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소매업 전반이 인공지능(AI) 및 자동화 기술로 인해 대대적인 재편을 겪고 있다. UBS가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머신러닝, 컴퓨터 비전, 로보틱스 등 첨단 기술이 공급망 관리에서 고객 응대까지 소매업의 모든 영역에 침투하고 있다.
2025년 8월 9일, 인베스팅닷컴 보도에 따르면, 미국 전체 노동자의 약 10%가 소매업에 종사하며 이 가운데 65~75%가 고객 대면 직군이다. 2025년 6월 기준 미국 소매업 고용 인원은 약 1,550만 명으로, 2017년 기록한 1,580만 명 정점에서 감소했다. 소매업 고용 비중은 2016년 이후 하락세를 이어 오며 비농업 부문 전체 대비 9.8%로 25년 만의 최저치를 기록했다.
UBS는 “반복적 업무가 로봇과 AI로 대체되는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고 강조한다. 실제로 바닥 청소, 재고 스캐닝, 근무 일정 편성 같은 루틴 작업이 자동화되고 있으며, ※참고: 재고 스캐닝은 전용 카메라·센서를 장착한 로봇이 매대를 순회하며 재고를 파악하는 기술이다. 물류·배송(풀필먼트) 과정도 점차 무인화되고, 수요 예측에는 고급 머신러닝 알고리즘이 도입되고 있다.
AI가 바꾸는 고객 서비스 전선
고객 서비스 영역에서도 변화가 가속화되고 있다. AI 기반 챗봇이 문의·불만 처리의 1차 접점을 담당하면서 매장 내 직원 역할이 축소되는 추세다. UBS 애널리스트 마이클 라서(Michael Lasser)는 보고서에서 “아마존 ‘저스트 워크 아웃(Just Walk Out)’※주: 매장에 들어와 상품을 가져가기만 하면 자동 결제가 이루어지는 무인 계산 시스템과 같은 기술이 현재는 경제성·확장성 측면에서 제한적이지만, 불과 수년 내 상황이 달라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대형 소매 체인의 빠른 적응
월마트(WMT)는 AI·머신러닝을 통해 공급망을 자동화하고 동일 인력 규모로 매출을 확대하는 전략을 추진 중이다. UBS는 월마트가 향후 5년간 평균 임금 인상률 3%를 가정할 때 노무 비용 레버리지 40bp(0.40%포인트) 개선이 가능하다고 추정한다. 크로거(KR)는 컴퓨터 비전을 활용해 계산대 인력 배치 최적화를, 홈디포(HD)는 자동화로 절감된 비용을 일선 서비스에 재투자하는 방식을 채택했다.
다만 첨단 기술 도입 속도는 업체마다 편차가 크다. 초기 투자는 비(非)고객 대면 영역에 집중되는 경향이 뚜렷하다. UBS는
“소비자 행동 변화를 수반해야 하는 프런트엔드 혁신은 시간이 더 걸릴 수밖에 없다”
고 분석한다. 실제로 샘스클럽 고객 중 스캔 앤 고(Scan and Go) 기능을 사용하는 비율은 20~30%에 불과해 대중적 확산의 장벽을 시사한다.
인간형 로봇 점원의 ‘필연성’
UBS는 “상품 위치를 안내하거나 계산을 돕는 휴머노이드 로봇이 매장에 서는 일은 당장 내일 일어나지 않겠지만 불가피한 진화”라고 예측했다. 대형·고밀도 인력을 보유한 기업—대표적으로 월마트—일수록 자동화 수혜 폭이 크며, 비용 절감뿐 아니라 생산성 향상 효과도 기대된다.
AI, 이제 ‘기술’이 아닌 ‘전략’
AI는 단순한 IT 도구를 넘어 기업 전략의 핵심 축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월마트는 EVP of AI Acceleration, EVP of AI Platforms와 같은 전담 임원직을 신설했다. UBS는 “소비재 전반으로 유사 직책이 확산될 것”이라고 관측한다.
노동 생산성을 가늠하는 핵심 지표인 직원 1인당 매출액도 주목된다. 코스트코(COST), BJ’s, 워비 파커(WRBY)는 2021년 이후 해당 지표가 두드러진 성장세를 보여, 기술 투자에 따른 효율성 향상을 방증하고 있다.
거시 환경이 자동화 가속화
인플레이션 압력이 심화될 조짐도 기술 채택의 촉매로 작용한다. UBS는 실질 임금 증가세 둔화가 소비를 위축시킬 가능성을 경고하며, “마진 방어를 위해 소매업체가 노동 절감형 기술 도입을 더욱 서두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알아두면 좋은 용어·개념
※저스트 워크 아웃(Just Walk Out): 미국 아마존이 선보인 무인 계산 시스템으로, 인공지능·센서·비전 기술을 조합해 고객이 상품을 집어 들고 매장을 나가면 자동 결제가 이뤄진다.
※스캔 앤 고(Scan and Go): 고객 스마트폰 또는 전용 스캐너로 상품 바코드를 찍어 모바일 결제를 완료하고 계산대를 거치지 않는 셀프 체크아웃 방식이다.
※휴머노이드 로봇: 사람 형태를 띤 로봇으로, 팔·다리·머리 등 인간과 유사한 구조를 활용해 안내·물품 운반·상담 등을 수행한다.
전문가 시각과 전망
필자는 AI 도입이 소매업의 ‘규모의 경제 장벽’을 더욱 강화할 것으로 본다. 기술 투자 여력이 큰 대형 체인은 매출 총이익률을 방어하면서 고객 경험을 개선할 수 있지만, 중소형 업체는 초기 투자 부담과 데이터·인재 확보 측면에서 추가 난관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 동시에 재교육 및 전환 프로그램의 중요성이 커진다. 단순 반복 업무가 사라지는 대신 데이터 분석·소비자 경험 설계·AI 시스템 운영과 같은 고숙련 직무 수요가 늘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소매업의 고용 구조는 ‘감원’이라는 일차원적 결과에 그치지 않고, 직무 전환·평생학습·현장 인력의 기술 내재화라는 복합적 과제를 안게 될 전망이다. 따라서 정책·산업계·학계가 협력해 노동시장 완충 장치를 마련하고, 기술 수용성이 높은 인재를 육성하는 것이 핵심 과제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