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국빈방문 계기, 영국·미국 420억 달러 규모 ‘테크 번영 협정’ 체결

[영국·미국, 420억 달러 ‘테크 번영 협정’]

영국과 미국이 인공지능(AI), 양자컴퓨팅, 민수 원자력 분야 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총 420억 달러(약 310억 파운드) 규모의 투자·협력 각서를 체결했다. 이른바 ‘테크 번영 협정(Tech Prosperity Deal)’이라 명명된 이번 합의는 마이크로소프트, 엔비디아, 구글, 코어위브 등 미국 빅테크 기업들의 대규모 영국 직접투자를 골자로 한다.

2025년 9월 16일, 로이터 통신(Reuters)의 보도에 따르면 이번 협정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두 번째 영국 국빈 방문에 맞춰 발표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17일(현지시간) 윈저성에서 찰스 3세 국왕 및 영국 왕실의 환대를 받을 예정이다. 협정문은 특히 AI 모델 공동 개발, 양자컴퓨팅 역량 확장, 민수 원전 프로젝트 간소화 등을 통해 양국의 경제 성장·과학 연구·에너지 안보를 동시에 강화하겠다는 목표를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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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키어 스타머(Keir Starmer) 총리는 “이번 합의는 대서양 양안 수천만 명의 미래를 형성하고, 성장과 안보를 제공할 잠재력을 지녔다”라고 평가했다. 영국은 장기간 이어진 저성장을 반전시키기 위해 규제 완화 기조를 유지하며 미국식 ‘라이트터치’(light-touch) 규제모델을 선호하고 있다. 이는 인공지능 거버넌스에 있어 보다 개입적인 유럽연합(EU) 접근법과 대비된다.


1. 세부 투자 계획

“미국은 영국의 믿을 수 있는 기술 파트너로 남겠다.”
—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 CEO

마이크로소프트는 220억 파운드(약 300억 달러)를 투입해 런던 북동부 러튼(Loughton)에 영국 최대 규모 AI 슈퍼컴퓨터를 건설한다. 또한 클라우드와 AI 인프라 확장에도 자금을 투입해 자사 애저(Azure) 서비스의 영국 내 역량을 높일 계획이다. 브래드 스미스 사장은 “영국 경쟁당국이 액티비전 블리자드 인수를 승인한 이후 양국 관계가 크게 개선됐다”라며 “지금 기분이 훨씬 나아졌다”고 밝혔다.

그래픽처리장치(GPU) 시장을 선도하는 엔비디아(Nvidia)는 “유럽 최대 규모”라 소개한 프로젝트를 통해 영국 전역에 12만 개 GPU를 배치한다. 구체적으로 영국 스타트업 엔스케일(Nscale)에 최대 6만 개의 차세대 ‘그레이스 블랙웰 울트라(Grace Blackwell Ultra)’ 칩을 공급한다. 해당 칩은 오픈AI의 ‘스타게이트(Stargate)’ 프로젝트와 연동되며, 마이크로소프트와 협력해 AI 슈퍼컴퓨터 구축에 쓰인다.

구글은 50억 파운드(약 68억 달러)를 투자해 런던 외곽 월섬크로스(Waltham Cross)에 새 데이터 센터를 짓고, 자회사 딥마인드(DeepMind)를 통한 AI 연구를 확대한다. 클라우드 전문기업 코어위브(CoreWeave)는 스코틀랜드 데이터센터 업체 데이터비타(DataVita)와 손잡고 고효율 데이터센터 구축에 15억 파운드를 투입해 총 영국 투자액을 25억 파운드로 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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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밖에도 세일즈포스, 스케일 AI, 블랙록, 오라클, 아마존웹서비스(AWS), AI 파인더(AI Pathfinder) 등이 수억~수십억 파운드 규모의 추가 투자를 발표했다.


