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중앙은행, 기준금리 100bp 인하해 17%…인플레이션 우려로 ‘신중 모드’

모스크바발 러시아 중앙은행(ЦБ)은 12일(현지시간) 정례회의에서 기준금리를 100bp(1bp=0.01%포인트) 인하해 연 17%로 결정했다. 이는 시장 인터뷰에서 집계된 애널리스트들의 평균 예상치(200bp 인하)를 밑돌아, 당국이 근원 물가 압력을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2025년 9월 12일, 로이터 통신 보도에 따르면 중앙은행은 발표문에서 “최근 몇 달 동안 인플레이션 기대치가 크게 변하지 않았으며 전반적으로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며 “이는 물가 상승률의 지속적 둔화를 저해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 ‘bp(베이시스포인트)’는 금리 변동 폭을 나타내는 국제 표준 단위로, 1bp는 0.01%포인트에 해당한다. 따라서 100bp 인하는 1%포인트 인하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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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까지 루블화가 한 주 동안 5% 하락하면서 시장에서는 완화 폭이 축소될 수 있다는 전망이 고개를 들었고, 실제로 중앙은행은 “중기적으로는 물가 상승 위험(프로인플레이션 리스크)이 완화 위험(디스인플레이션 리스크)을 여전히 상회한다“고 평가했다. 은행은 특히 “균형 성장 경로에서 벗어난 경제의 과열 지속과 높은 인플레이션 기대, 그리고 대외 교역 조건 악화”를 위험 요인으로 꼽았다.

루블화는 기준금리 발표 직후 달러 대비 0.8% 상승해 1달러당 83.80루블을 기록, 주중 낙폭 일부를 만회했다.

브로커리지 회사 BKS의 일리야 페도로프는 “대출 급증 및 통화공급 확대에 따른 루블화 약세가 완화 폭을 제한했다”고 분석했다.

올해 초 루블화는 40% 넘게 상승해 수입 물가를 낮추며 중앙은행의 물가 안정에 기여했다. 다만 이번 성명에서 중앙은행은 환율을 간략히 언급하는 데 그치는 등 통화가치를 물가 위험의 하위 요인으로 평가하는 신중한 입장을 취했다.


경기 정체 우려 고조

러시아 경제는 급격한 둔화 국면에 진입했다. 올해 성장률은 2024년 4.3%에서 1.2%로 낮아질 것으로 전망되며, 일부 경제학자재계 리더들은 경기 침체 가능성까지 제기한다. 8월 소비자물가(CPI)는 전월 대비 –0.4%를 기록했는데, 이는 매년 추수 철에 과일·채소 가격이 일시적으로 하락하는 계절적 요인을 반영한다. 전년 동월 대비로는 물가 상승률이 7월 8.79%에서 8월 8.14%로 둔화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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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중앙은행은 우크라이나 분쟁에 따른 군사 지출 확대로 치솟은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해 기준금리를 21%까지 끌어올렸다. 당시 20여 년 만의 최고치였던 금리 인상으로 대출 금리가 25% 이상으로 치솟으면서, 건설·석탄·금속 등 취약 업종은 투자 중단과 매출 악화를 겪었다.

러시아 최대 은행 스베르방크의 게르만 그레프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경제가 기술적 침체(technical stagnation) 상태에 빠져 있다”고 공개 발언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분기 GDP는 전년 동기 대비 1.1% 증가했으나, 중앙은행이 지난주 공개한 그래프는 1·2분기 연속으로 전기 대비 마이너스 성장을 나타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이에 대해 “대출 확대가 지속되고 있어 경기 침체는 아니다”라고 반박하며, 중앙은행의 긴축 기조를 지지했다.


재정 적자와 통화정책 전망

중앙은행은 그동안 건전 재정 정책물가 안정의 핵심 변수로 지목해 왔다. 그러나 에너지 수입 감소로 러시아 정부가 올해 국내총생산(GDP) 대비 1.7%로 잡아 놓은 계획 적자를 초과할 가능성이 커졌다. 은행은 “연초부터 누적된 재정 적자를 감안할 때 재정 정상화가 아직 실현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또한 이달 중 국회(두마)에 제출될 새 예산안의 내용에 따라 통화정책 경로를 추가로 조정할 수 있다고 시사했다. 시장에서는 재정이 완화적으로 설계될 경우, 중앙은행이 긴축적 스탠스를 장기간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전문가 시각 및 용어 설명

기준금리(key rate)는 중앙은행이 시중은행에 적용하는 대표 정책금리로, 모든 대출·예금 금리의 기준이 된다. 금리를 내리면 경제 활동은 활성화되지만, 동시에 인플레이션 압력이 커질 수 있다. 반대로 금리를 올리면 물가는 안정되지만 경기 둔화 위험이 높아진다.

인플레이션 기대치는 소비자·기업이 향후 물가가 얼마나 오를지에 대한 심리를 의미한다. 기대치가 높으면 실제 물가 상승이 가속화되는 악순환이 발생할 수 있어 중앙은행은 이를 면밀히 관리한다.

이번 결정을 통해 러시아 통화당국은 물가와 성장 간 균형이라는 난제에 직면했다. 향후 환율 동향, 국제 에너지 가격, 재정 정책 방향이 추가 완화 여부를 가를 관건으로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