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일, 환율 정책 재확인…과도한 변동성 대응 위한 개입 여지 남겨

도쿄발 — 미국과 일본이 외환시장에서의 ‘시장 결정적 환율(market-determined exchange rates)’ 원칙을 재확인하고, 환율 개입은 과도한 변동성과 무질서한 움직임이 발생할 때에만 한정한다는 공동성명을 12일 발표했다.

2025년 9월 12일, 로이터통신 보도에 따르면, 이번 합의문은 트럼프 행정부가 그동안 도쿄에 대해 외환·무역 분야에서 추가 요구를 제기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 속에서 나왔다. 그러나 성명에는 새로운 요구 사항이 포함되지 않아 일본 정부가 안도하는 분위기다.

양국 재무당국은 성명에서 「환율은 시장에서 결정돼야 하며, 과도한 변동성이나 무질서한 움직임은 경제·금융 안정성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외환시장의 개입은 이러한 과도한 변동성·무질서한 움직임을 억제하기 위한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시행돼야 한다」고 못 박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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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양국은 경쟁적 무역 우위를 확보하기 위한 목적의 환율 개입을 회피했다는 점을 재확인했다. 이는 일본이 2022년2024년 대규모 엔화 매수(달러 매도) 개입을 단행했음에도 불구하고 ‘부당한 통화조작’으로 간주되지 않았음을 시사한다.


환율 개입이란 무엇인가*

환율 개입(외환시장 개입)은 정부나 중앙은행이 보유 외화를 매도·매수해 자국 통화 가치를 인위적으로 조정하는 정책 수단이다. 보통 지나친 급등·급락으로 시장 변동성이 확대될 때 활용되며, 무역 상대국이 이를 ‘수출 경쟁력 확보용’으로 해석할 경우 통상 마찰이 불거질 수 있다.


이번 공동성명은 사실상 주요 7개국(G7)이 이미 합의한 외환원칙을 재확인하는 수준이다. 도쿄 금융시장에서는 미국이 무역협상에서 일본에 엔화 강세를 유도하도록 압박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됐으나, 결과적으로 그런 조항은 포함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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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토 가쓰노부 일본 재무상은 「본인과 스콧 베센트 미 재무장관이 무역협상의 일환으로 진행해 온 외환 논의 내용을 문서로 명확히 하기 위해 공동성명을 내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두 사람은 이번 달에 관세 합의에 관한 별도 공동성명을 발표한 뒤, 이를 보완하는 형태로 외환 성명을 내놓았다. 관세 협상은 아카자와 료세이 경제산업상이 주도했지만, 환율 문제는 가토 장관과 베센트 장관 간에만 논의하기로 양국이 합의했었다.

관세·투자 패키지 세부 내용
합의에 따라 미국은 일본산 대부분의 수입품 관세를 15%로 인하한다. 대신 일본은 미국 투자 5,500억 달러 규모 패키지를 제공하며, 이 안에는 정부 지원 대출·보증이 포함돼 있다.

공동성명 발표 직후 외환시장은 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SBI FX트레이드의 사이토 유지 고문은 「새로운 미국 측 요구가 없다는 점이 일본 입장에선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무역협상 이전 시장에서는 일본이 미국 제조업체 경쟁력 강화를 위해 엔화 절상을 유도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팽배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과거 일본이 의도적으로 엔화를 약세로 유지한다고 공개적으로 비판한 바 있다.

베센트 장관은 지난 8월, 「일본은행(BOJ)은 인플레이션 대응에 뒤처져 있어 곧 금리를 인상할 가능성이 높다」고 언급하며 일본 통화정책에 대한 견해를 드러냈다.

엔화 개입 가능성에 대해 NLI리서치의 우에노 쓰요시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성명은 일본 정부에 불리한 조항이 포함돼 있지 않다」면서도 「동시에 트럼프 대통령의 향후 행동을 구속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실효성에는 물음표가 남는다」고 평가했다.


전문가 시각

시장 전문가들은 이번 합의가 ‘원칙의 재확인’이라는 상징적 의미를 갖지만, 실제 시장 개입 시 미국이 어떻게 반응할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고 지적한다. 특히 일본이 다시 한 번 대규모 엔화 매수에 나설 경우, 미국 의회나 업계의 반발이 재연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또한 일본은행이 지난 20년간 이어 온 초저금리 기조에서 탈피해 기준금리를 인상하게 되면, 엔화 가치가 자연히 상승 압력을 받을 수 있다. 이에 따라 일본 정부가 외환시장 개입 필요성을 느끼지 않을 수도 있지만, 반대로 급격한 자본 유출입이 발생하면 변동성 확대 위험이 상존한다.

전문가들은 한·일·미 간 공급망 재편, 국제 원자재 가격 상승, 미 연준의 정책 기조 변화 등 복합 요인이 2025년 글로벌 통화질서에 작용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이에 따라 외환당국 간 공조를 문서화해 시장의 불확실성을 최소화하려는 시도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결국 이번 성명은 일본 정부가 ‘합법적’ 개입 카드를 손에 쥔 채 미국과의 관계를 관리할 수 있는 시간을 벌어준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향후 미국 정치 상황, 글로벌 인플레이션 추세, 엔·달러 환율 흐름에 따라 양국 간 논의가 재점화될 수 있다는 점에서 지속적인 관찰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