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 미니미스’ 폐지, 글로벌 전자상거래 게임의 판을 바꾸다—미국 관세정책 변화의 장기 파장

머리말: ‘사소한 규정’이 거대한 판도를 흔들다

2025년 8월 29일 0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행정명령이 발효되면서 800달러 이하 국제 직구 물품에 적용돼 오던 ‘디 미니미스(de minimis)’ 면세 한도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겉보기에 “소액 물품 세금혜택”에 불과했던 조항 하나가 폐지되자 세계 e커머스 지형, 글로벌 공급망, 물가·통화정책, 심지어 각국 산업정책까지 요동치는 형국이다. 필자는 이번 조치를 “21세기판 스무트-홀리 관세법(Smoot-Hawley Tariff Act)급 충격”으로 규정하며, 향후 1년 이상 장기적인 영향을 ‘다층적 시나리오’로 분석한다.


1. 제도의 탄생과 소멸—숫자로 보는 디 미니미스

연도 미국 디 미니미스 한도(달러) 연간 통관 건수(억 건) 전체 수입액 중 비중
2015 200 1.34 1.1%
2016 800 (TFTEA 상향) 2.76 2.2%
2020 800 9.15 7.4%
2024 800 13.6 10.3%
2025.8.29 폐지

자료: 미국 세관국경보호국(CBP), TFTEA 시행령, 필자 추계

2016년 한도 상향 이후 연평균 28%씩 직구 통관 건수가 폭증했고, 2024년에는 전체 수입액 대비 10%를 넘겼다. 이 거대한 흐름을 단숨에 뒤집는 정책 변화가 2025년 하반기부터 현실화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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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5대 직격권역—누가, 어떻게, 얼마나 타격을 받나

  • ① 초저가 패스트패션 플랫폼—Shein·Temu 등 중국계 플랫폼은 기존 ‘개별 소비자 직송+무관세’ 모델이 붕괴돼 마진의 15~20%포인트가 증발한다.
  • ② 미국 내 소비자·소상공인—NBER 연구 기준, 가구당 연평균 구매 비용 136달러 상승, 저소득층 비중이 높을수록 부담이 가팔라진다.
  • ③ 글로벌 특송·우체국 물류망—하루 400만 건 이상 ‘비공식 통관’에 맞춰 설계된 시스템이 전면 개편되며 UPS·페덱스·USPS 모두 통관 수수료 신설을 예고했다.
  • ④ 크로스보더 인플루언서·크리에이터 경제—개인 셀러가 Etsy·Shopify를 통해 미국으로 소액 발송하던 경로가 사실상 끊겨 DTC 비즈니스가 위축될 전망이다.
  • ⑤ 신흥국 수출 의존 제조업—베트남·방글라데시 의류, 태국 보석류 등 ‘저가+고빈도’ 수출국은 관세 및 서류비용 증가로 가격경쟁력이 급감한다.

3. 거시경제 차원: 물가·GDP·통화정책에 미치는 파장

물가 전가 효과를 보수적으로 60%로 가정하면, 관세·통관비로 오른 공급망 비용 가운데 6할이 소매가격에 전가된다. CPI 항목 중 의류+가정용품+가전이 차지하는 10.9% 가중치를 적용할 때, 2026년 상반기까지 미국 헤드라인 물가는 +0.24%p 추가 상승이 불가피하다.

연준(Fed)은 근원 PCE 2% 목표 달성을 위해 이미 완화적 전환을 시사했지만, 디 미니미스 폐지발(發) 물가 충격이 금리 인하 속도를 늦추는 ‘뒤끝 인플레이션’으로 기능할 가능성이 크다.

반대로 GDP 기여도는 2025~2026년 누계 –0.08%p로 제한될 전망이다. 수입대체 재편이 국내 생산·고용을 자극하는 긍정 효과가 3년 차부터 발생하겠으나, 이는 전적으로 기업의 리쇼어링 속도—특히 멕시코‧캐나다 USMCA 블록을 통한 ‘프렌드-쇼어링’—에 달려 있다.


4. 산업·기업전략: 3단계 대응 시나리오

시나리오 A: 현지 재고 풀필먼트 전환(0~6개월)

아마존 FBA, 월마트 WFS와 같은 미국 내 창고를 활용해 ‘대량 반입+국내 재배송’ 방식으로 전환한다. 초기 창고·통관비 부담이 커지지만, 운임 단가가 떨어져 규모 1억 달러 이상 셀러는 손익분기점을 유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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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리오 B: 멕시코·캐나다 경유 우회(6~18개월)

USMCA 원산지 기준(Regional Value Content)을 맞추기 위해 최종 조립 공정을 국경 인근에 두는 전략이다. 한계노동비용은 중국 대비 +30%지만, ‘무관세+근접 배송’으로 전체 사이클타임이 15일→7일로 단축된다.

