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행정부가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이사 리사 쿡(Lisa Cook)의 해임을 막은 연방법원 판결에 대해 즉각 항소 절차에 착수했다.
2025년 9월 10일, 로이터통신 보도에 따르면 미국 법무부(DOJ)는 전날 저녁 자이아 콥(Jia Cobb) 연방판사가 내린 해임 효력 정지
결정에 불복해 컬럼비아특별구 연방항소법원에 항소장을 접수했다. 이날 법무부가 제출한 한 줄짜리 통지서에는 구체적 법리 근거가 기재되지 않았지만, 9월 16~17일 예정된 FOMC(연방공개시장위원회) 회의 전까지 쿡 이사를 자리에서 물러나게 하겠다는 행정부의 의지가 반영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전례 없는 이사 해임 시도”란 지적과 함께, 이번 사안은 중앙은행의 정치적 독립성을 둘러싼 근본적 질문을 제기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8월 말 ‘모기지 사기 의혹’을 이유로 쿡 이사를 해임한다고 발표했으나, 콥 판사는 “의혹이 취임 전 행위와 관련돼 있어 해임 사유로 보기 어렵다”며 가처분을 내렸다. 판결문은 “연준 독립성에 대한 공공의 이익이 쿡 이사의 직무 지속을 요구한다”고 명시했다.
주요 쟁점 ① ‘for cause’ 해석
연준 설립법은 이사 해임 사유를 for cause
로 한정하지만, 구체적 정의나 절차는 없다. 역대 어느 대통령도 연준 이사를 해임한 전례가 없어 법적 공백 상태였다. 콥 판사는
“가장 합리적인 문언 해석은 재임 중의 직무상 위법·부적절 행위일 때만 해임이 가능하다는 것”
이라고 밝혔다.
주요 쟁점 ② 모기지 사기 의혹
트럼프 대통령과 자신이 임명한 연방주택금융청(FHFA) 윌리엄 풀트(William Pulte) 국장은 쿡 이사가 2022년 상원 인준 이전 3건의 부동산 담보대출 신청서에서 자산·거주 정보를 부정확하게 기재해 낮은 금리와 세제 혜택을 받았다고 주장한다. 이와 별도로 DOJ는 조지아·미시간주 대배심을 통해 형사 수사를 진행 중이다.
백악관·쿡 이사 측 공방
백악관 대변인 쿠시 데사이(Kush Desai)는 항소 전 성명을 내고 “대통령은 적법한 ‘for-cause 해임’ 권한을 행사했다”며 1심 결정을 비판했다. 반면 쿡 이사는 어떤 불법 행위도 없었고, 금리 인하에 반대한 자신의 통화정책 소신을 겨냥한 정치적 조치
라고 맞섰다.
연준 독립성에 미칠 파장
시장 전문가들은 이번 소송이 연준의 금리 결정 권한과 정치 권력의 경계를 가늠할 중대한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본다. 이미 연방대법원과 D.C. 항소법원은 백악관이 독립기관 수장을 해임하려다 제동이 걸린 사례(저작권청 디렉터 시라 펄머터 사건 등)를 심리 중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이후 급격한 금리 인하를 지속적으로 요구하며 제롬 파월(Jerome Powell) 의장을 공개적으로 질책해 왔다. 2025년 9월 16~17일 열리는 FOMC에서도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이 제기되지만, 쿡 이사는 2022년 부임 이후 모든 회의에서 다수 의견에 동조해 금리 인상·인하 양측 모두에 표를 던진 바 있다.
용어 해설
※ FOMC는 연준 내 12인으로 구성된 통화정책 결정기구다. for cause란 ‘정당한 사유’를 뜻하는 행정법 용어로, 직무상 위법·태만·비리 등이 해당한다. 가처분(injunction)은 본안 소송 판결 전까지 일정 행위를 금지·명령하는 임시 처분이다.
전문가 시각·전망
헌법학자들은 “중앙은행 독립성은 물가 안정의 핵심 전제”라며, 대법원이 만약 대통령의 해임 권한을 폭넓게 인정할 경우 통화정책이 향후 정권 교체 때마다 급변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한다. 반대로 행정부 측은 “책임성(Accountability) 없는 권력이야말로 민주주의에 위협”이라며 감독권 강화를 주장한다. 최종 판단은 연방대법원에서 내려질 가능성이 높으며, 판결 시점에 따라 2026년 대선 국면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줄 전망이다.
향후 일정
D.C. 항소법원은 긴급 심리를 통해 조속히 판단을 내릴 것으로 예상된다. 만약 항소심에서 트럼프 행정부가 승리하면, 연준은 FOMC 회의 직전에 쿡 이사를 해임할 수 있어 표결 구도에도 변화가 불가피하다. 반대로 가처분이 유지되면, 쿡 이사는 회의에 참석해 총재·이사 12명 중 한 표를 행사하게 된다.
결론
이번 항소는 단순한 인사 문제가 아니라 통화정책의 정치적 중립성, 대통령의 기구 장악력, 연방대법원의 기관 설계에 대한 시각을 총체적으로 가늠할 ‘리트머스 시험지’로 평가된다. 금융시장 참가자들은 판결 결과가 금리, 달러 가치, 주식·채권 변동성에 직결될 수 있다는 점에서 입법·사법·행정부 3권의 미묘한 힘겨루기를 예의주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