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드리드 현지발] 미합중국과 중화인민공화국의 고위 관료들이 14일(현지시간) 스페인 수도 마드리드에서 통상 현안과 국가안보 이슈를 집중 논의하기 위한 회담에 돌입했다. 회담은 스페인 외교부가 위치한 17세기 바로크 양식의 팔라시오 데 산타 크루스에서 열렸다.
2025년 9월 14일, CNBC 뉴스 보도에 따르면, 이번 대화 채널은 △양국 간 고율 관세 갈등 완화 △중국 숏폼 플랫폼 틱톡(TikTok)의 미국 내 사업 매각(디베스트먼트) 시한 연장 여부 △러시아산 원유 거래에 대한 대(對)중‧인도 관세 압박 등 복합적 현안을 포함한다.
미국 측에서는 스콧 베슨트(Scott Bessent) 재무장관과 제이미슨 그리어(Jamieson Greer) 무역대표부(USTR) 대표가 참석했으며, 중국 측에는 허리펑(He Lifeng) 국무원 부총리와 리청강(Li Chenggang) 상무차관이 모습을 드러냈다.
1. 회담 배경과 협상 구도
미·중 대표단은 지난 4개월 동안 제네바, 런던, 스톡홀름 등 유럽 도시에서 세 차례 별도 회동을 가져 왔다. 이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부과한 고율 관세 체제 아래 파편화된 양국 통상 관계가 완전한 파국에 이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판’ 성격이다.
스톡홀름 회동(7월)에서는 양국이 ‘90일간 상호 관세 동결’에 합의하며 일명 희토류(rare-earth minerals)※ 공급 재개까지 포함한 휴전 조치를 이끌어냈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산 수입품 약 55%에 적용 중인 기존 관세율을 11월 10일까지 유지하겠다는 행정명령에 서명한 상태다.
※ 희토류: 하이테크·국방산업에 필수적인 17개 희귀 금속 원소군으로, 글로벌 공급망에서 중국 의존도가 80%를 상회한다.
2. 틱톡 매각 시한—또 한 번 연장될까
틱톡의 모기업 바이트댄스(ByteDance)는 9월 17일까지 미국 내 사업을 매각하지 않을 경우 서비스 중단 조치를 통보받은 상태다. 이번이 네 번째 최종 시한으로, 베슨트 장관 측 소식통은 “합의는 어려우나 시한 연장 가능성은 높다”라고 전했다.
틱톡 문제는 종전 세 차례 협상 때는 공식 의제에 포함되지 않았으나, 재무부가 이번 회담 공지문에 ‘첫 번째 정식 안건’으로 명시하면서 정치적 명분을 확보했다. 이는 의회가 요구한 ‘완전 매각’ 압박을 일시 완화할 수 있지만, 초당적 강경파 의원들의 불만을 야기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3. 러시아산 원유 관련 대중·인도 압박
베슨트 장관은 13일 G7(주요 7개국) 재무장관 회의에서 “러시아산 원유를 대량 수입하는 중국·인도에 의미 있는 관세를 부과해야 한다”라고 촉구했다. 이는 우크라이나 전쟁 자금줄인 러시아의 석유 수익을 차단하려는 조치다.
미국은 이미 인도산 제품에 추가 25% 관세를 부과했으나, 중국에 대해서는 동일한 조치를 유예해 왔다. 향후 미·중 회담 결과에 따라 ‘중국산에 대한 러시아 원유 연계 관세’가 현실화될 가능성이 관측된다.
“푸틴의 전쟁 자금을 원천에서 차단하려면 동맹국이 단일 대오로 대응해야 한다.” – 베슨트·그리어 공동성명
4. 스페인의 외교적 존재감 부각
호세 마누엘 알바레스(Spain FM)는 양국 대표단을 공항에서 직접 영접하며 “마드리드가 고위급 전략 대화의 새 무대”임을 강조했다. 스페인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평화 회담 유치 의사를 밝히는 등 중재 외교에 적극 나서고 있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와 스페인 정부 간에는 ‘방위비 5% GDP 할당’ 문제, 스페인의 가자 지구 공세 비판 등으로 갈등이 지속돼 왔다. ベ슨트 장관은 올해 4월 “중국과의 전략적 파트너십은 ‘자해’에 가깝다”라고 스페인을 비판하기도 했다.
5. 전문가 시각 및 전망
웬디 커틀러(Wendy Cutler) 전 USTR 협상관(현 아시아소사이어티 정책연구소장)은 “중대 성과는 10월 말 서울 APEC 정상회의에서의 ‘트럼프-시진핑 회담’에 맞춰 저장될 것”이라며, 아래 세 가지를 잠정 합의 목록으로 제시했다.
- 틱톡 국가안보 우려 해소 및 최종 매각·합작 모델 확정
- 중국의 미국산 대두(soybean) 수입 재개 확대
- 펜타닐(fentanyl)※ 관련 중국산 제품 관세 완화
※ 펜타닐: 미국 내 오피오이드(마약성진통제) 중독 사태의 주범으로 지목되는 합성 마약. 중국발 원료·중간재 수출이 규제 대상이다.
커틀러 소장은 “중국이 국영 보조금에 의존하는 수출 주도 성장 모델을 내수 기반으로 전환하라는 미국의 요구는 수년이 걸릴 사안”이라며 “수출 통제·관세 완화에서 얻을 실리가 없다면 중국이 서둘러 타협할 이유가 없다”고 설명했다.
6. 용어‧제도 해설
G7(주요 7개국): 미국·캐나다·영국·독일·프랑스·이탈리아·일본으로 구성된 선진국 협의체다. 글로벌 경제·안보 현안을 논의하며, 각각의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를 통해 공동 입장을 도출한다.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 2018년 이후 ‘섹션301’ 조치를 통해 중국산 수입품에 최고 55% 추가 관세를 부과한 것이 핵심이다. 이는 미국 지식재산권 침해·기술 이전 강요 등을 이유로 들었다.
7. 기자 주평(분석)
이번 마드리드 회담은 “관세 휴전의 유지”와 “틱톡 매각 시한 연장”이 교차하는, 전형적인 ‘시간 벌기 게임’으로 읽힌다. 양측 모두 국내 정치적 부담을 감안할 때 대규모 양보는 어렵다. 다만 러시아산 원유에 대한 대중 관세 논의는 미국이 협상 지렛대로 사용할 여지가 커, 향후 에너지·안보 의제가 통상 협상의 변수가 될 가능성이 있다.
스페인이 회담을 주최했다는 사실은 EU 내에서의 외교 지형 변화를 시사한다. 전통적 중재국인 스위스와 스웨덴이 아닌 남유럽 국가가 중·장기 전략 대화를 유치함으로써, 유럽 내 지정학적 균형추가 다원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결국 올 10월로 예고된 트럼프·시 주석 회담이 성사될 경우, “언제, 무엇을, 어디까지 양보하느냐”가 미·중 통상 구도의 다음 분기점을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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