시나리오 C: 플랫폼-직매입 하이브리드(18개월 이상)

플랫폼이 자체 브랜드를 발굴·직매입해 미국 내 재고를 확보, 판매 데이터를 AI로 학습해 재고 리스크를 최소화한다. Temu가 미시시피주에 140만 ft² 규모의 창고 건설을 발표한 것이 단적인 예다.


5. 국제통상·외교: WTO 규범과 동맹관계 재편

미국의 일방적 면세 폐지는 WTO 규정 위반 소지가 적지만, EU·영국 등이 150유로(약 165달러)로 한도를 유지하는 상황에서 다자·양자 FTA의 ‘최소동등 대우’ 조항 논란을 유발할 수 있다.

특히 한-미 FTA 7.8조(특송통관)를 통해 한국 기업은 200달러 이하 면세 혜택을 누려왔으나, 미국이 이를 일방적으로 무력화하면서 상호주의 개정 요구가 불가피하다. 향후 FTA 10주년 재협상 테이블에서 “e커머스 원산지 기준 간소화 vs 면세한도 복원”이 교환조건으로 부상할 전망이다.


6. 시장·투자 포인트: ‘세 가지 장기 베팅’

  1. 미국 3PL·창고 REIT—디 미니미스 폐지는 물류창고 ‘라스트마일’ 수요를 구조적으로 확대한다. Prologis, Rexford 등 물류 REIT는 평균 임대료를 연간 5% 이상 인상할 여지가 있다.
  2. 샌프란시스코·멕시코 국경 IT 플랫폼—관세·통관 소프트웨어(연방양식 HS코드 자동화) 수요가 급증하면서 SPS Commerce, Descartes Systems 등 교역 SaaS 기업의 매출 성장률이 ‘고속도로 톨게이트’ 수준의 반복 과금 모델로 확대될 전망이다.
  3. 북미 의류 OEM·ODM—Gildan, Delta Apparel 등 ‘생산+풀필먼트+라벨링 원스톱’ 기업은 중국·동남아 벤더 대비 납기·관세에서 절대 우위를 확보한다.

7. 규제·정책 로드맵: 무엇이 바뀌고, 언제 확인할 수 있나

2025년 11월 미 의회 회계감사원(GAO)이 디 미니미스 폐지 90일 실증보고서를 제출한다. 이후 2026 회계연도 예산심사에서 관세로 늘어날 세수를 ‘보육세액공제 확대’ 재원으로 전용하는 법안이 추진될 예정이다.

2026년 2분기 CBP는 ‘전자 일괄통관(e-Manifest)’ 의무화를 시행해, 사업자 식별·세율 적용 오류를 실시간 차단한다. 이때까지 IT시스템을 업그레이드하지 못한 해외 셀러는 자동으로 ‘High-Risk Flag’에 분류돼 수입이 지연될 가능성이 크다.


8. 결론 및 필자 제언

디 미니미스 폐지는 물가 상승·공급망 재편·전자상거래 패권 경쟁을 동시다발적으로 자극하는 경제 패러다임 리셋 스위치다. 단기적으로는 인플레이션과 소비 위축이 불가피하지만, 중장기적으로 미국 내 제조·물류 인프라 투자와 북미 블록화가 가속될 것이다.

투자자는 ‘원가 상승 부담을 전가할 수 있는 브랜드 파워’와 ‘미국 내 물류자산 보유’ 여부를 핵심 선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정책당국은 저소득층 가격 충격을 상쇄할 소비 쿠폰·관세 환급 프로그램을 병행해 공급망 안정화와 사회적 수용성을 동시에 달성해야 한다.

끝으로, 한국 기업은 원산지 규정·전자통관 코드체계를 선제적으로 대비하여 미·멕시코 앵커링 전략을 가속화해야 한다. 디 미니미스 폐지는 ‘위기’이자 ‘재편의 기회’다. 발 빠른 전환이 향후 10년 글로벌 유통·제조 주도권을 좌우할 것이다.


※본 칼럼은 필자의 객관적 데이터 분석과 시장 시나리오에 근거한 견해이며, 특정 종목·자산의 매매를 권유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