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산업 패권을 둘러싼 경쟁이 인공지능(AI)과 에너지라는 두 개의 축으로 점점 더 명확히 규정되고 있다. 이 두 분야가 국가 간 지정학적 영향력을 가늠하는 핵심 변수가 되고 있다는 점에서, 새로운 형태의 군비경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2025년 11월 22일, 인베스팅닷컴의 보도에 따르면, 웰스파고 증권(Wells Fargo Securities)은 최신 연구에서 AI를 “미국과 중국 간 지정학적 힘겨루기의 중심”으로 규정하며, 이 기술이 “권력의 균형을 완전히 재편할 잠재력”을 지녔다고 평가했다. 보고서의 핵심은, 전통적 무기체계가 아니라 칩, 전력, 산업 병목의 통제가 경쟁의 승패를 좌우한다는 데 있다.
이 브로커리지는 현 상황을 신(新) 군비경쟁으로 묘사했다. 여기서의 경쟁은 미사일이나 위성이 아니라, 반도체 칩, 전력(전기), 그리고 핵심 공급망의 병목을 누가 쥐느냐로 판가름난다는 설명이다.
“AI는 미·중 사이의 지정학적 권력투쟁의 중심에 있으며, 권력의 균형을 완전히 바꿀 잠재력을 가진다.”
이미 AI 개발은 물리적 한계에 부딪혔다. 미국에서는 전력 가용성이 AI 성장의 “가장 큰 제약”으로 떠올랐고, 중국은 무엇보다 GPU 접근성이 가장 시급한 병목으로 지목됐다. 다시 말해, 미국은 전기가, 중국은 고급 연산 칩이 병목이라는 진단이다.
이에 대해 워싱턴은 전략 분야의 자급 기반을 다지기 위한 일련의 산업정책으로 대응하고 있다. 핵심은 국내 생산능력과 공급망 회복력을 높여 지정학적 충격에 흔들리지 않는 AI 역량을 확보하는 데 있다.
CHIPS 법(미국 반도체 지원법)과 최근 정부 투자는 이를 상징한다. 예컨대 $8.9억 달러의 Intel [/equities/intel-corp] 지원, $4억 달러의 MP Materials [/equities/fortress-value-acquisition-corp] 지원은 반도체와 핵심 광물의 국내 역량 확보를 겨냥한 조치로 소개됐다. 이는 국가 전략물자의 내재화를 통해 외부 충격을 흡수하려는 흐름으로 해석된다.
웰스파고는 미국이 중국-대만 관련 잠재적 분쟁 등 지정학적 리스크로부터 AI 생태계를 보호하기 위해, CHIPS 법과 유사한 추가 조치가 “더 나올 수 있다”고 본다. 이는 칩-소프트웨어-전력-인프라로 이어지는 AI 가치사슬 전반에 대한 방어적 투자를 의미한다.
에너지는 이제 그에 못지않게 핵심 축으로 부상했다. 웰스파고가 인용한 국제에너지기구(IEA)의 다년 전망에 따르면, 전 세계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는 기준 시나리오에서 2030년까지 두 배로, 강세 시나리오에서는 세 배까지 증가할 수 있다. 이는 AI 모델 학습·추론에서 비롯되는 막대한 전력 소모가 구조적으로 확대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미국에서는 천연가스 [/commodities/natural-gas]와 원자력이 데이터센터 증설을 떠받칠 주요 연료로 지목됐다. 보고서는 안정적 기저부하와 상대적 탄소 효율 측면에서 이 두 전원에 대한 의존이 커질 가능성을 제시한다.
이에 따라 데이터센터용 전력 생산은 2035년까지 가파른 증가가 예상되며, 그 동력의 상당 부분이 천연가스와 원자력에서 나올 수 있다는 관측이 제시됐다. 이는 송배전망 투자와 지역별 전원 믹스의 재편을 동반할 수 있다.
이미 전력 수급의 긴장은 거래와 제휴를 촉발하고 있다. 브로커리지에 따르면 기업들은 전력 접근권을 선점하기 위해 서두르고 있으며, AI 관련 데이터센터 계약은 2025년 전반에 걸쳐 누적적으로 가속되는 양상이다.
하이퍼스케일러들은 미래의 전력 확보를 위해 비트코인 채굴사와 신흥 클라우드 사업자까지 파트너로 끌어들이고 있다. 이는 전력 조달을 둘러싼 비정형적 동맹이 늘고 있음을 보여준다.
에너지의 전략적 역할은 외교에서도 확인된다. 최근 미국-일본 무역협정은 발전 및 전력망 현대화를 중심에 두고 서술됐으며, 일본의 투자 약속 대부분이 미국 내 AI·제조업용 전력 인프라에 향하고 있다고 소개됐다. 공동 설명서에는 GE Vernova [/equities/ge-vernova-llc], Kinder Morgan [/equities/kinder-morgan], Carrier Global [/equities/carrier-global-corp], Cameco [/equities/cameco-corp] 등이 이름을 올렸다.
