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코펜하겐발 로이터 통신이 전한 바에 따르면, 프랑스 방위산업체 탈레스(Thales)와 공동 개발사들이 덴마크의 차세대 지대공 미사일 체계(SAMP/T) 선정 이후 유럽 및 기타 지역 국가들과 추가 수출 계약을 위한 협의를 확대하고 있다.
2025년 9월 15일, 로이터 통신 보도에 따르면, 허베 다만(Hervé Dammann) 탈레스 육·공군 시스템 부문 부사장은 기자간담회에서 “유럽 전역에서 방공 체계 확충이 최우선 과제로 부상했다”며 “동유럽뿐 아니라 서유럽 여러 국가와도 논의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미 관심을 공개한 그리스와 벨기에 외에도 이름을 밝히지 못하는 여러 시장이 있다”고 덧붙였다. 이번 간담회는 덴마크가 SAMP/T를 선택한 배경과 향후 수출 전망을 설명하기 위해 마련됐다.
“유럽 안보 환경이 급변하면서 360도 전 방향 요격 능력을 갖춘 방공 체계가 필수적이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 허베 다만 부사장
최근 폴란드가 자국 영공에서 러시아산으로 추정되는 무인기를 요격한 사건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동맹국이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처음으로 실사격을 감행한 사례로 기록됐다. 이 사건은 유럽 각국이 자국 영공 방어 능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경각심을 더욱 키웠다.
덴마크 정부는 9월 13일 “총 580억 덴마크 크로네(미화 91억 달러)를 투입해 방공망을 현대화하고, 이 가운데 SAMP/T 두 기(基)를 도입한다”고 발표했다. 덴마크는 프랑스·이탈리아를 제외한 유럽 국가 중 SAMP/T를 도입한 첫 번째 사례가 됐으며, 동시에 미국 레이시온(RTX) 패트리엇 체계를 제치고 유럽산 무기를 선택한 이례적 결정으로 주목받았다.
이번 입찰은 ‘유럽산 무기 구매 확대’라는 정치적 의지가 실전에서 얼마나 관철될 수 있는지를 가늠하는 시험대로 평가됐다. 코펜하겐과 워싱턴은 최근 그린란드 영유권 문제를 두고 갈등을 빚은 바 있어, 자칫 북미 동맹 균열로 비화할 수 있는 민감한 사안이었다.
그러나 트룰스 룬 포울센(Troels Lund Poulsen) 덴마크 국방장관은 13일 기자회견에서 “이번 결정은 패트리엇에 대한 거부가 아니라, 단지 최적의 솔루션을 택한 것”이라며 정치적 해석을 일축했다.
정치권 반응도 엇갈렸다. 보수당 소속 라스무스 얄로브(Rasmus Jarlov) 의원은 엑스(X·구 트위터)에서 “신뢰할 수 있고 위협적이지 않은 파트너에게서 구매하는 것이 동맹에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중도좌파 마르틴 리데고르(Martin Lidegaard) 자유사회당 대표는 “580억 크로네가 이스라엘이나 미국이 아닌 유럽 방산업계로 향하게 돼 무척 기쁘다”고 썼다.
탈레스 측은 정치적 배경에 대해 언급을 자제하면서도 “SAMP/T는 360도 회전형 레이더와 다기능 위상배열레이다(MFR)를 결합한 체계로, 다양한 방향에서 동시에 날아오는 위협을 요격할 수 있다는 점이 강점”이라고 설명했다.
SAMP/T(사앰/티)란 무엇인가?
SAMP/T는 프랑스 탈레스와 다국적 미사일 제조사 MBDA(프·이탈리아 지사 전신 포함)가 공동 개발한 중·장거리 지대공 미사일 체계다. ‘Surface-to-Air Missile Platform/Terrain’의 약자로, Aster 30 블록 1 미사일을 사용해 최대 120km 거리에서 항공기·무인기·탄도미사일을 요격한다. 동일 계열인 미국 패트리엇(Patriot)과 비교할 때 차별화된 360도 방어각을 제공하는 것이 특징이다.1
1패트리엇은 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해 발사대 각도를 조정해야 하지만, SAMP/T는 회전형 레이더 덕분에 발사대 이동 없이 전 방향 대응이 가능하다.
현재 패트리엇은 독일·네덜란드·스페인 등 유럽 6개국 이상이 운용 중이며, 세계적으로 RTX(옛 레이시온 테크놀로지스)가 생산·업그레이드를 주도하고 있다. 이에 비해 SAMP/T는 이탈리아·프랑스가 실전 배치했으나, 덴마크가 합류함으로써 유럽 공동 방산 프로젝트의 밸류 체인 다변화라는 의미를 갖게 됐다.
유럽, 중거리 방공 체계 ‘플러그 앤드 플레이’ 시대 진입
덴마크는 SAMP/T 외에도 나토 회원국의 상호운용성을 고려해 노르웨이 KONGSBERG·레이시온 공동 개발 ‘NASAMS’, 독일 디펜스 그룹 ‘IRIS-T’, 프랑스 MBDA ‘VL-MICA’ 등 중거리 방공 옵션을 조사 중이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올해 초 ‘방위준비성 점검 보고서’에서 공중·미사일 방어를 7대 역량 격차 중 하나로 지목했다. 이는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유럽이 미국 의존도를 줄이고 자체 공급망을 강화하겠다는 전략적 목표와 궤를 같이한다.
전문가 시각
이번 결정은 단순한 무기 구매를 넘어, 유럽 방산 주권(European Defence Sovereignty)을 향한 흐름을 실증적으로 보여준다는 평가다. 기자가 취재한 복수의 유럽 방위전략 연구원들은 “미국 장비를 배제하는 것은 아니지만, 러시아·중국과 같은 지정학적 압력 하에서 유럽이 자체 산업 생태계를 육성하려는 장기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덴마크의 사례는 ‘상호 운용성’과 ‘전략적 자율성’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으려는 다른 중소국에도 선례가 될 전망이다. 그리스·벨기에를 포함한 국가들이 향후 SAMP/T를 도입할 경우, 유럽 내 다종 체계 혼합 운용에 따른 기술·예산 조율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를 가능성도 제기된다.
허베 다만 부사장은 “현재 제시된 잠재 수요만으로도 생산라인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며 “협력사인 MBDA 이탈리아·프랑스 지사와의 분업 구조를 재정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그는 세부 계약 규모나 일정에 대해서는 “협상 중인 국가별 기밀사항”이라며 말을 아꼈다.
향후 과제
첫째, NATO 통합방공체계에 SAMP/T를 완전하게 통합하려면 소프트웨어 링크 16 업그레이드, 사격통제 센터 인터페이스 표준화 등 기술적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 둘째, 유럽연합군(가칭) 창설 논의가 본격화하면 다국적 부품 조달·유지보수 체계를 통일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국방예산 압박 속에서 총소유비용(TCO)을 최소화하는 방안이 정책 결정의 변수가 될 전망이다.
현재 글로벌 방공 시장은 미국 패트리엇, 이스라엘 화살(Arrow)·아이언돔(Iron Dome), 한국 L-SAM·KM-SAM 등 주요 체계가 춘추전국 시대를 이루고 있다. 이에 따라 유럽 방산업체의 가격·성능·정치적 접근 방식이 지속적으로 시험대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결론적으로, 덴마크의 SAMP/T 선택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라는 지정학적 현실과 더불어 ‘유럽 중심 방위 산업 생태계’ 구축을 가속화하는 신호탄으로 평가된다. 탈레스와 파트너사들은 이번 수주를 발판으로 새로운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