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D.C.—미국 상원이 48대 47이라는 초박빙 표결 끝에 스티븐 미란(Stephen Miran)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이사회(Board of Governors) 신임 이사로 확정했다. 공화당이 다수인 상원이 사실상 당론투표를 단행하면서 이사회 7석 가운데 공석이던 한 자리가 채워졌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중앙은행에 대한 직접적인 영향력을 더욱 확대하게 됐다.
2025년 9월 16일, 로이터 통신(Reuters)의 보도에 따르면 이번 인준은 불과 여섯 주 만에 이뤄진 이례적인 속도전이었다. 지난 8월 아드리아나 쿠글러(Adriana Kugler) 이사가 돌연 사임하면서 생긴 공백을 메우기 위해 트럼프 대통령이 곧바로 미란을 지명했고, 통상 수개월이 걸리던 인준 절차가 6주 안에 마무리됐다.
이번 표결 결과로 미란은 연준의 12명 기준금리 결정 투표권자 가운데 한 명이 된다. 연준은 17일(현지시간)부터 이틀간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 돌입할 예정이며, 시장은 0.25%포인트 기준금리 인하를 기정사실로 보고 있다. 그러나 미란은 더 큰 폭의 인하를 주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는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CEA) 수장으로서 “수입관세가 물가에 미치는 압력은 미미하다” “이민 규제가 주택 수요를 낮춰 인플레이션 위험을 완화한다”는 주장을 반복해왔다.
‘복수 모자’ 착용 논란…민주당 “트럼프의 꼭두각시”
미란은 연준 이사로 일하는 동안 기존의 백악관 직위를 유지하되 무급 휴직 상태에 들어간다. 그의 임기는 2031년 1월 31일까지지만, 후임 인선이 지연될 경우 무기한 연임이 가능하다. 민주당은 이러한 이중 지위를 두고 “연준의 독립성을 해칠 수 있는 심각한 이해충돌”이라며 트럼프의 꼭두각시(puppet)
라고 비판했으나, 미란은 “연준 윤리 규정을 철저히 따르겠다”고 반박했다.
연준 이사는 통화정책 표결 외에도 금융규제·감독, 지역사회 은행정책, 조직 예산 및 인사 등 다수의 위원회에 참여한다. 따라서 미란의 합류는 단순한 기준금리 논쟁을 넘어, 미국 금융 시스템 전반에 영향을 미칠 여지를 남긴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이 1기 때 임명한 미셸 보먼(Michelle Bowman)·크리스토퍼 월러(Christopher Waller) 이사도 지난 7월 29~30일 회의에서 ‘더 큰 폭의 인하’를 요구하며 반대표를 던진 바 있다. 시장 컨센서스보다 부진한 노동시장 지표가 속출하면서, 이번 9월 회의에서 세 사람 모두가 다시 한 번 ‘트리플 디센터(Triple Dissent)’에 나설 가능성이 제기된다. 연준 이사 세 명이 동시에 반대표를 던진 사례는 1988년 앨런 그린스펀 의장 초기에 있었을 뿐이다.
헷갈리기 쉬운 용어 해설
연방준비제도 이사회(Board of Governors)는 미국 중앙은행인 연준의 최고 의사결정 기구로, 대통령이 지명하고 상원이 승인하는 7명의 이사로 구성된다. 각 이사는 최대 14년의 임기를 보장받아 정치적 압력으로부터 독립성을 유지하도록 설계됐다.
디센트(dissent)란 FOMC 회의에서 다수 의견에 반대해 다른 금리 수준을 주장하며 ‘반대표’를 행사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시장은 디센트를 연준 내부의 통화정책 노선 갈등 신호로 해석하며, 환율·채권금리·주식시장 변동성이 확대될 수 있다.
전문가 진단 및 시장 파급
월가 애널리스트들은 “미란의 투입으로 FOMC 내 완화적(비둘기파·dovish) 성향이 강화될 것”이라며 “기존 0.25%포인트 인하가 아닌 0.50%포인트 혹은 추가 인하 가능성을 주시해야 한다”고 분석한다. 특히 실업률 상승과 채권수익률 곡선 역전 등 경기 둔화 신호가 뚜렷해지는 상황에서, 연준이 선제적 조치를 강화할 명분이 마련됐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다만 미란이 백악관 경제 철학을 고스란히 연준 회의석상에 반영할 경우, 중앙은행의 정치적 중립성 훼손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는 우려도 강하다. 일부 국제 신용평가사는 “정책결정 과정의 정치화가 심화될 경우 달러화 신뢰도가 타격을 받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향후 일정
미란은 절차상의 서류 작업과 선서식을 마치는 대로 바로 17일 FOMC 회의 테이블에 앉게 된다. 이 회의 결과는 18일(수요일) 오후 2시(미 동부시간) 연준 성명과 제롬 파월 의장 기자회견을 통해 발표될 예정이다.
시장 참가자들은 ‘점도표’(연준 위원들의 향후 금리 예상치)와 더불어 미란 등 새로운 투표권자의 매파·비둘기파 스펙트럼 변화를 세밀히 분석해 연말 및 내년 초 금리 경로를 예측할 것으로 보인다.
“일자리 시장이 둔화 신호를 보내는 지금, 우리의 목표는 물가안정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최대한 빠르게 경기 활력을 되살리는 것”
— 스티븐 미란, 상원 인준 직후 발언 中
그의 발언은 트럼프 대통령의 ‘대폭 인하’ 요구보다는 완화적이나, 동시에 경제 현장의 고용 침체를 지적하며 “연준이 기민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결국 이번 인준이 연준 외부 압력 논쟁과 통화정책 경로에 어떤 장기적 변화를 가져올지는, 18일 발표될 FOMC 성명과 이후 통계 지표 반응에 달려 있다는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