2. 정치·경제적 맥락

영국은 미국을 단일 국가 기준 최대 교역 파트너로 두고 있다. 빅테크 기업들이 이미 수십억 달러를 영국에 투자해왔으나 브렉시트 이후 ‘성장 동력 둔화’와 ‘규제 불확실성’ 우려가 이어졌다. 스타머 총리에게는 ‘경제 반등’ 압박이 크게 가중돼 있다. 이번 협정으로 투자 유치·일자리 창출 효과를 노리되, AI 규제의 경우 EU보다 완화된 노선을 고수해 새로운 산업 클러스터를 육성하려는 계산이 깔렸다.

한편, 트럼프 행정부는 EU와 영국의 디지털세 및 온라인 안전법 등에 비판적 입장을 보여왔다. 다만 런던 협정 논의에서 관련 조세·규제 쟁점은 제외됐다. 이는 정치적 민감 사안을 피해 ‘투자’와 ‘기술협력’에 초점을 맞추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3. 전문가 분석과 전망

① 민수 원자력 프로젝트 간소화
민간 주도로 전개되는 소형모듈원자로(SMR) 도입이 가속화될 가능성이 크다. SMR은 기존 대형 원전에 비해 공정 기간이 짧고 안전성이 높아 차세대 에너지 안보 대안으로 주목받는다.

② 양자컴퓨팅 생태계 확대
양자컴퓨팅은 초고속 연산 능력으로 암호 해독·신약 개발·기후 모델링 등에 ‘게임체인저’가 될 전망이다. 영국 정부가 대학·연구소와 긴밀히 협력해 ‘양자 국가전략’을 추진해온 만큼, 미국 투자는 상업화 속도를 크게 높일 수 있다.

③ AI 규제 완화와 윤리 이슈
EU의 AI 법안과 달리 ‘라이트터치’ 모델은 혁신 속도를 높이는 대신 개인 정보 보호·알고리즘 편향 관리가 취약해질 위험이 있다. 영국이 법적·윤리적 균형을 어떻게 맞출지가 핵심 관전 포인트다.

④ 스타트업·벤처 투자 유입
마이크로소프트·엔비디아·구글 등 빅테크가 인프라를 제공하면, 영국 내 AI·하이테크 스타트업들은 R&D 비용을 줄이면서 글로벌 시장에 빠르게 진입할 수 있다.

⑤ 금융시장 파급효과
420억 달러 규모의 직접투자는 파운드화 강세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동시에 런던 증시의 기술 섹터 재평가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4. 용어 해설

AI 슈퍼컴퓨터 — 대량의 데이터 학습·추론을 고속으로 수행하는 특화 시스템. GPU 클러스터와 고속 네트워크가 핵심이다.

양자컴퓨팅 — 0과 1을 동시에 나타내는 ‘큐비트(qubit)’를 활용해 기존 컴퓨터보다 지수적으로 빠른 연산을 수행하는 차세대 기술이다.

민수 원자력( civil nuclear ) — 군사 목적이 아닌 전력 생산·의료·연구용으로 쓰이는 원자력 기술·시설을 의미한다.

라이트터치 규제 — 시장 자율·혁신을 중시해 법적 개입을 최소화하는 규제 방식이다. 반대 개념은 ‘헤비터치’(heavy-touch) 규제다.


5. 결론 및 전망

이번 테크 번영 협정미·영 양국의 전략적 이해관계가 맞물린 결과물이다. 미국은 동맹국 내 공급망 다각화와 규제 우호 환경을 확보하고, 영국은 ‘포스트 브렉시트 시대’ 성장 동력을 얻는다. 그러나 AI 윤리·노동시장 변화·데이터 주권 등 부작용 관리가 뒤따르지 않는다면 ‘규제 진공’이라는 또 다른 리스크로 이어질 수 있다. 전문가들은 “투자액 규모만큼이나 투명한 거버넌스 확립이 향후 성공의 관건”이라고 지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