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트만두】 히말라야 고원 국가 네팔에서 가장 치명적인 정치 위기로 평가받는 사태가 벌어진 뒤, 시위대를 조직했던 청년 운동가들이 이제는 임시정부 구성의 핵심 중재자로 부상하고 있다.
2025년 9월 14일, 로이터통신(Reuters)의 보도에 따르면, 이들은 디스코드(Discord)·인스타그램 등 소셜미디어 플랫폼을 활용해 전국적 규모의 시위를 촉발했고, 그 결과 K.P. 샤르마 올리 총리의 사임을 이끌어냈다.
공식 집계에 따르면 이번 시위로 사망자 72명, 부상자 1,300여 명이 발생했다. 시위대는 정부의 부패 의혹과 SNS 차단 명령에 분노했다. 특히 영상 게이머들에게 인기 있는 디스코드 채널은 참가자 동원 및 실시간 상황 공유 창구로 기능했다.
DJ 출신 수단 구룽, ‘하미 네팔’ 창립
이번 운동의 실질적 기획자는 36세 전직 DJ 수단 구룽(Sudan Gurung)이다. 그는 2015년 대지진과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자원봉사 활동을 위해 비정부단체 ‘하미 네팔(우리는 네팔)’을 설립했고, 이번에도 단체 계정을 통해 시민 행동을 조직했다.
구룽은 첫 기자회견에서 “
“권력은 국민에게 있어야 하며, 모든 부패 정치인을 법정에 세우겠다”
”고 말했다. 그는 각료직을 고사했지만, 향후 정책 결정과 감시에는 적극 참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임시 총리로 수실라 카르키 전 대법원장 추대
시위대 대표들은 대통령·육군참모총장과 협의해 수실라 카르키 전 대법원장을 네팔 최초의 여성 총리(임시)로 지명했다. 카르키 전 대법원장은 엄격한 반부패 성향으로 알려져 있으며, 3월 5일 총선 전까지 내각을 이끈다.
하미 네팔 측은 SNS에 “능력 있는 청년 중심의 내각 구성을 위해 절차를 신중히 진행 중”이라고 밝혔으며, 구룽·카르키 간 회의에서 기존 정부 임명 관료 교체안도 논의되고 있다.
조직·전술: VPN과 ‘가짜뉴스’ 검증
네팔 정부가 일시적으로 SNS를 차단하자, 운동가들은 VPN(가상사설망)을 활용해 우회 접속을 유도했다. 동시에 디스코드 방을 통해 병원 연락처를 공유하고, 허위 정보로 판단되는 게시물을 골라내 ‘fake news’ 경고를 붙였다.
18세 대학생 카란 쿨룽 라이는 “디스코드 방에 초대받았는데, 400명 정도가 즉시 행진 지시에 응답했다”고 설명했다. 하미 네팔의 초기 글은 국영 TV 프로그램에서까지 인용될 정도로 파급력이 컸다.
‘Gen Z’ 시위 세대와 세대 간 연대
시위 참가자는 주로 20대 ‘Z세대’였지만, 30대 중반의 구룽이 멘토 역할을 했다. 단체 자원봉사자 로네시 프라단(26)은 “우리는 정치인이 되려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목소리를 대변할 뿐”이라고 말했다.
참고: ‘Gen Z’는 일반적으로 1997~2012년 출생자를 가리키는 용어다. 한국 독자들에게는 ‘MZ세대’ 중 Z세대를 의미한다.
주요 인물
- 수단 구룽: 36세, 전 DJ, 하미 네팔 창립자
- 오자스위 라즈 타파: 24세, 카페 운영자·시위대 대변인
- 레한 라즈 단갈: 20대, 법학과 졸업생·SNS 운영
- 수실라 카르키: 전 대법원장, 임시 총리 지명
향후 일정과 과제
임시 내각은 조만간 주요 부처 장관 인선을 확정해야 한다. 또 사법부 독립성 강화, 헌법 일부 개정 여부 등이 핵심 과제로 떠올랐다. 타파는 “헌법 자체를 폐기할 의도는 없다”면서도, “사법 독립을 보장하기 위해 일부 조정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를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의 정치 참여가 기성 정치 구조를 뒤흔든 사례로 평가한다. 동시에 사상 최악의 유혈 사태를 겪은 만큼, 과도기 정부가 사회 통합과 치유에 성공하느냐가 관건으로 꼽힌다.
VPN(Virtual Private Network)은 인터넷 접속 경로를 암호화해 정부 차단을 우회할 수 있게 해 주는 기술이다. 이번 사건에서 VPN 사용이 급증하면서, 네팔 정부의 통제 전략이 무력화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편, 올리 전 총리 측은 로이터의 연락에 응답하지 않았다. 정치 평론가들은 “내년 초 총선 결과가 새로운 권력 구도를 확정할 전망”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