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기간 꾸준히 일하며 자산을 모아온 은퇴 세대라도, 은퇴 이후의 의사결정 하나하나가 남은 삶의 재정 안정성을 좌우한다. 특히 ‘더 이상 돈을 불릴 필요가 없다’는 안일한 생각은 인플레이션, 의료비 상승, 긴 노후 기간 등 예측 불가 변수를 만났을 때 심각한 재정 공백을 초래할 수 있다.
2025년 8월 21일, 나스닥닷컴 보도에 따르면, 미국 개인재무 전문 매체 GOBankingRates는 재무설계사·투자 전문가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은퇴자들이 자산을 키우지 못하게 만드는 대표적 실수 네 가지를 정리했다. 본지는 원문을 번역하고, 한국 투자자 관점에서 추가 통찰을 덧붙여 소개한다.
1. 투자 비중을 지나치게 보수적으로 전환
REAP 파이낸셜(REAP Financial) 최고경영자(CEO) 크리스 히어라인(Chris Heerlein)은 “은퇴자들이 너무 빨리, 그리고 과도하게 보수적 자산으로 옮겨 탄다”는 점을 최악의 실수로 꼽았다. 그는 “은퇴 기간이 25~30년, 길게는 그 이상 이어질 수 있는데, 모든 자금을 채권·현금성 자산으로 바꿔버리면 구매력 하락과 인플레이션 충격에 대응하기 어렵다”고 경고했다.
고정수입(채권·정기예금 등)이 ‘안전해 보인다’는 인식은 맞지만, 장기적으로 실제 생활비 상승률을 따라잡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히어라인은 “
은퇴는 투자 레이스의 결승선이 아니라 새로운 구간이다. 현명한 성장 전략이 여전히 필요하다
”고 강조했다.
✔ 용어 설명: ‘고정수입 자산(Fixed Income)’
고정수입 자산이란 일정한 이자나 배당을 정기적으로 지급받는 채권·우선주·예금 등을 의미한다. 변동성이 낮은 대신, 금리·물가 상승 시 실질수익률이 마이너스로 전환될 수 있다는 점이 단점이다.
2. 단기 소득에만 집착하고 장기 기회를 외면
히어라인은 두 번째 실수로 “오늘 당장 받을 수 있는 현금흐름만 바라보다가, 재투자 기회와 성장 동력을 놓친다”는 점을 들었다. 그는 “예측 가능한 분배(Distribution)만 고집하면 포트폴리오 잠재력이 줄어든다”고 지적했다.
히어라인이 관리하는 성공적인 은퇴 고객 다수는 전체 자산의 20%~30%를 혁신 산업·주식 기반 성장 자산에 배분한다. 이를 통해 필요할 때 기부·상속·재투자 등을 추진하면서도 원금을 훼손하지 않을 여력을 확보했다. 그는 “위험 추구가 아니라, ‘게임에 남아 있는 것’이 핵심”이라고 설명한다.
3. 현금 보유 비중 과다
실리콘비치 파이낸셜(Silicon Beach Financial) 창립자 겸 대표 크리스토퍼 스트루프(Christopher Stroup)에 따르면 많은 은퇴자가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한다며 거액을 예·적금 계좌에 묶어두지만, 이는 물가 상승률에 뒤처져 실질 가치가 서서히 깎이는 결과로 이어진다.
스트루프는 “유동성(필요시 현금화)과 성장의 균형을 맞추는 분산투자 전략이 더 합리적”이라며, 최소 생활비 6~12개월치를 넘는 과다 현금은 ETF·단기채·우량주 배당주 등 상대적 저위험 상품으로 옮길 것을 조언한다.
4. 세금 부담 과소평가
스트루프는 네 번째 함정으로 세금(소득세·양도소득세·상속세 등) 계산을 소홀히 하는 것을 들었다. 그는 “RMD(Required Minimum Distribution, 최소 필수 인출)·사회보장연금·투자 소득이 서로 맞물려 예기치 않은 세금 폭탄으로 돌아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전략적 세금 설계를 통해 ‘둔화된 투자수익률’을 상쇄하고, 장기 세율 부담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예컨대, 수입이 일시적으로 낮을 때 전통형 IRA를 로스(Roth)로 전환하거나, 세금효율 ETF로 갈아타는 방식 등이 있다.
✔ 용어 설명: ‘RMD’
RMD란 미국 세법상 세금유예형 은퇴계좌(401(k), 전통 IRA 등) 보유자가 일정 연령(현재 73세*)에 도달하면 매년 필수로 인출해야 하는 최소 금액을 말한다. 인출액은 과세소득으로 잡히므로 미리 계획하지 않으면 누진세 영향을 크게 받을 수 있다.
*세법 개정으로 RMD 개시 연령은 단계적으로 75세까지 상향될 예정
전문가 시사점 및 한국 투자자에게 주는 교훈
한국 역시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 중이다. 국민연금만으로 노후가 보장되기 어려운 구조에서, 은퇴 후에도 일정 수준의 성장 자산을 유지해야 한다는 메시지는 국내 투자자에게도 유효하다. 특히 채권·예금 위주 자산 배분이 이미 과반을 넘어선 장년층이라면, 물가연동채(TIPS), 글로벌 배당주 ETF, 가치주 펀드 등을 통해 ‘인컴+성장’ 포트폴리오를 모색할 필요가 있다.
또한, 국내 세법도 연금저축·IRP 인출 시기 및 방식에 따라 세액공제 환수·세율 차등이 발생한다. 은퇴 이전부터 세금 시뮬레이션을 통해 최적 인출 순서를 설계하면, 평균수명 100세 시대 재정 스트레스를 크게 줄일 수 있다.
결론
요약하면, 지나친 보수화·단기 소득 집착·현금 과잉·세금 과소평가가 은퇴 자산을 갉아먹는 주범이다. 전문가들은 “포트폴리오 성장성 유지, 유동성 확보, 세후(稅後) 수익률 극대화”라는 세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아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결국 은퇴 이후에도 배움을 멈추지 않고, 시장에 머무르며, 세금까지 계산하는 ‘적극적 관리’가 장수 시대의 필수 생존 전략임을 시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