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부텍사스산중질유(WTI) 10월물은 9월 10일(현지시간) 전장 대비 1.66% 상승한 배럴당 64.01달러에 마감했다. 같은 달 RBOB 가솔린도 0.78% 오른 갤런당 2.02달러를 기록했다. 투자자들은 유럽 및 중동 지역에서 연이어 불거진 지정학적 긴장을 핵심 촉매로 꼽았다.
2025년 9월 10일, 나스닥닷컴 보도에 따르면 폴란드가 최근 러시아의 공습 과정에서 자국 영공을 침범한 무인기를 격추하면서 “공격 행위”라고 규정한 것이 시장의 불안 심리를 자극했다. 여기에 9일 이스라엘이 카타르 도하의 하마스 고위 지도부를 겨냥해 정밀 타격을 감행, 중동 갈등 확대 우려까지 겹치면서 원유 가격은 추가 상승 압력을 받았다.
복합적인 지정학 이슈는 공급 차질 전망과 맞물려 투자심리를 자극하고 있다. 러시아가 세계 원유 공급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0% 안팎이라는 점, 그리고 중동이 전 세계 산유량의 3분의 1가량을 담당한다는 사실이 가격 민감도를 높인다.1
OPEC+의 완만한 증산 결정
OPEC+는 10월부터 하루 13만7천 배럴만 증산하기로 합의했다. 이는 8~9월의 하루 54만7천 배럴 증산 계획에 비해 75%가량 축소된 규모다. 여전히 166만 배럴의 유휴 생산 능력이 2026년 말까지 단계적으로 복귀할 예정이어서, 시장은 공급 타이트닝이 장기화할 가능성을 주시하고 있다.
러시아 정유시설이 우크라이나 드론·미사일 공격을 받으면서 8월 들어 일평균 가동률이 509만 배럴로 3년 3개월 만의 최저치를 기록했다는 사실도 상승 요인이다.
한편,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EU가 동참할 경우 인도·중국에 추가 관세를 부과해 러시아 압박 수위를 높이겠다고 언급했다. 실제 제재 여부와 시기는 불투명하지만, 원유 수급 불균형 시나리오를 부각시키고 있다.
수급 변수: 사우디 가격 인하 vs. 재고 증가
상승세에도 불구하고 사우디아라비아 국영 아람코는 10월 아시아행 전 등급 공식판매가격(OSP)을 배럴당 1달러씩 인하한다고 발표했다. 이는 시장이 예상한 50센트 인하를 넘어서는 수준으로, 아시아 지역 수요 약화를 방증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글로벌 해상 저장 물량도 늘고 있다. 보텍사(Vortexa) 집계에 따르면 9월 5일 기준 7일 이상 정박 상태인 부유식 원유 재고는 전주 대비 6.8% 증가한 7천769만 배럴로 확인됐다.
OPEC 자체 생산도 지속 확대 중이다. 8월 회원국 생산량은 하루 2천855만 배럴로 40만 배럴 증가해 2년 만의 최고치를 찍었다.
EIA 주간 재고보고서의 경고 신호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이 9월 5일로 끝난 주간 기준 원유 재고가 예상(–140만 배럴 감소)과 달리 394만 배럴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가솔린 재고도 시장 컨센서스(50만 배럴 증가)를 웃도는 150만 배럴 증가, 난방유·항공유를 포함한 디스틸레이트 재고는 470만 배럴 늘어 8개월 만의 최대치를 보였다.
다만 오클라호마주 쿠싱 허브 재고는 36만5천 배럴 줄어들어 물리적 인도 여력을 낮췄다. EIA는 또 미국 원유 생산량이 주간 기준 1,349만5천 배럴로 역대 최고치(2024년 12월 첫째 주, 1,363만1천 배럴)에 근접했다고 밝혔다.
미국 내 가동 중인 원유 시추기는 베이커휴스 집계 기준 414기로 일주일 새 2기 늘었으나, 2022년 12월 기록한 627기에 비하면 여전히 34% 낮다.
전문가 해설: RBOB 가솔린이란?
RBOB(Reformulated Blendstock for Oxygenate Blending) 가솔린은 산화제(에탄올 등) 혼합 전 상태의 기초 연료를 말한다. 미국 환경보호청(EPA)이 대기 질 개선을 위해 도입한 ‘개량형 휘발유’ 규정에 따라 생산·거래되며, CME 선물 시장에서 표준 가솔린 벤치마크로 활용된다.
기자의 시각
현재 유가를 움직이는 변수는 지정학적 위험·공급 관리·재고 흐름 세 축으로 요약된다. 폴란드 영공 침범과 중동 충돌처럼 예측 불가능한 이벤트가 단기간 가격 탄력성을 키우고 있는 반면, 사우디의 가격 인하와 미국 재고 증가처럼 수요 둔화 신호도 동시에 출현하고 있다. 결국 OPEC+의 단계적 증산 속도와 러시아, 이란 등 주요 산유국에 대한 서방 제재 변수가 연말 수급 균형을 좌우할 가능성이 높다. 투자자라면 선물 곡선의 백워데이션(근월물 고가·원월물 저가) 구조가 완화되는지 여부를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본 기사는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작성됐으며, 필자는 언급된 종목에 대해 직접적·간접적 포지션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