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억 달러 기업에서 파산까지…에버그란데 투자자들이 치른 대가

중국 부동산 개발사 에버그란데(China Evergrande Group)의 흥망성쇠가 15년 만에 일단락됐다. 한때 세계에서 가장 부채가 많은 개발사였던 이 기업은 2009년 홍콩 증시 상장 당시 중국 민간 개발사로서는 최대 IPO를 기록하며 화려하게 등장했으나, 2024년 1월 청산 명령을 받고 결국 2025년 8월 26일 홍콩거래소에서 상장폐지를 확정했다.

2025년 8월 22일, 로이터 통신 보도에 따르면 에버그란데의 주가는 2009년 상장 직후 시가총액 90억 달러(약 11조 8,000억 원)에서 2017년 510억 달러(약 66조 7,000억 원)까지 다섯 배 이상 급등했으나, 최근에는 불과 2억 8,200만 달러(약 3,700억 원)로 추락했다. 주가도 최고점이었던 31.39홍콩달러에서 마지막 거래일(2023년 1월)에는 0.163홍콩달러로 곤두박질쳤다.

이처럼 극적인 ‘부채 의존 성장의 폐해’를 보여준 사례는 중국 경제가 겪고 있는 구조적 위험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에버그란데가 떠안은 부채 총액은 3,000억 달러(약 404조 원)를 넘어섰으며, 이는 글로벌 부동산 업계 최대 수준이다. 청산 명령 이후 18개월 이내에 거래 재개를 이루지 못하면서 상장폐지 요건이 성립돼 이번 조치가 내려졌다.


부동산 위기의 상징, 에버그란데

전문가들은 이번 상장폐지가 상징적 의미를 넘어 중국 부동산업 ‘황금기’의 종식을 알리는 사건으로 평가한다.

“에버그란데는 중국 부동산 붕괴의 대표적 사례다. 상장폐지는 상징적 조치에 불과하지만, 중국 부동산의 황금기가 끝났음을 확증한다.” — Gary Ng, 나티시스(Natixis) 수석 이코노미스트

중국 당국은 2021년 발발한 부동산 위기를 완화하기 위해 각종 부양책을 내놓았지만, 유동성 경색과 수요 부진은 여전하다. 국영 개발사 차이나사우스시티(China South City)마저 이달 초 홍콩 고등법원에서 청산 명령을 받은 점은 위기가 민간기업을 넘어 공기업으로 확산됐음을 방증한다.

상장폐지가 투자자·채권자·소비자에 미칠 파장

중국 소비자들은 미완공 주택 인도 지연, 투자상품(WMP) 손실 등 다중 피해에 직면했다. ‘Douyin(틱톡 중국판)’ 이용자 8AD2D1D4는 “이렇게 큰 디벨로퍼가 망할 줄은 몰랐다”며 분노를 표했다. 경기 부양을 바라는 정부 구호에도 불구하고 소비 심리가 살아나기 어려운 이유다. 오스카 앤드 파트너스 캐피털(Oscar and Partners Capital) 최고투자책임자 오스카 최(Oscar Choi)는 “주머니가 빈 상태에서 소비 심리를 살리기는 어렵다”고 진단했다.

법조계에 따르면, 청산 절차는 최소 10년이 걸릴 전망이며 회수율은 극히 낮을 가능성이 크다. 회사 청산인들은 4억 5,000만 달러(약 5.9조 원)에 달하는 채권자 청구액 중 오프쇼어 자산 처분으로 2억 5,500만 달러를 회수했을 뿐이다. 청산인들은 전·현직 경영진에게 지급된 60억 달러 배당·보수 환수를 시도하고 있으며, 창업주 후이카옌(Hui Ka Yan)과 전 배우자의 해외 자산 동결 소송도 진행 중이다.


후이카옌의 흥망성쇠, 기업사의 거울

창업주 후이카옌은 허난성 농촌에서 조모에게 자라나 철강 기술자로 사회에 첫발을 디뎠다. 2009년 상장 파티에는 홍콩 부동산 재벌 정주퉁(Cheng Yu-tung·전 뉴월드디벨롭먼트 회장), 조지프 라우(Joseph Lau·중국에스테이트 설립자) 등 쟁쟁한 재계 인사들이 참석해 화제를 모았다. 그러나 2023년 후이는 구금 상태에 놓였고, 금융당국은 2024년 3월 그를 증권시장 ‘영구 퇴출’하고 4,700만 위안(약 87억 원) 과징금을 부과했다.

여기서 ‘청산 명령(리퀴데이션 오더)’은 법원이 지급불능 기업의 자산을 환가(換價)해 채권자에게 분배하도록 지정하는 절차다. 법원이 선임한 청산인(liquidator)은 경영진과 독립적으로 회사 자산을 관리·매각하며, 주식은 거래 정지 및 상장폐지로 이어진다. 따라서 에버그란데 주주는 사실상 지분 가치가 전무해진다.

시장의 교훈과 향후 전망

에버그란데의 몰락은 과도한 레버리지, 투기적 토지 매입, 규제 환경 변화에 대한 안일한 대응이 결합될 때 어떤 결과가 초래되는지 극명히 보여준다. 동시에 중국 경제의 ‘부동산 의존’ 구조를 재설정해야 한다는 압박을 높이고 있다. 정책당국은 프로젝트 완공·인도, 채권자 손실 최소화, 금융 리스크 확산 방지라는 삼중 과제를 떠안게 됐다.

전문가들은 단기적으로는 추가 디폴트와 청산이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부동산 시장이 규제·신용에 기반한 ‘건전 성장’ 단계로 옮겨가면 투명성과 리스크 관리가 강화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투자자들은 정책 기조 변화, 지방정부 구제책, 소비 회복 신호 등을 주의 깊게 관찰할 필요가 있다.

한편, 환율 효과를 감안하면 투자자 손실 규모는 더욱 확대된다. ($1=7.8140 HKD) 달러 강세 국면에서 홍콩달러가 미국달러에 패깅(고정)돼 있음을 고려하면, 국내 투자자가 체감하는 손실 비율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에버그란데는 ‘지나친 확장’이라는 역사의 교훈을 시장에 던지며 무대에서 퇴장했다. 남은 과제는 채권자 손실 최소화주택 구매자 보호, 그리고 부동산업 전반의 신뢰 회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