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의 몰락, 금(金)의 귀환
안전자산 패러다임 전환이 미국 경제·금융시장에 던지는 장기 시사점
경제칼럼니스트‧데이터 분석가 〈장기 전망 특집〉 / 2025-09-05
최근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두 가지 현상이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 ① 장기 국채 수익률 급등과 ② 금값 사상 최고치 경신이다. 통상 채권 금리가 오르면 무이자 자산인 금의 매력이 떨어져 가격이 하락하는 것이 ‘정상’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2024~2025년에 관찰되는 데이터는 전통적 안전자산 간 상관관계를 완전히 뒤집고 있다. 필자는 이를 ‘안전자산 패러다임 전환(Safe-Asset Regime Shift)’이라고 명명한다.
본 칼럼은 ➊ 채권 매도·금 매수 동시 현상에 대한 데이터 분석, ➋ 연준·재정·정치 리스크와의 인과 관계, ➌ 향후 10년간 나타날 구조적 충격과 투자 전략, ➍ 정책·실물 경제 반작용을 종합적으로 해부한다.
1. 객관적 데이터: 무엇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나
1-1) 글로벌 채권 수익률 스냅샷
국가 | 만기(30Y) | 2022.01 | 2023.01 | 2025.09.04 | 변화폭(bp) |
---|---|---|---|---|---|
미국 | 30년 | 2.12% | 3.97% | 5.00% | +288 |
영국 | 30년 | 1.21% | 3.60% | 5.72% | +451 |
일본 | 30년 | 0.68% | 1.20% | 2.09% | +141 |
독일 | 30년 | 0.18% | 2.15% | 3.16% | +298 |
자료: Bloomberg, 각국 재무부·중앙은행. 2025-09-04 종가 기준.
1-2) 금 가격의 이례적 랠리
- 2022.01: 1,805달러/oz
- 2023.01: 1,931달러/oz
- 2025.09.04: 3,578.5달러/oz (연초 대비 +38%)
단순 누적 상승률은 2년 8개월 사이 +98%에 달한다. 이는 달러화 강세 기간에도 불구하고 달성된 수치다.
1-3) 채권↔금 상관계수 붕괴
2010~2019년 10년 이동 상관계수 평균(美 10Y 금리 vs. Gold) ≈ –0.37 → 2024~2025년 동기간 0.12까지 급반등. 즉, ‘채권 금리 ↑, 금 가격 ↓’ 공식이 통계적으로 깨지고 있다.
2. 구조적 원인: 세 가지 축으로 설명한다
2-1) 재정 남용과 ‘본드 비질란테’의 귀환
미 의회예산국(CBO)은 2024~2034년 연방 재정적자를 누적 17조 달러로 전망한다. 팬데믹 직후 단행된 대규모 부양책, IRA·CHIPS법 등 산업지원 예산, 그리고 향후 군사 예산 증가가 동시다발적으로 겹친 결과다.
Bond Vigilantes—채권 매도를 통해 정부에 경고하는 투자자—는 1990년대 이후 잊힌 용어였으나, 2024년부터 장기금리를 급등시키며 화려하게 복귀했다. 이는 시장 스스로 ‘재정 규율 회복’을 요구하는 셈이다.
2-2) 통화정책 독립성 훼손 우려
트럼프 전 대통령은 2025년 초 연준 이사 교체·의장 교체 가능성을 시사했다. 월가가 연준의 물가 파이터> > 정치 종속 기구로 진화하는 시나리오에 베팅하며 기간 프리미엄을 재가격하는 모습이다. 10년 美 채권의 ACM Term Premium은 2023년 4Q ‑0.25% → 2025년 9월 +0.96%로 전환됐다.
2-3) 달러화 기축 신뢰 약화와 금의 ‘비(非)부채 특성’
법정화폐(Fiat)가 정부 부채로 뒷받침되는 반면, 금은 채무를 동반하지 않는다. BIS 분석에 따르면 ‘Non-Debt Safe Asset’에 대한 수요는 글로벌 부채비율이 GDP 대비 260%→320%로 치솟은 2010~2024년 중 꾸준히 증가했다. 금은 준비자산에도 편입 가능해 중앙은행 순매수가 가격 상승을 구조화시킨다.
3. 장기 전망: 5대 시나리오와 경제적 파급
시나리오 | 핵심 전제 | 10년물 美 금리 | 금 가격 | 주식 밸류에이션 | 가능성(筆者) |
---|---|---|---|---|---|
① 재정 긴축·인플레 진정 | 의회 지출 캡, 연준 QT 완화 | 3.5% 내외 | 3,000달러 박스권 | PER 18배 회복 | 15% |
② 확장재정 지속·연준 압력 | 트럼프 2기, IEEPA·관세 확대 | 5.5~6.0% | 4,000달러 돌파 | PER 14배 이하 | 35% |
③ 스태그플레이션 | 에너지·임금발 인플레 + 성장둔화 | 4.5% 고착 | 4,500달러 | 이익·멀티플 동반 하락 | 18% |
④ 디지털 금(비트코인) 일부 대체 | ETF 채널 확산, 제도권 편입 본격화 | 4.0~4.5% | 3,200달러 | PER 16배 | 22% |
⑤ 글로벌 신뢰 붕괴·부채 위기 | 유럽 재정위기 2.0, 美 부채한도 충돌 | 7%+ (기준 없는 급등) | 5,000달러+ | PER 10배 미만, 경기침체 | 10% |
※ 가능성은 주관적 추정.
