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중앙은행(Bank of Thailand, BoT)이 최근 가파르게 상승한 바트화 환율을 안정시키기 위해 금(金) 거래에 대한 과세를 포함한 복수의 정책 수단을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특히 바트화 강세가 수출 기업과 국내 경기에 부담을 주고 있다는 산업계의 우려가 커지며, 통화당국이 환율 완충장치를 서둘러 마련하는 모습이다.
2025년 9월 16일, 로이터통신(Reuters) 보도에 따르면, 세타풋 수티왓나루엑(Sethaput Suthiwartnarueput) 태국 중앙은행 총재는 방콕 기자회견에서 “금 거래에 부과하는 세금을 포함해 여러 옵션을 검토 중”이라며 “태국인이 금을 많이 매매하는 만큼, 앞으로는 바트화 대신 미국 달러화로 결제하도록 유도하겠다”고 설명했다.
세타풋 총재는 “금 거래 과세는 하나의 대안일 뿐이며, 아직 결정된 것은 없다”고 강조했다.
태국 바트화는 이날 달러당 31.718바트까지 올라 약 4년 만의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는 태국 주요 경제단체가 적정선으로 제시한 34~35바트 범위를 크게 상회한다.
1. 바트화 강세 배경 – 달러 약세와 캄보디아행 금 수출 급증
올해 1~7월 태국의 금 수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82% 급증한 76억 달러(약 10조 1,600억 원)를 기록했다. 이 가운데 21억 달러(약 2조 8,000억 원) 규모가 캄보디아로 향한 물량이었다. 시장에선 “금 수출 증가→거래 시 바트화 수요 확대→바트 강세”라는 연결고리로 분석한다.
여기에 글로벌 외환시장에서 달러화 약세가 지속되면서 바트화 매수세가 더해졌다. 바트(Thai Baht)는 태국의 법정통화로, 외환시장에서 USD/THB로 표기된다.
2. 재정·민간부채 구조적 위험 경고
세타풋 총재는 환율 안정책과 별개로 태국 경제의 구조적 취약성을 지적했다. 그는 “재정적 여력이 제한돼 있으며, 재정수지 악화가 개선되지 않을 경우 신용등급 강등(ratings downgrade) 위험이 있다”고 언급했다. 현재 태국 정부는 세입보다 지출이 큰 만성 적자를 기록 중이다.
아울러 가계·기업의 민간부채 증가세도 경계했다. 총재는 “단기 부양에만 집중하면 장기 구조개혁이 늦어질 수 있다”며 차기 총재 취임 후에도 구조적 문제 해결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한다고 주문했다.
3. 기준금리 4차례 인하…추가 완화 가능성
태국 중앙은행은 지난해 말 이후 기준금리를 네 차례 내렸다. 세타풋 총재는 “지난 인하는 단기 경기부양이라기보다 금융여건 완화 조치”라고 설명했다. 다음 통화정책회의는 10월 8일로 예정돼 있으며, 일부 경제학자들은 추가 인하를 예상하고 있다.
총재 임기는 9월 30일 만료되며, 비타이 라타나콘(Vitai Ratanakorn) 전 국영은행장이 10월 1일 후임으로 취임한다. 비타이는 인플레이션 억제보다 성장 지원 성향이 강한 ‘인플레이션 비둘기파(inflation dove)’로 분류돼, 완화적 통화정책 기조가 이어질 가능성이 제기된다.
4. 정치권 진출설 일축
세타풋 총재는 기자회견에서 “퇴임 후 정계 진출 계획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수년간 정책 현장을 지켜본 경험을 토대로, 차기 총재에게 장기·구조적 과제에 집중해달라는 메시지를 남기고 싶다”고 말했다.
5. 용어 해설
· 인플레이션 비둘기파(inflation dove): 물가 상승보다 경기 부양을 우선시해 기준금리 인하 등 완화적 정책을 선호하는 통화당국 인사를 일컫는 금융시장 은어다.
· 신용등급 강등(ratings downgrade): 국제 신용평가사가 국가·기업의 채무상환 능력을 하향 조정하는 행위로, 국채 금리 상승과 외국인 투자 이탈을 초래할 수 있다.
이처럼 태국 중앙은행은 통화·재정·구조개혁을 망라한 정책 패키지를 예고하며, 바트화 과열과 경제 펀더멘털 악화를 동시에 관리하는 ‘이중 과제’에 직면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