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경제 기적’ 언제까지 이어질까

스페인 경제가 2023년 이후 유로존 주요국을 앞질러 ‘경제 기적’이라는 표현까지 등장했다. 독일·오스트리아 등 핵심국이 침체를 겪는 가운데, 스페인은 고성장·저위험 국가로 부상하며 투자자·정책 당국자의 관심을 동시에 끌고 있다.

2025년 8월 31일, 인베스팅닷컴 보도에 따르면 스페인은 2025년 상반기 국내총생산(GDP)이 전년 대비 2.8% 성장했다. 같은 기간 유로존 평균은 0.9%에 그쳤고, 독일은 0.3% 성장에 머물렀다. 유럽 경제의 ‘기관차’로 불렸던 독일과의 격차가 약 9배까지 벌어진 셈이다.

EU 회복기금이 촉발한 재정·투자 사이클

스페인을 떠받치는 첫 번째 기둥은 2021년 도입된 EU 회복기금(NextGenerationEU)이다. 해당 기금에서 스페인이 매년 받는 규모는 GDP 대비 약 1%로, 재생에너지·인프라·디지털 전환 프로젝트에 집중 투입되고 있다. 이 자금은 민간투자를 연쇄적으로 유도하며, 공공·민간 합산 투자 증가율을 2020년 대비 15% 이상 끌어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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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 인상→가계 소비 확대

스페인 정부는 2019년 이후 5차례에 걸쳐 법정 최저임금을 올렸다. 이 조치는 가계의 실질 소비 능력을 확충했고, 소매판매지수는 같은 기간 누적 12% 상승했다. 가처분소득 증가→소비 확대→기업 매출 증가로 이어지는 ‘선순환 고리’가 형성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노동생산성 개선, 프랑스·이탈리아와 대조

스페인 노동생산성은 2020~2025년 연평균 1.4% 상승해 유로존 평균(0.3%)을 크게 상회했다. 반면 프랑스·이탈리아는 각각 –0.2%, –0.4%를 기록해 생산성이 후퇴했다. 생산성 증가는 임금 인상 부담을 일부 상쇄하며 기업 수익성을 방어하는 역할을 했다.

이민 유입과 ‘무장벽’ 노동시장

라틴아메리카·남미 출신 이민자는 2020년 이후 9% 늘어난 스페인 고용증가분의 상당 부분을 담당했다. 동일 언어권 덕분에 언어 장벽이 사실상 존재하지 않아, 신규 노동력이 빠르게 흡수됐다. 같은 기간 유로존 고용증가율이 4%, 독일·오스트리아가 2%였다는 점과 비교하면 스페인의 고용시장 유연성이 두드러진다.

재생에너지 강국이 만든 전력 단가 경쟁력

스페인은 풍부한 일조량과 해안풍 덕분에 태양광·풍력 발전이 급속히 확대됐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스페인 계통연계 태양광 발전단가는 ㎾h당 0.051유로로, 유럽 평균(0.087유로) 대비 40%가량 낮다. 저렴한 전력은 데이터센터·인공지능(AI) 연산 시설 유치로 이어지며 첨단 산업 생태계 확장에 기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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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채 위험프리미엄, 프랑스보다 낮아져

재정 건전성도 개선 흐름을 탔다. 스페인 10년 만기 국채와 독일 국채 간 금리 스프레드는 2023년 0.95%p에서 2025년 0.73%p로 축소됐다. 이는 프랑스(0.78%p)보다 낮은 수준이다. 시장 참가자들은 스페인을 ‘신뢰도 회복 국가’로 분류하며, 포트폴리오 재편 시 채권 비중을 확대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Erste Group Research는 보고서에서 “향후 수 분기 동안 스페인이 독일·프랑스를 포함한 유로존 주요국 대비 상회 성장을 지속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평가했다. 다만 “과거 실적이 미래 성과를 보장하지 않는다”는 전통적 경고도 덧붙였다.

심층 분석: 기적의 지속 가능성

전문가들은 두 가지 리스크에 주목한다. 첫째, EU 회복기금 배분이 2026년 이후 축소될 경우 투자 모멘텀이 둔화될 수 있다. 둘째, 독일 경기 회복이 지연될 경우 유로존 교역 감소가 대(對)유럽 수출 의존도가 높은 스페인 제조업에 부담을 줄 수 있다. 현재 스페인 대EU 수출 비중은 67%로, 프랑스(60%)·이탈리아(59%)보다 높다.

그럼에도 노동·에너지·재정 세 축에서 경쟁력을 확보한 스페인이 ‘중장기 체질 개선’에 성공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특히 AI·데이터센터 시장은 전력비 비중이 40~60%에 달해, 저전력=비용 경쟁력 공식을 다시 한 번 입증하고 있다.

용어 설명

EU 회복기금(NextGenerationEU)은 팬데믹 충격에 대응하기 위해 2020년 유럽연합이 도입한 7,500억 유로 규모의 공동채권 기반 재정 지원 패키지다. 회원국별로 보조금과 저리 대출 형태로 배분되며, 친환경·디지털 전환 프로젝트를 우선 지원한다.

전망과 결론

현재까지 나온 거시·미시 지표는 스페인의 구조적 성장 동력이 단기간에 약화되기 어렵다는 점을 시사한다. 투자 지연, 글로벌 수요 부진 등 불확실성 요인이 존재하나, 생산성·에너지·재정의 3박자를 갖춘 국가는 드물다. 따라서 ‘스페인 경제 기적’은 최소 2026년 중반까지 연착륙 없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