4. 투자 전략: ‘포트폴리오 DNA’를 다시 설계하라
4-1) 60/40 모델의 재검토
전통적 주식60/채권40 포트폴리오는 1982~2021년 연평균 9.4% 수익률, 변동성 9.7%를 기록했다. 그러나 2022~2023년 2년 연속 마이너스를 경험했다. 채권이 ‘완충재’ 역할을 못하면서 사실상 주식 베타+채권 베타 동일 방향이 된 것이다.
4-2) 권장 분산 템플릿 (예시)
- 글로벌 주식 40% (품질·분산)
- 단기 T-Bill 15% (유동성)
- 인플레 연동채(TIPS) 10%
- 금·은 등 실물자산 10%
- 사모 크레디트·인프라 15%
- 비트코인 ETF 2% ±α
- 전술적 헤지(통화 옵션·롱달러) 8%
실물·대안자산 비중 합계 37%로 기존 10~15% 대비 두 배 이상 높다. 핵심은 ‘부채 기반 VS 비부채 기반’ 자산을 1:1에 가깝게 갖추는 것이다.
4-3) 금 ETF·금광주 vs. 실물 금괴
ETF는 유동성이 뛰어나나 법적 구조(신탁)·관리수수료·런던금고 의존도 리스크가 있다. 실물 보유는 보관 비용·거래 스프레드가 높지만 카운터파티 리스크 제로다. 금광주(Gold Miners)는 금 가격 레버리지 2~3배를 제공하나, 비용 인플레·환경 규제 등 운영 리스크를 안는다. 투자자는 목적(헤지인지, 레버리지인지)·보유 기간·세무·통화 관점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5. 정책·실물 경제에 대한 장기 영향
5-1) 국채 발행 비용 증가 → 재정 여력 제한
CBO는 금리가 100bp 상향 고정될 경우 2034년까지 연방 이자지출 2.3조 달러 추가 증가를 예상한다. 사회보장·의료·방위비를 끼워넣을 여력이 좁아지면서 복지개혁 or 증세 논쟁이 재점화될 것이다.
5-2) 연준의 ‘핀셋 QT’ 가능성
장기금리 급등이 심화되면 연준이 MBS 축소를 줄이고 단기물 위주로 재투자하는 Operation Twist 2.0을 고려할 수 있다. 그러나 지나친 개입은 독립성 논란에 기름을 붓는다. ‘정책 딜레마’가 구조화될 수 있다.
5-3) 기업 자본비용 구조 변화
BBB 신용등급 회사채 스프레드는 2025년 9월 190bp로, 2022년 저점(115bp) 대비 급등했다. CAPEX IRR 허들이 높아지면서 설비투자 감속·고용시장 냉각이 2026년을 기점으로 본격화될 가능성이 크다. 이는 기술주 PER과 경기민감주 EPS에 이중 부담을 준다.
6. 결론: ‘채권의 시대’는 끝났는가?
필자는 장기국채 금리가 동시에 인플레·재정·정치 리스크 프리미엄을 반영하는 구조적 상승 국면에 진입했다고 판단한다. ‘끝났다’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1980~2020년에 걸친 40년 대세 하락(금리)의 재현 가능성은 낮아졌다. 반면, 금은 중앙은행·민간·디지털 에셋과의 연결 고리를 통해 준(準)기축 자산 역할을 넓히고 있다.
이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채권(부채)이 아닌 비부채 기반 안전자산’이 향후 10년간 프리미엄을 받는 새로운 정상(new normal)이 도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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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최종 제언〉
- 장기국채를 ‘제로 리스크’로 간주하는 VaR·ALM 모델을 즉시 재점검하라.
- 포트폴리오에 금·TIPS·단기 현금을 삼각축으로 편입해 듀레이션·인플레·정책 리스크를 분산하라.
- 연준·재무부·의회 고위 인사 발언을 매크로 데이터 만큼 중시하라. 정치가 금리를 움직이는 시대다.
- 골드만×티로프라이스 등 ‘대체자산 대중화’ 흐름을 활용해 사모 크레디트·인프라 노출을 늘려라.
- 마지막으로, ‘단일 시나리오 베팅’은 위기 때 포트폴리오를 무력화한다는 점을 기억하라.
금융시장은 언제나 미래를 선(先)반영한다. 그러나 이번 패러다임 전환은 반영 속도보다 강도가 크다. ‘과속 방지턱’이 아닌 ‘차선 변경’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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