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워싱턴발 — 미국 연방준비제도(이하 연준)의 대차대조표 축소(Quantitative Tightening·QT)가 초과 유동성의 마지막 보루로 평가돼 온 역환매조건부채권(Reverse Repo·역RP) 잔고가 사실상 소진되면서 예측하기 어려운 단계로 접어들었다.
2025년 8월 29일, 로이터통신 보도에 따르면 최근 며칠 사이 연준의 익일물 역RP 시설에 유입되는 현금은 제로(0) 수준에 근접했다. 이는 2022년 마지막 거래일 2조6,000억 달러라는 정점에서 지루하고 완만한 하락을 거듭한 끝에 도달한 결과다.
역RP·QT·SRF, 용어 한눈에 보기
- 역환매조건부채권(Reverse Repo) : 머니마켓펀드(MMF) 등이 초과 현금을 연준에 맡기고 다음 날 다시 돌려받는 초단기 거래. 연준은 이를 통해 단기금리 하한선을 설정한다.
- 대차대조표 축소(QT) : 연준이 보유한 국채·MBS 만기분을 재투자하지 않아 보유자산을 줄이는 정책. 긴축 효과가 있다.
- 상시 Repo 제도(SRF) : 금융기관이 보유 채권을 담보로 연준에서 즉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새로운 완충 장치.
역RP 시설은 주로 MMF들이 단기 유동성을 안전하게 예치하기 위해 활용한다. 2022년 연준이 QT를 시작한 이후 역RP 규모는 꾸준히 감소했다. 그 결과 연준 총보유자산은 2022년 여름 9조 달러에서 현재 6조7,000억 달러까지 축소됐다.
연준이 역RP에 지급하는 금리는 사실상 연방기금금리(FFR) 목표구간의 하단 역할을 한다. 현재 FFR 목표구간은 4.25%~4.50%다.
올해 8월 마지막 주 목요일 기준 역RP 잔고는 320억 달러로, 2021년 봄 이후 최저치다. 애널리스트들은 QT가 진행되더라도 시설에 일정 금액은 남을 것으로 예상했으나, 기준선에 가까운 고갈은 이례적이다. 다만 월·분기 말처럼 유동성 수급이 불안정한 시점에는 단기 사용 급증이 재차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
시험대에 오른 유동성
시장 컨센서스는 QT가 내년 초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본다. 코로나19 시기 과잉 유동성을 흡수했던 역RP가 사실상 증발했지만, 연준 당국은 은행 체계 내 지급준비금(reserves)이 여전히 크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역RP의 실질적 종료는 이러한 판단을 검증하는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미 재무부 차입 일정이 공화당 지출 법안 통과로 가닥이 잡힌 만큼, QT가 본격화되면 초과지준은 더 빠르게 줄어들 것이다. 현재 은행 시스템 지급준비금은 약 3조3,000억 달러 수준으로, 최근 2년간 비슷한 범위를 유지했다.
문제는 준비금이 어느 수준까지 감소하면 단기금리 변동성과 함께 통화정책 전달력이 흔들릴지 불확실하다는 점이다. 2019년 9월 QT가 과도해 단기금리가 급등, 연준이 임시 유동성을 공급했던 경험이 대표적이다.
연준은 이번에는 다르다고 본다. 상시 Repo 제도(SRF)라 불리는 새 도구가 있기 때문이다. SRF는 자격을 갖춘 금융사가 채권을 담보로 즉각 현금을 빌릴 수 있어, 완충 장치로 설계됐다. 실제로 몇 차례 분기말에 소규모 사용 사례가 확인됐으며, 연준도 향후 활용 확대를 예상하고 있다.
지난 7월 FOMC 의사록에 따르면 뉴욕연은 담당 임원은 ‘분기 말·세금 납부일·대규모 국채 결제일에는 준비금이 일시적으로 더 줄 수 있으며, 그때 SRF가 머니마켓의 원활한 작동을 지원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SRF가 수요가 급증하는 상황에서 충분히 작동할지는 검증되지 않았다는 점이 리스크다. 필요할 경우 전통적 Repo(환매조건부) 오퍼레이션을 재가동하겠다는 연준의 가이드라인도 여전하다.
“변수가 너무 많아 결과를 단정하기 어렵다.” — 크리스토퍼 월러 연준 이사
월러 이사는 올여름 연설에서 지급준비금이 2조7,000억 달러 정도까지는 더 줄어들 수 있다는 견해를 밝혔다.
시장 참여자들의 경계음
그러나 일부 채권·머니마켓 트레이더들은 QT 중단 시점을 더 앞당겨야 한다고 주장한다. 커버처 증권(Curvature Securities)의 스콧 스커름 매니징디렉터는 ‘최근 무언가 달라졌다’며 ‘대규모 재무부 국채 발행이 쏟아져 나왔고, 역RP 시설은 0에 근접했으며, 은행 지급준비금이 감소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레포 시장의 자금조달 압력 빈도가 높아지고 있다’며 올해 가을엔 QT를 멈춰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전문가 시각 — 기자 해설
① 정책 한계가 가까워진 신호 : 역RP 고갈은 연준이 의도하던 ‘잉여 유동성 정리’가 상당 부분 완료됐음을 시사한다. ② SRF의 실전 시험 : 향후 분기 말·세금 납부 시즌에 SRF 이용이 급증하면 시장은 이 제도의 리스크 흡수 능력을 가늠할 수 있다. ③ QT 조기 종료 가능성 : 초과유동성 지표들이 빠르게 악화될 경우, 연준은 정책 유연성을 확보하기 위해 QT 속도 조절 또는 중단을 택할 수도 있다.
결국 유동성의 마지노선이 어디인지, SRF가 진정한 방파제가 될 수 있을지가 하반기 글로벌 금리·달러·위험자산 흐름을 좌우할 핵심 변수가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