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로이터—미국 연방준비제도(Fed)는 17일(현지시간)부터 이틀간의 통화정책회의(FOMC)를 시작했다. 현직 연준 이사 해임을 시도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사상 초유의 조치는 일단 법원 제동으로 무산됐지만, 백악관이 통화정책을 집행부 영향권으로 끌어들이려는 압박은 여전히 거세다.
연방항소법원 워싱턴D.C. 순회부는 16일 2 대 1 판결로 리사 쿠크 연준 이사가 소송 결과가 나올 때까지 직을 유지할 수 있다고 결정했다. 해당 판결로 쿠크 이사는 이번 주 회의에 전권을 행사하며 참석하게 됐다. 쿠시 데사이 백악관 대변인은 “대통령은 쿠크 이사를 적법한 사유로 해임했다“며 대법원 상고 방침을 밝혔지만 구체적 일정은 공개하지 않았다.
2025년 9월 16일, 인베스팅닷컴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행정부는 쿠크의 해임 근거로 ‘모기지 신청 정보 허위 기재’ 의혹을 제기했으나, 쿠크 측은 모든 혐의를 전면 부인하며 어떠한 형사 고발도 받지 않았다. 연준은 “법원 판결에 따르겠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백악관은 성명을 통해 “행정부는 최종 승소를 확신한다”고 밝혔으나, 쿠크가 헌법상 ‘적법 절차(due process)’를 거치지 못했다는 항소법원 다수 의견에 가로막힌 상태다. 판결문에서 브래들리 가르시아 판사는 “정부는 쿠크에게 실질적 통지나 반박 기회를 제공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시장 관심은 동시에 금리 결정보다 연준 독립성 훼손 여부에 쏠리고 있다. 이번 FOMC에서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하해 4.00~4.25%로 내릴 가능성이 크지만, 이는 트럼프 행정부가 요구해 온 대폭 인하에는 못 미친다.
회의 테이블에는 새로운 인물도 합류한다. 미 상원은 16일 48대 47로 스티븐 미런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CEA) 의장을 연준 공석 이사로 인준했다. 미런은 이번 회의 전까지 선서할 예정이며, 그의 임기는 1월 31일까지만 보장된다. 다만 그는 과거 기고문에서 연준 문화가 “폐쇄적”이라고 비판해 온 만큼, 회의 밖 공개 발언을 통해 정책 방향성에 파장을 일으킬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첫 금리 인하 가능성…배경은 취약한 고용시장
이번 인하가 성사될 경우 지난해 12월 이후 첫 조정이 된다. 7월 회의 당시 견조해 보였던 고용지표는 이후 급속히 약화됐다. 반면 인플레이션은 트럼프 대통령의 공격적 관세 정책 여파로 연준 목표치인 2%를 상회하며, 연준의 ‘이중 책무(고용 최대화·물가 안정)’ 사이 균형점 찾기가 더욱 어려워진 상황이다.
특히 최근 발표된 8월 비농업부문 신규고용은 7만 건에 머물러 3개월 연속 둔화세, 실업률도 4.2%로 반등했다. 애널리스트들은 고용 악화가 금리 인하 논리를 뒷받침할 핵심 요인이라고 분석한다.
반면 백악관은 공공연히 ‘대폭적인 금리 인하’와 ‘양적완화(QE) 재개’를 요구하며, 차기 제롬 파월 의장 임기 만료(내년 5월)를 겨냥한 교체 시나리오를 검토 중이다. 정치권 압박이 거세질수록 연준의 의사결정 구조와 시장 신뢰는 시험대에 오를 전망이다.
“적법 절차란, 개인이 정부로부터 불이익을 받기 전에 충분한 통지와 항변 기회를 보장받아야 한다는 헌법 원칙이다.”—미 연방대법원 판례 요약
전문가 시각에서 보면, 쿠크 사건은 ‘for cause’ 해임 사유의 범위를 둘러싼 첫 전면전이다. 만약 대법원이 대통령 측 손을 들어준다면, 미래 어느 행정부든 연준 이사를 직권으로 교체할 선례가 생긴다. 이는 세계 금융시장에 연준 독립성 약화라는 불확실성을 던져 달러 가치, 국채 금리, 글로벌 자금 흐름까지 흔들 수 있다.
연준의 성격과 역할도 다시 조명받고 있다. 미국 헌법은 통화발권을 의회에 부여했지만, 의회는 1913년 연방준비법을 통해 독립적 중앙은행 시스템을 구축했다. 의회 감시 아래 있지만, 의회·행정부로부터 운영상 독립을 보장받는 것이 핵심이다. 이는 정치주기와 무관한 장기적 물가·고용 안정에 필수적이라는 광범위한 경제학적 합의가 존재한다.
한편 ‘due process’나 ‘for cause’ 같은 법률 용어는 국내 독자에게 낯설 수 있다. Due process는 행정절차법상 ‘적법절차’에 해당하며, 정부가 국민 권익을 제한하려면 합리적 이유·절차를 갖춰야 한다는 개념이다. For cause는 ‘정당한 사유’를 뜻하며, 단순한 인사권이 아닌 명백한 위법·직무태만 등이 있어야 해임이 가능하다는 의미로 쓰인다.
전망과 과제: 이번 회의에서 1석 추가된 ‘매파-비둘기’ 균형은 미묘해진다. 쿠크는 전통적으로 중도·비둘기 성향으로 분류되고, 미런은 정책 완화에 적극적일 수 있다는 평가다. 그러나 미국 경제가 침체 위험에 근접할 경우 연준 전체가 빠른 속도로 완화 기조로 이동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종합하면, 금리 결정 자체보다 연준의 제도적 독립성을 둘러싼 공방이 당분간 금융시장의 주요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파월 의장의 거취, 쿠크·미런의 역할, 대법원 최종 판결 등 복합적 요소가 맞물려 연준의 향후 행보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