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중앙은행(BoE)이 국채 보유 자산을 연간 1,000억 파운드 규모로 축소해 오던 양적 긴축(QT·Quantitative Tightening) 속도를 늦추고, 동시에 기준금리를 현 수준에서 유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2025년 9월 15일, 로이터 통신 보도에 따르면 최근 국채금리 변동성이 커지면서 자산 축소 속도 조절 필요성이 부각됐으며, BoE 통화정책위원회(MPC)는 이번 주 회의에서 이에 대한 결정을 내릴 예정이다.
BoE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경기 부양을 위해 매입한 영국 국채(gilt)를 2022년부터 적극 매도해 왔다. 총 보유 규모는 8750억 파운드에서 현재 5580억 파운드로 줄었고, 이 가운데 최근 2년간 1,000억 파운드씩 매도했다. 다른 주요 중앙은행들이 만기 도래분만 자연감소시키는 데 비해 BoE는 직접 매도 방식을 고수해 ‘가장 공격적인 QT’라는 평가를 받아 왔다.
시장 예상: 연간 675억 파운드 수준으로 속도 조절
로이터가 경제학자 6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에서 MPC가 향후 1년간 매도 규모를 중앙값 675억 파운드로 낮출 것이라는 예상이 나왔다. 이는 8월 BoE 자체 설문에서 제시된 720억 파운드보다 더 큰 폭의 축소다. T.로웨프라이스 자산운용의 토마시 비엘라덱 유럽 담당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현재 수준을 유지한다면 국채 시장이 급격히 매도세를 보일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9월 3일 30년 만기 영국 국채 금리는 1998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고, 10년물 신규 발행물도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가장 높은 금리로 발행돼 재무장관 레이철 리브스에게 예산 편성 부담을 주고 있다. 그럼에도 BoE는 “지금까지의 QT가 영국 정부 차입비용을 0.15~0.25%포인트 높인 데 그쳤다”고 판단한다.
전문가 제안: 장기물 매도 중단론
비엘라덱 이코노미스트는 BoE가 매도폭을 800억 파운드로 소폭 줄이되 가격 하락 폭이 컸던 장기물 국채 매도를 중단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BoE는 시스템 내 초과 유동성을 흡수해 ‘적정 준비금(Neutral level)’으로 복귀한다는 목표를 제시하지만, 그 수준이 얼마인지 명확히 밝힌 바 없다. BoE가 시중은행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3,850억~5,400억 파운드로 제시됐는데, 현재 준비금은 약 6,500억 파운드다.
지난주 BoE 단기 유동성 대출창구 이용 규모가 수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면서 “중립 준비금 수준이 예상보다 가까워진 것 아니냐”는 분석이 제기된다.
BoE가 매도 없이 만기 도래만으로 QT를 수행하려면 연간 매도 목표를 490억 파운드로 낮춰야 한다. 그러나 산탄데르 CIB의 애덤 덴트 금리 전략가는 “예산안 발표를 앞두고 속도 조절 폭을 과도하게 키우면 정치적 압력에 휘둘린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며 BoE 독립성 유지를 위해 일정 수준의 매도를 계속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기준금리 동결 – 인플레이션은 4% 고점 재진입 전망
7월 영국 소비자물가지수(CPI)는 3.8%로 G7 국가 중 가장 높았다. BoE는 지난달 기준금리를 다섯 차례 연속 인하했으나 찬성 5, 반대 4라는 박빙 표결이었다. 시장은 9월 회의에서 추가 인하 가능성을 배제한다. BoE는 이달 인플레이션이 4%까지 다시 상승할 것으로 예상한다.
이에 비해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는 이번 주 수요일 금리를 인하하고 연내 한 차례 더 인하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며, 유럽중앙은행(ECB)은 사이클 종료 국면에 진입한 것으로 보인다.
앤드루 베일리 BoE 총재는 9월 3일 하원 재무위원회에 출석해 “추가 금리 인하 시기와 속도에 상당한 불확실성이 존재한다”는 메시지를 재차 강조했다. 베일리 총재가 시장금리 기대에 대해 언급하는 일은 드물지만, 당시 LSEG 자료는 올해 안 추가 인하 확률을 3분의 1, 2026년 4월까지 0.25%포인트 인하를 전면 반영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로이터 설문 경제학자 다수는 BoE가 11월 또는 12월 추가 인하에 나설 것으로 본다. 롬바르 오디에 전략가 빌 파파다키스는 “저성장·고세율 전망이 수요를 약화시켜 인플레이션을 더 끌어내릴 것”이라며 “정책금리가 상당 폭 더 하락할 수 있다”고 예상했다. 그는 “시장에 반영된 ‘1~2회 추가 인하’ 시나리오는 영국 수요 전망을 과대평가한 결과”라고 덧붙였다.
용어 설명
1양적 긴축(QT) – 중앙은행이 보유 중인 채권을 시장에 매도하거나 만기 상환을 통해 통화 공급을 축소하는 정책이다. 2008년 이후 시행된 양적 완화(QE)의 ‘역(逆)정책’으로, 시중 유동성을 흡수해 인플레이션 압력을 완화하려는 목적을 갖는다.
2길트(gilt) – 영국 정부가 발행하는 파운드화 표시 국채를 가리키는 용어다. 17세기 영국 국채가 ‘금빛(gilt)’ 가장자리로 장식된 것에서 유래했다.
3베이시스포인트(bp) – 금리 변화를 설명할 때 사용되는 단위로, 1bp는 0.01%포인트에 해당한다.
기자 코멘트
최근 영국 국채시장의 변동성은 미국·유럽 대비 구조적으로 높은 인플레이션 위험과 재정 불확실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BoE가 장기물 매도를 중단하거나 속도를 조절하더라도 시장이 요구하는 위험 프리미엄이 쉽게 낮아지기 어렵다. 결국 물가 안정 진척 여부와 함께, 11월 26일 예산안에서 제시될 재정건전성 로드맵이 국채금리 방향을 좌우할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