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드만삭스·모건스탠리, 아키고스 투자자 항소 기각되며 법적 우위 확보
뉴욕 맨해튼 제2 연방순회항소법원(2nd U.S. Circuit Court of Appeals)은 3인 전원일치 의견으로 골드만삭스그룹(Goldman Sachs)과 모건스탠리(Morgan Stanley)의 손을 들어주었다. 투자자들이 제기한 ‘시장조작 및 내부자거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양대 월가 투자은행은 아키고스 캐피털 매니지먼트(Archegos Capital Management) 붕괴와 직접적 법적 책임에서 벗어났다.
2025년 9월 16일, 로이터 통신 보도에 따르면 이번 판결은 2021년 3월 ‘36억 달러 규모 가족 사무실’로 불리던 아키고스의 파산으로 막대한 손실을 본 개별·기관 투자자들이 제기한 일련의 소송을 일괄 기각한 하급심(2024년 3월, 제드 라코프 연방지방법원 판사)의 결정을 그대로 유지한 것이다.
재판부를 대표해 의견서를 작성한 마리아 아라우조 칸(Maria Araujo Kahn) 순회판사는 “아키고스는 투자 대상 기업에 대하여 내부자(insider) 지위를 갖지 않으므로, 피고 은행들이 ‘내부 정보’를 이용해 매매했더라도 이는 전통적 의미의 내부자거래 규정 위반으로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나아가 “골드만삭스와 모건스탠리가 아키고스의 유동성 위기를 선별적 고객에게 알렸다는 명확한 증거도 없다”고 덧붙였다.
‘프런트러닝 의혹’과 투자자들의 주장
원고 투자자들은 총 7건의 집단소송을 통해, 피고 은행들이 2021년 3월 아키고스의 마진콜 불이행 가능성을 미리 인지하고, 바이아컴CBS(ViacomCBS), 디스커버리(Discovery), 바이두(Baidu) 등 당시 빌 황(Bill Hwang)의 ‘선호 종목’에서 수십억 달러 규모 보유지분을 선제적으로 매도(dumping) 했다고 주장했다. 이른바 프런트러닝(front running)은 고객 주문 정보를 이용해 먼저 거래하는 불법 행위로, 내부자거래와 함께 자본시장에서 가장 중대한 위법 유형으로 꼽힌다.
그러나 재판부는 “아키고스와 두 은행 간에는 수탁자(fiduciary) 관계가 성립하지 않았고, 따라서 아키고스가 내부자에 해당하지 않는 이상 은행들의 행위에 법적 책임을 묻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총수요스왑(TRS)의 위험성과 아키고스 붕괴
총수요스왑(Total Return Swap·TRS)은 기초자산(주식·채권 등)의 ‘총수익(배당·이자·시세차익)’을 거래 상대방에게 이전하는 파생계약이다. 해당 계약을 활용하면 실제 주식을 소유하지 않고도 레버리지를 극대화할 수 있으나, 기초자산 가격이 급락할 경우 마진콜(추가 증거금 요구) 부담이 눈덩이처럼 커진다. 아키고스는 TRS를 이용해 최대 1,600억 달러 상당의 주식 익스포저를 쌓은 것으로 추정된다.
2021년 3월, 주요 보유 종목이 급락하면서 빌 황은 증거금을 마련하지 못했고, 골드만삭스·모건스탠리 등 프라임 브로커(prime broker) 1들이 대규모 담보 주식을 일제히 매도했다. 이로 인해 시장에는 일시적으로 공급이 폭증했고, 해당 종목 주가가 추가 급락하면서 다른 투자자들도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
1 프라임 브로커는 헤지펀드나 패밀리오피스 등에 대차거래, 파생상품, 레버리지 한도 등을 포괄적으로 제공하는 대형 투자은행을 말한다.
형사 사건과 민사 사건의 분리
빌 황과 전 최고재무책임자 패트릭 홀리건(Patrick Halligan)은 2024년 7월 사기·시장조작 혐의에 대해 유죄 평결을 받고 각각 18년·8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두 사람 모두 항소 의사를 밝히며 보석 상태로 불구속 재판을 이어가고 있다.
한편 투자자들이 제기한 이번 민사 집단소송은 ‘은행들이 아키고스의 위기를 미리 알리고 지분을 팔아 개인·기관투자자에게 피해를 전가했다’는 점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하지만 하급심과 항소심 모두 “법적 요건이 충족되지 않는다”며 원고의 청구를 일축했다.
이전 합의 및 관련 재판 일지
2025년 7월에는 골드만삭스·모건스탠리·웰스파고(Wells Fargo)가 前 바이아컴CBS 주주들과 1억2,000만 달러 규모의 합의금을 지급하기로 결정한 바 있다. 당시에도 피고 은행들은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고수했으며, 합의는 장기 소송 리스크와 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으로 풀이됐다.
이번 사건의 공식 기록물은 In re Archegos 20A Litigation으로, 사건번호 24-1159·1161·1162·1166·1173·1177·1178이 병합되어 판결이 이뤄졌다.
법조계·시장 관전 포인트
① 내부자·수탁자 요건 — 이번 판결은 ‘내부자(insider)’ 및 ‘수탁자 의무(fiduciary duty)’가 인정되지 않을 경우, 투자은행의 대규모 매도 행위가 곧바로 불법이 되지 않는다는 선례를 다시 한 번 확인했다.
② 사전 정보 제공 여부 — 재판부는 “선호 고객에게 위기 정보를 미리 제공했다”는 원고 측 주장을 증거 불충분으로 기각했다. 이는 향후 정보 비대칭 논쟁에 중요한 판례로 활용될 가능성이 크다.
③ 파생상품 레버리지 규제 — 아키고스 사태 이후 총수요스왑 등 ‘비(非)공시 파생 계약’의 위험성이 대두되면서,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13F 보고서 확대·파생포지션 공시 강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시장 참여자들은 규제 수위와 시기, 국제 공조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전문가 시각
월가의 한 자본시장 변호사는 “이번 결정은 투자은행 프라임 브로커리지 비즈니스의 리스크 관리 프로세스가 여전히 법적으로 방어 가능하다는 점을 시사한다”면서도 “평판 리스크와 잠재적 규제 강화는 여전히 남아 있다”고 평가했다.
또 다른 헤지펀드 매니저는 “골드만삭스와 모건스탠리가 법적 책임에서 벗어났지만, 총수요스왑 등 익스포저 관리 실패가 초래할 수 있는 시스템 리스크는 여전히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향후 전망
빌 황과 패트릭 홀리건의 형사 항소 절차가 본격화되면, 증거 공개 과정에서 추가 정보가 시장에 드러날 가능성도 있다. 반면 이번 민사 사건 항소 기각으로 투자은행을 상대로 한 후속 손해배상 소송은 동력을 상당 부분 잃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법조계는 “투자자들이 새로운 법적 근거를 찾아낼 가능성은 낮다”면서도 “기관투자가·연기금이 대체투자 위험 관리 체계를 강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 참고: 총수요스왑(TRS)은 단기적으로 레버리지를 극대화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시장 변동성이 확대될 경우 담보 부족을 초래해 급격한 청산 위험을 유발한다. 2021년 아키고스 사태는 이러한 위험이 현실화된 대표적 사례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