뭄바이발‧외환시장 심층 – 최근 루피(₹)가 미국의 대(對)인도 관세 부과 가능성이라는 외생 변수에 직면하면서 약세 압력을 받고 있다. 이에 인도 준비은행(Reserve Bank of India, RBI)이 역외 NDF(Non-Deliverable Forward) 시장에서 달러화를 매도해 자국 통화를 방어하는 모습이 두드러지고 있다.
2025년 9월 15일, 로이터통신은 복수의 뱅커 발언을 인용해 “RBI가 최근 싱가포르 및 런던 시간대에 집중적으로 NDF 포지션을 정리하며 루피 매수(달러 매도)에 나섰다”고 보도했다. 이는 지난달 동일 통신이 ‘한동안 소강 상태였던 중앙은행의 NDF 개입이 재개됐다’고 전한 지 불과 한 달 만에 개입 강도가 한층 강화된 것이라는 설명이다.
로이터가 입수한 현지 시중은행 고위 자금 담당자(트레저러) 발언에 따르면, RBI는 루피/달러 환율이 1달러당 88.40루피 선을 돌파해 사상 최고치(88.4550루피)를 기록하자마자 즉각 시장에 진입해 달러를 내다 팔았다. 그는 “이번 개입은 전임 총재 시절처럼 특정 레벨에 ‘고정(anchor)’된 방어가 아니라, 질서 있는 변동성 관리에 초점을 맞춘 신중한 전략”이라고 평가했다.
“RBI는 더 이상 단일 환율 구간에 집착하지 않는다. 필요한 구간에서 유동성을 공급하며, 보유 외환보유액을 과도하게 소진하지 않는 선에서 시장 참여자들의 과도한 포지셔닝을 견제하려는 것 같다.” – 한 민간은행 선임 트레저러
한편, 뭄바이 소재 대형 국영은행의 외환 트레이더는 “싱가포르 데스크에서 국제결제은행(BIS) 계정이 달러/루피 오퍼(offer) 사이드에 나타난 것을 포착했다”며, 이는 통상 중앙은행 개입의 간접 신호로 해석된다고 전했다. BIS가 역외 NDF 거래의 중개 창구 역할을 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시장 참여자들은 루피 약세의 배경으로 수급 불균형을 지목한다. 수출 기업들이 관망세를 보이며 달러화 매도(환전)를 미루는 반면, 수입 기업들은 미국발 관세 인상 가능성에 대비해 선제적 헷징(달러 매수)을 확대하고 있다. 이로 인해 역외 시장에서 달러 수요가 폭증했고, 국내 현물(spot) 시장 역시 전반적인 달러 비드 흐름이 강화됐다.
• NDF란 무엇인가?
NDF(Non-Deliverable Forward)는 실물 인도가 없는 통화선도 계약이다. 만기 시점에 계약 환율과 만기 현물환율 간 차이를 달러 등 결제통화로 정산한다. 자본거래가 부분적으로 제한된 신흥국 통화를 대상으로 한 파생거래이기에, 역외 금융센터(싱가포르·홍콩·런던)에서 활발하게 거래된다. RBI가 NDF 시장에 개입하면, 실제 현물 시장에 참여하지 않고도 루피 환율 기대값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이번 조치 이후, 1개월물 루피 변동성(임플라이드 볼)은 6개월 만의 최저치로 떨어졌다. 이는 시장이 중앙은행의 의지를 확인하며 단기 방향성 베팅을 자제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다만 루피/달러 현물환은 여전히 88루피 중반에서 머물며 과거 평균 대비 원화 약세 흐름을 유지 중이다.
전망과 과제
전문가들은 RBI가 외환보유액 5,500억 달러 이상이라는 비교적 두터운 완충 장치를 갖추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하지만 글로벌 위험 요인, 특히 미국의 통상 정책 변화와 미 달러 강세 기조가 지속될 경우, 단기적 개입만으로 루피 안정을 장담하기는 어렵다는 경계론도 만만치 않다. 또한 인도 내 수입업체들의 원자재 선물 환율 고정 수요가 이어진다면, 중앙은행이 ‘밀어내기식 스무딩(smoothing)’ 이상의 적극적 정책 패키지를 고민할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된다.
결론적으로, RBI의 NDF 시장 개입은 당분간 루피 변동성을 억제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무역수지 추이, 미국 관세 정책, 달러 지수 흐름이라는 삼중 변수를 고려할 때, 루피 환율의 중장기 방향성은 여전히 유동적이다. 시장 참여자들은 향후 RBI 통화정책위원회(MPC)의 스탠스, 그리고 재정·통상정책당국의 대응을 면밀히 주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