웰스파고는 지금의 기술 경쟁을 냉전기 우주개발 경쟁과 비교하며 역사적 맥락에 놓았다. 당시 과학·우주·기술 분야에 대한 정부 지출은 GDP의 0.8%에 달했고, 이는 현재 수준의 약 6배에 해당한다고 평가됐다.
또한 제2차 세계대전, 한국전, 베트남전 등 주요 분쟁기에는 국방비 지출이 더 큰 폭으로 치솟았다는 점도 언급됐다. 이는 지속적인 지정학 경쟁이 과거에 요구했던 재정적 규모를 환기한다.
이와 함께 보고서는 희토류, 의약품, 조선도 전략적 취약요소로 거론했지만, AI와 전력이야말로 산업 역량이 곧 지정학적 지렛대로 직결되는 분야라고 지적했다. 다시 말해, 누가 더 빠르고 안정적으로 AI-전력 생태계를 확장·운영하느냐가 경쟁우위를 규정한다는 뜻이다.
이 경쟁에서 중국은 첨단 칩, 미국은 대규모 모델의 학습·배포에 필요한 전력을 각각 확보하려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보고서는 정리했다. AI는 칩과 전력이라는 양날의 자원을 동시에 요구하며, 어느 한쪽의 제약만으로도 전체 역량이 제한될 수 있다.
용어 풀이 및 배경
하이퍼스케일러란 글로벌 규모의 대형 클라우드·플랫폼 사업자를 뜻한다. 이들은 방대한 데이터센터를 기반으로 클라우드 컴퓨팅, AI 서비스 등을 제공하며, 전력 수요와 반도체 수요의 최전선 수요자로 분류된다.
GPU(Graphics Processing Unit)는 대규모 병렬 연산에 강점이 있는 칩으로, AI 학습·추론의 핵심 하드웨어다. 고성능 GPU에 대한 접근성은 국가·기업의 AI 경쟁력과 직결된다.
CHIPS 법은 미국의 반도체 산업 지원과 공급망 강화를 위한 법률로, 국내 생산능력 확충과 전략적 부품·소재의 안정적 확보를 목표로 한다.
분석과 시사점
첫째, 본 보고서가 던지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AI와 에너지의 결합이 지정학적 영향력의 새로운 기준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칩(계산력)과 전력(에너지)이라는 이중 병목은 상호보완적이면서도 동시에 상호제약적이다. 어느 한 축에서의 제약은 다른 축의 효율을 급격히 떨어뜨리며, 이에 따라 국가는 두 축을 동시에 강화하는 포트폴리오형 산업정책을 선택할 유인이 커진다.
둘째,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의 구조적 급증은 전원 믹스 재편과 전력망 현대화를 촉진한다. 보고서가 지목한 천연가스와 원자력의 역할 증대는 전력계통의 안정성과 확장성, 그리고 AI 서비스의 SLA(가용성·지연시간 등 품질지표)를 뒷받침하려는 합리적 선택으로 해석된다.
셋째, 산업정책의 추가 라운드가 이어질 개연성이 크다. 미국은 대만해협 리스크 등 외생 변수에 대비해 국내 생산·조달 비중을 높이려 하고, 중국은 첨단 칩 접근성을 넓히기 위해 다양한 경로를 모색할 가능성이 있다. 이는 글로벌 가치사슬의 이원화·중복 투자를 동반할 수 있다.
넷째, 기업 차원에서는 전력 선점이 새로운 경쟁력으로 부상한다. 하이퍼스케일러가 비트코인 채굴사, 신흥 클라우드 사업자와 손잡는 움직임은 전기라는 희소자원을 장기 계약으로 고정하려는 전략으로 볼 수 있다. 2025년을 전후한 전력·용량 확보 계약의 가속은 이런 흐름의 단면이다.
다섯째, 외교와 산업의 결합은 더욱 촘촘해질 전망이다. 미·일 무역협정에서 확인되듯, 전력 인프라는 이제 디지털·제조 경쟁력의 토대다. 동맹국 간 공동 투자와 기술협력은 에너지 안보와 디지털 안보를 동시에 다루는 방향으로 수렴하는 양상이다.
결론적으로, 본 보고서는 AI-전력-산업정책이 얽힌 삼중 축이 새로운 지정학적 군비경쟁의 무대임을 분명히 보여준다. AI의 계산력은 칩에서, 작동력은 전기에서 온다. 이 두 축을 둘러싼 병목을 얼마나 빠르고 안정적으로 해소하느냐가 국가와 기업의 다음 10년 경쟁력을 좌우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