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오스트리아) – 행동경제학자 마르틴 코허(51)가 9월 2일(현지시간) 오스트리아 국립은행(OeNB) 총재로 공식 취임한다. 그는 매파적 발언으로 유럽중앙은행(ECB) 내부에서 잦은 소수의견을 냈던 로베르트 홀츠만(76)의 뒤를 잇는다.
2025년 8월 29일, 로이터 통신 보도에 따르면 코허는 전임자만큼 공개석상에서 거침없는 발언을 쏟아내지는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다만 오스트리아·독일이 전통적으로 유지해 온 통화정책 보수주의를 계승해 ‘비둘기(dove)’보다는 ‘매파(hawk)’ 성향에 가깝다는 평가가 나온다.
매파·비둘기 용어 설명※
매파(hawk)는 인플레이션 억제를 위해 금리 인상을 선호하는 강경 통화정책 지지자를, 비둘기(dove)는 경기 부양을 위해 완화적 정책을 지지하는 인사를 뜻한다.
스테판 브루크바우어 뱅크오스트리아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코허는 필요한 자질을 모두 갖춘 안전한 선택”이라며 “복잡한 중앙은행 의사결정을 충분히 이해할 전문성이 있다”고 말했다.
코허는 마라톤 풀코스 최고 기록이 3시간 3분대인 열정적인 러너다. 2021년에는 빈 소재 경제정책 연구소 ‘고등연구소’(IHS) 소장을 그만두고 중도우파 국민당(ÖVP) 정부에 합류했다. 이후 ÖVP 추천으로 작년 여름 총재 후보로 확정됐으며, 극우 자유당(FPÖ) 추천을 받아 총재직에 오른 전임 홀츠만과 다른 정치적 배경을 지녔다.
“연방준비제도(Fed)의 독립성이 훼손되면 경제적 불확실성이 커진다.” – 마르틴 코허, 2024년 7월 블로그 기고문 중
그가 향후 정책 방향을 드러낸 드문 사례는 2024년 7월 개인 블로그에 올린 ‘워싱턴, 정신 차려라!’라는 글이다. 여기서 그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측이 미 연준 독립성을 위협하고 국가부채 축소를 명분 삼아 제도 개편을 논의하는 것은 “법적 근거가 빈약하다”고 지적했다. 코허는 “중앙은행 독립성은 인플레이션 기대를 안정시키는 핵심 제도”라고 강조했다.
학계·정책 경험 겸비한 ‘안전판’
코허는 뮌헨 루트비히막시밀리안대학(LMU)에서 행동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옥스퍼드대·뮌헨대·빈대 등에서 연구·강의를 병행했다. 그가 이끌던 IHS는 국내외 정책 평가와 경제 전망 보고서로 유명하다. 2021년부터 2024년까지 노동·경제 장관을 지내며 정부 운영 경험도 쌓았다.
이처럼 학계와 정계 양쪽을 모두 경험한 점은 ECB 통화정책회의(거버닝카운슬)에서 ‘가교 역할’을 할 수 있는 강점으로 꼽힌다. 독일·네덜란드 등과 함께 보수적 통화정책 축을 형성하되, 남유럽권의 완화 주장에도 귀를 기울일 가능성이 제기된다.
총재 임기는 6년이며, ECB 거버닝카운슬에서 한 표를 행사한다. 전임 홀츠만은 6년 동안 금리 동결·인하 결정에 반대하며 유럽 내 대표적 매파로 불렸다. 코허가 이같은 노선을 어디까지 유지할지가 시장의 관심사다.
중앙은행 독립성 논란과 트럼프 행정부 비판
트럼프 전 행정부는 2024년 대선 유세 기간 연준 이사 증원을 통해 정책에 영향력을 강화하려는 구상을 내놓았다. 당시 코허는 블로그에서 “연준 독립성을 구조적으로 흔들려는 시도”라고 강력 비판했다. 그는 “중앙은행 독립성에는 그것이 흔들릴 때의 위험성을 국민에게 알릴 의무도 포함된다”고 밝혔다.
이는 ECB와 오스트리아 정부 간 관계에서도 시사점을 준다. 코허는 정부 출신이지만, 통화정책 의사결정에서 정치로부터 독립성을 지키겠다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강조한 셈이다.
시장 영향 및 전망
오스트리아 국채금리는 총재 지명 이후 특별한 변동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유럽 대부분 국가에서 물가 상승률이 아직 2% 목표를 웃도는 상황이어서, 코허가 매파적 색채를 얼마나 드러낼지에 따라 국채 스프레드에도 영향이 있을 전망이다.
또한 코허는
같이 유럽 중앙은행 시스템(ESCB)의 각국 총재 가운데 행동경제학을 전공한 드문 인물이다. 그는 경제 주체의 비합리적 행동을 고려한 정책 접근을 선호한다는 점에서, 물가·임금·소비 심리 조사 데이터를 중시할 가능성이 크다.
ECB 기준금리가 2025년 3월 4.25%로 정점에 도달한 뒤 동결 국면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코허의 첫 의결 참여 시기는 ‘첫 기준금리 인하 시점’과 맞물릴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이에 따라 그의 첫 공개 기자회견이 유로존 채권·외환시장 참여자에게 중요한 신호가 될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 해석
빈 대학 경제학과의 에바 마이어 교수는 “행동경제학적 시각은 ‘데이터만이 아닌 행동 변화’를 중시한다”며 “임금협상이나 물가 기대심리가 치솟을 위험을 조기에 포착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일부 채권 딜러들은 “정계 경험이 풍부한 총재는 정치 압력에 노출될 수 있다”는 점을 리스크로 언급한다. 코허가 독립성을 강조해왔음에도, 예산 적자 확대를 우려하는 재무부가 금리 인하를 압박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다.
※ 본 기사에 사용된 전문 용어 ‘매파·비둘기’, ‘중앙은행 독립성’ 등은 금융시장 관점에서 널리 쓰이는 표현이나, 경제·정책 분야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에게는 생소할 수 있어 별도 설명을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