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캘리포니아 쿠퍼티노에 본사를 둔 애플(Apple Inc.)에서 인공지능(AI)과 검색 부문을 총괄해 온 로비 워커(Robby Walker) 선임 이사가 회사를 떠난다. 업계에서는 애플이 AI 경쟁에서 뒤처지고 있다는 우려와 맞물려 이번 인사 변동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분위기다.
2025년 9월 12일, 로이터 통신(Reuters)의 보도에 따르면 애플 내부 사정에 정통한 복수의 관계자는 워커 이사가 다음 달(10월) 퇴사를 공식화했다고 전했다. 워커는 2013년 애플에 합류해 올 4월부터 ‘Answers, Information and Knowledge’ 팀을 이끌어 왔다.
워커의 사임은 애플이 ‘애플 인텔리전스(Apple Intelligence)’라는 자체 AI 기능군을 공개했음에도, 핵심 서비스인 시리(Siri) 고도화 일정이 내년으로 미뤄진 상황과 맞물려 시장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애플은 챗GPT(ChatGPT)와의 연동을 포함한 광범위한 AI 전략을 공개했으나, 출시 속도에서는 구글의 ‘제미니(Gemini)’나 마이크로소프트의 ‘코파일럿(Copilot)’에 비해 한 발 늦은 행보를 보여 왔다.
워커는 본래 시리 개발을 총괄했으나, 올해 초 조직 개편 이후 시리 관리 책임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 수석 부사장인 크레이그 페더리기(Craig Federighi)에게 이관됐다. 동시에 워커는 각종 검색·정보 응답 알고리즘을 담당하는 ‘AI 답변 팀’을 맡아 음성 비서의 정확도·반응 속도·사용자 맞춤성 향상을 추진해 왔다.
그러나 AI 조직 재편 과정에서 내부 갈등과 인력 유출이 두드러졌다. 메타 플랫폼스(Meta Platforms)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애플의 연구 인재를 잇달아 영입하고 있다. 2024년 7월 블룸버그 보도에 따르면, AI 모델 개발 총책임자였던 루오밍 팡(Ruoming Pang)을 비롯해 마크 리(Mark Lee)·톰 건터(Tom Gunter) 등 핵심 연구원이 메타의 ‘슈퍼인텔리전스 랩스(Superintelligence Labs)’로 이적했다.
“AI는 지난 10년에 걸쳐 가장 큰 성장 동력으로 꼽힌다. 기술 혁신과 인재 확보에서 뒤처질 경우, 기업 경쟁력 전체가 약화될 수 있다.”— 시장 조사기관 IDC의 2025년 보고서 중
블룸버그는 지난 3월, 애플이 비전 프로(Vision Pro) 개발을 총괄하는 마이크 록웰(Mike Rockwell) 부사장에게 시리 프로젝트를 맡기려 했다고 보도했다. 이는 팀 쿡(Tim Cook) 최고경영자(CEO)가 현 AI·머신러닝 담당 수석 부사장인 존 지아난드리아(John Giannandrea)의 실행 능력에 확신을 잃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었다.
AI 레이스에서의 애플 입지
애플은 2025년 9월 신제품 발표 행사에서 아이폰 17 시리즈를 공개하는 한편, ‘아이폰 에어(iPhone Air)’라는 새로운 경량 모델을 선보였다. 미국 내 관세 부담에도 불구하고 출고가는 동결했으나, 행사에서 AI 관련 신기능을 전면에 내세우지 못해 투자자와 이용자들의 궁금증을 증폭시켰다.
반면, 구글은 같은 기간 자사 플래그십 스마트폰에 제미니 AI 모델을 탑재하며 실시간 통·번역, 온디바이스 요약, 스크립트 생성 등 고급 기능을 시연했다. 지난 6월 마이크로소프트 역시 자체 서버뿐 아니라 퀄컴 스냅드래곤 X 엘리트 기반의 노트북에 ‘코파일럿+PC’ 모델을 공개했다.
용어 설명
시리(Siri)는 2011년 아이폰 4S와 함께 도입된 음성 비서 서비스로, 사용자의 음성 명령을 분석해 전화 걸기, 메시지 전송, 일정 확인 등을 돕는다. 챗GPT는 미국 스타트업 오픈AI(OpenAI)가 2022년 말 공개한 대형 언어 모델(LLM) 챗봇으로, 긴 문장 생성과 복잡한 질문 응답이 가능하다. 제미니(Gemini), 코파일럿(Copilot)은 각각 구글·마이크로소프트가 개발한 LLM 기반 AI 플랫폼이다.
이번 워커 이사의 퇴사로 인해 애플이 차세대 시리를 내년까지 제때 출시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애플 측은 로이터의 논평 요청에 즉각적인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전문가 시각 및 전망
시장 분석가들은 애플이 ‘프라이버시 우선’ 원칙을 고수하며 온디바이스(on-device) AI 전략에 집중하는 점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대형 언어 모델 학습에 필요한 방대한 데이터와 클라우드 인프라가 부족하다는 점을 한계로 지적한다. 또한 AI 핵심 인재의 지속적인 유출은 ‘혁신 속도’ 저하로 이어질 수 있어, 애플이 향후 일정 기간 인재 재확보 전략·외부 파트너십을 병행할 가능성이 높다고 입을 모은다.
결국 애플이 내년 예정된 WWDC(Worldwide Developers Conference)에서 시리의 대대적 개편과 iOS 20에 탑재될 디바이스-내 AI 기능을 어떻게 소개하느냐가 관건이 될 전망이다. AI 기술 격차를 좁히지 못할 경우, 하드웨어 판매 중심의 사업 모델에도 직격탄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번 인사 이탈은 애플뿐 아니라 글로벌 기술 생태계 전반에 시사점을 던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