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연방준비제도(Fed) 의장 제롬 파월이 23일(현지시간) 와이오밍주 잭슨홀에서 열리는 연례 경제정책 심포지엄에서 사실상 마지막이 될 수 있는 기조연설을 앞두고 있다. 올해는 정치적 압력과 정책 전환 가능성이 동시에 겹친 ‘격동의 시기’라는 점에서 월가와 글로벌 투자자들이 그 어느 때보다 그의 발언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2025년 8월 21일, CNBC 뉴스의 보도에 따르면 파월 의장은 이번 연설에서 단기적으로는 금융시장 심리, 중장기적으로는 통화정책 경로, 그리고 연준의 제도적 독립성이라는 세 축을 가늠할 메시지를 내놓을 전망이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거센 정치적 압박 속에서 연준이 얼마나 ‘독립성’을 사수할 수 있을지가 최대 관심사로 떠올랐다.
1. 정치적 압박 속에서도 ‘차분한 외피’ 유지
State Street Global Advisors의 마이클 아론 수석투자전략가는 “파월 의장은 그동안 데이터를 중시하며 ‘이중책무(물가 안정·최대 고용)’에 집중해왔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공개 압박에도 묵묵히 고지식을 지켜온 점에서 이번에도 같은 기조를 유지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1기 때와 마찬가지로 올해도 “멍청한(stupid) 파월”이라는 거친 표현까지 동원해 연준을 향해 금리 인하를 촉구해왔다. 최근에는 워싱턴 D.C. 본부 리모델링 공사 및 리사 쿡 연준 이사에 대한 모기지 사기 의혹을 제기하며 공격 수위를 높였다. 이에 따라 시장은 파월 의장이 기조연설에서 ‘연준의 정치적 독립성’을 어떻게 방어할지 주목하고 있다.
“중앙은행의 독립성은 민주주의 국가 경제 운용의 필수 요건이다.”
― 댄 노스, Allianz Trade North America 수석이코노미스트
댄 노스 이코노미스트는 “파월 의장이 이번에 한두 차례라도 독립성에 대한 발언을 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노스는 “법적으로 트럼프 대통령이 파월을 해임하기는 어렵다”면서도 “정치가 가할 수 있는 ‘거대한 압력’을 차단하려면 공개적 언급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2. 9월 FOMC 금리 인하 시사 여부
이번 연설의 공식 주제는 ‘경제 전망 및 정책 프레임워크 검토(Economic Outlook and Framework Review)’다. 연준은 5년마다 장기 정책 목표와 프레임워크를 점검하는데, 그 과정에서 통화정책 방향성이 공개된다. 월가는 이를 통해 9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금리를 내릴지 가늠하고 있다.
골드만삭스의 데이비드 메리클 이코노미스트는 “파월 의장이 ‘결정적(direct) 신호’까지는 주지 않겠지만, 연설 속 어조만으로도 9월 인하 가능성을 뒷받침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잭슨홀을 주최하는 캔자스시티 연은의 제프리 슈미드 총재는 CNBC와의 인터뷰에서 “아직 데이터가 부족하다”며 신중론을 고수해 시장의 혼선을 키웠다.
FOMC 투표권이 있는 인사들 가운데 크리스토퍼 월러·미셸 보우먼 이사만이 ‘9월 인하’를 공개 지지했다. Evercore ISI의 크리슈나 구하 전략가는 “파월이 사전에 약속하지 않는 신중전략을 택할 경우 일부 투자자들은 실망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3. 물가·고용 지표 해석이 관건
7월 FOMC 직후 발표된 미국의 7월 비농업 고용은 부진했으며, 5·6월 수치는 추가 하향 조정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준 위원 다수는 최근까지 노동시장을 ‘견조(solid)’하다고 표현해 왔다. 이는 ‘급박한 인하 필요성’이 다소 낮아졌다는 신호로 풀이된다.
반면 7월 의사록에 따르면 대부분의 위원들은 ‘인플레이션 리스크’를 더 큰 우려로 꼽았다. 특히 베스 해맥(클리블랜드 연은)·라파엘 보스틱(애틀랜타 연은)·제프리 슈미드(캔자스시티 연은) 총재 등은 9월 인하에 반대하거나 유보적 견해를 밝혔다. 시장에서는 “이 같은 태도가 트럼프 대통령과 투자자 심리를 자극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여기에 트럼프 행정부가 부과한 대중(對中) 관세의 ‘물가 전가(pass-through)’ 효과가 얼마나 클지, 그리고 연준이 이를 어떻게 해석할지도 관심사다.
4. 2020년 ‘평균물가목표제’ 손질 예고?
파월 의장이 2020년 팬데믹 당시 도입한 ‘유연 평균물가목표제(FAIT, Flexible Average Inflation Targeting)’는 실업률이 높을 때 일시적으로 2%를 웃도는 물가 상승을 용인한다는 개념이다. 그러나 이후 40여 년 만의 최고 인플레이션이 나타났고, ‘일시적(transitory)’이라는 연준의 진단은 결과적으로 정책 대응 지연을 초래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도이체방크의 매슈 루제티 수석이코노미스트는 “FAIT가 인플레이션 폭등의 단초가 됐다”며 “잭슨홀 연설에서 파월이 ‘선제적 대응(preemption)’의 부활을 선언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장기목표 성명서의 2020년 수정 부분을 되돌리고 전통적 2% 목표 체제로 복귀할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5. 잭슨홀·FOMC·선제적 대응, 이것이 무엇인가?
잭슨홀 심포지엄은 1978년 시작된 연례 중앙은행 회의로, 전 세계 통화당국·학계·시장 전문가들이 모여 경제 현안을 논의한다. FOMC(Federal Open Market Committee)는 연준의 정책 의사결정을 담당하는 기구다. 선제적 대응은 물가가 상승할 조짐만 보여도 사전에 금리를 인상해 인플레이션을 억제하는 정책 기조를 의미한다. 이러한 개념은 숙련된 투자자에게는 익숙하지만, 일반 독자에게는 낯설 수 있어 추가로 설명한다.
6. 기자의 시각: ‘정교한 균형점’ 찾기
연준 의장이 직면한 과제는 결국 금리 인하를 원하는 정치권과 인플레이션을 억제해야 하는 통화 당국 사이의 정교한 균형점을 찾는 일이다. 파월은 그동안 ‘데이터·시장 안정·연준 신뢰’라는 세 가지 축을 지켜내며 명민한 조정자 역할을 수행해왔다. 이번 잭슨홀에서 그는 독립성과 정책 일관성을 다시 한번 강조할 가능성이 높다. 필자는 파월 의장이 ‘중기적 물가·고용 균형’이라는 명분을 앞세워 9월 인하를 위한 ‘조건부 문’을 열어둘 것으로 본다. 다만 노동시장 둔화가 더욱 명확해지지 않는 한 ‘파월 푸트(Powell put)’에 대한 즉각적 기대는 자제하는 편이 바람직하다.
7. 일정 및 마무리
파월 의장의 연설은 23일 오전 10시(미 동부시간)에 시작되며, 잭슨홀 심포지엄은 24일 토요일까지 진행된다. 그의 발언은 향후 몇 주간의 시장 변동성뿐 아니라 연말까지 이어질 통화정책 경로에 결정적 단서가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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