(Consumer Intelligence Research Partners) 조사에 따르면 2024년 새 아이폰 구매자의 13%만이 ‘새 기능(AI 포함)’을 이유로 들었다. 애플 서비스 총괄 에디 큐도 법정 증언에서 “10년 뒤 아이폰이 필요 없을 수도 있다”고 언급했다.
구글·오픈AI, 그리고 ‘스크린 없는’ AI 기기의 부상
애플의 주된 경쟁자는 안드로이드 생태계를 보유한 구글과, 화면 없이 음성·센서 입력에 의존하는 AI 전용 디바이스 개발사들이다. 오픈AI는 ‘핀·펜던트·스마트 안경’ 등 새로운 폼팩터를 검토 중이며, 구글은 젬니(Gemini)를 안드로이드 16에 깊이 통합해 유튜브 기반 할 일 목록 생성 등 시리가 구현하지 못한 기능을 선보이고 있다.
그럼에도 구글 CEO 순다 피차이는 최근 실적 전화회의에서 “향후 2~3년은 스마트폰이 여전히 경험의 중심”이라고 전망했다. 니덤(Needham) 증권의 로라 마틴 애널리스트는 “애플은 AI 경쟁에서 1~2년 뒤처져 있으며, 다음 기기 교체 시점에는 안드로이드가 ‘더 멋진 기능’으로 무장할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했다.
조니 아이브 + 오픈AI = 애플 최대 위협?
아이브는 아이폰·애플워치·맥북 디자인을 주도한 인물이다. 그의 합류로 오픈AI 하드웨어 프로젝트가 애플의 핵심 경쟁 상대가 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다만 하드웨어 대량 생산·공급망 구축에는 수년이 걸린다는 점에서, 전문가들은 “시간은 애플 편이지만 틱톡 소리는 점점 커진다”고 표현한다.
먼스터는 오픈AI 디바이스 발표가 2026년 출하를 목표로 내년 공개될 것이라 내다봤다. 2007년 1월 아이폰이 첫 공개됐을 당시 1년차 판매량은 고작 140만 대였으나, 4년 만에 8,000만 대를 돌파하며 노키아·블랙베리를 제쳤다는 역사적 교훈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기자 시각 — “애플, 생태계 강점 살려 ‘생산성 AI’에 집중해야”
필자는 애플이 단순히 거대 모델 경쟁에 뛰어들기보다는, 온디바이스(On-device) AI 최적화를 통해 개인 정보 보호·배터리 효율성·생산성 향상이라는 차별화 포인트를 강화해야 한다고 본다. 또한 서비스 부문에서 AI 기반 구독 모델(예: 업무용 요약·사진 편집·개인화 헬스케어)을 확장한다면, 기존 하드웨어 매출 의존도를 낮추고 수익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결국 관건은 “언제, 어떤 형태로, 얼마만큼의 파괴력”을 가진 AI 기능을 공개하느냐다. 월가가 부여한 ‘1년 반의 리미트’는 길지 않다. 아이폰이 2007년 스마트폰 혁명의 신호탄을 쏘았듯, 애플이 다시 한 번 ‘게임 체인저’를 들고 나올 수 있을지 시장의 시계는 빠르게 돌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