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통상수장, 후속 관세 협상 위해 미국행

【서울】 한국 정부의 최고 통상 교섭 책임자여한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이 관세 후속 협상을 위해 16일(현지시간) 미국으로 출국했다. 이번 방문은 지난 7월 양국이 큰 틀에서 합의한 무역 협정의 세부 사항을 확정하기 위한 절차로, 협상 과정에서 드러난 여러 난제를 해소하는 것이 핵심 과제로 꼽힌다.

2025년 9월 15일, 로이터 통신 보도에 따르면, 가장 큰 쟁점3,500억 달러(약 468조 원) 규모의 투자 펀드를 둘러싼 세부 조건이다. 서울의 당국자들은 일본·미국 간 유사한 협정에 포함된 외환 조항이 한국 외환시장에 미칠 부정적 파장을 우려하며 수정 필요성을 강조해 왔다. 이에 따라 이번 방미 협상에서 외환 안정 장치와 관세 인하·유예 범위가 핵심 의제로 다시 검토될 전망이다.

여한구 본부장은 출국 직전 공항에서 기자들과 만나 “우리 국익에 부합하는 합리적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언급했다. 그는 이달 초 김정관 산업부 장관이 미국 워싱턴에서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과 논의한 뒤에도 별다른 진전이 없었던 상황을 의식한 듯, ‘교착 상태’ 우려 불식에 주력하는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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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쟁점: 3,500억 달러 투자 패키지와 외환 리스크

서울 당국은 일본과 미국이 체결한 유사 협정이 포함한 환율 안정 의무 조항이 한국 경제에 그대로 적용될 경우, 원화 변동성이 증폭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특히 대규모 자금 유입·유출이 단기간에 일어나면 원/달러 환율이 급격히 출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재정·금융당국 고위 관계자는 “3,500억 달러 규모의 투자 패키지를 수용하면서도 내부 자본시장 안전판을 구축하는 방안을 미국과 다각도로 조율 중”이라고 설명했다.

기획재정부는 14일 보도자료를 통해 “미국과 외환시장 영향 최소화를 위한 복수의 대안을 논의 중”이라면서도, 한·미 통화스와프 라인 신설 여부는 확인하지 않았다. 통화스와프 협정은 두 나라 중앙은행이 사전에 약정된 환율에 따라 자국 통화를 교환하는 계약으로, 외환위기 시 유동성 방파제 역할을 한다.


협상 교착 우려와 국내 정치적 부담

김정관 장관이 최근 워싱턴 방문에도 가시적 돌파구를 마련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국내 언론은 양국 간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졌다는 관측을 내놨다. 대통령 이재명 역시 9일 기자회견에서 “국익을 해치는 협정이라면 서명하지 않겠다”고 선을 그으며 협상단에 힘을 실어줬다.

전문가들은 대외 협상력 확보를 위해 대통령이 ‘최후통첩’ 성격의 발언을 한 것으로 해석한다. 한 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외환시장 안정은 단기적으로 물가와 금리에 영향을 미치므로, 정부가 외환 스와프를 포함한 다층적 안전장치를 선호할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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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이민 이슈가 무역 협상을 압박

이번 관세 협상은 양국 관계가 민감한 국면을 맞은 가운데 이뤄지고 있다. 조지아주에 위치한 현대차 배터리 공장에서 최근 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이 실시한 이민 단속으로 수백 명의 한국인 노동자가 수갑과 족쇄를 찬 채 체포되는 장면이 공개되며 한국 내 여론이 크게 악화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자신의 소셜미디어 플랫폼 ‘트루스 소셜’을 통해 “외국 기업들이 미국에 투자하면서도 전문기술 인력을 함께 파견해 미국인에게 복잡한 제조 기술을 전수하도록 장려하겠다”고 밝혔다. 동시에 “해외 기업 투자를 위축시키는 정책은 원치 않는다”고도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이 ‘외국인 노동자 대거 고용 → 기술유출’ 우려를 제기해 온 정치권 기류와, ‘투자 촉진’이라는 경제 기조 사이의 미묘한 균형을 보여준다고 평가한다. 이는 관세 협상과 이민·노동 이슈가 상호 연결돼 있음을 시사한다.


주요 용어·개념 해설

· 통상교섭본부장은 산업통상자원부 산하에서 무역·투자 협상을 총괄하는 차관급 직위다. Trade Envoy 혹은 Chief Negotiator로 번역된다.

· 통화스와프 라인은 두 국가 중앙은행이 일정 환율과 한도 내에서 상호 통화를 교환하기로 약정하는 계약이다. 외환보유액을 일시적으로 보강하는 효과가 있어, 금융 불안기에 통화가치 급락을 방어하는 ‘유동성 백스톱’으로 기능한다.

· 3,500억 달러 투자 패키지는 양국 정부와 민간이 조성하기로 한 대규모 펀드로, 반도체·전기차·배터리 등 첨단 제조업 공동 프로젝트에 투입될 예정이다.


전망과 변수

로이터는 “여한구 본부장의 방미 일정은 대략 일주일로 예상되며, 이 기간 동안 미 상무부·재무부 고위 인사들과 집중 협상 라운드가 진행될 것”이라고 전했다. 협상이 타결되면 관세 인하·철폐 일정이 확정되고, 투자 패키지에 대한 세제 인센티브·외환 리스크 대응 조항 등이 구체화될 전망이다.

그러나 외환 조항 수정 여부, 미국 의회의 비준 절차, 노동·이민 이슈에 따른 정치적 파장 등은 여전히 불확실성으로 남아 있다. 특히 ICE 단속 여파로 한국 내 반미 여론이 고조된 상황에서, 정부가 어떤 ‘윈윈 승부수’를 들고 올지 주목된다.

시장 참여자들은 협상 결과에 따라 원/달러 환율 및 관련 기업 주가에 직접적인 영향이 불가피하다고 진단한다. 국내 증권가는 “투자 패키지가 본궤도에 오르면 반도체·배터리 밸류체인 전반에 중장기 호재가 될 것”이라면서도, “단기적으로는 외환시장 불확실성에 변동성 장세가 이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