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밀리오피스의 장기 전략과 단기 전술이 교차하다
억만장자 개인 자산을 전담 관리하는 패밀리오피스는 통상 수십 년, 길게는 세대를 아우르는 장기 투자 성향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2025년 4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추가 관세를 발표한 뒤, 세계 최고 부호들의 패밀리오피스는 불과 석 달 만에 포트폴리오를 대대적으로 재편했다. CNBC가 2분기(6월 30일 기준) 증권거래위원회(SEC) 공시자료(13F)를 분석한 결과다.
2025년 8월 21일, CNBC 뉴스의 보도에 따르면, 데이비드 테퍼의 아팔루사 매니지먼트, 레온 쿠퍼먼의 오메가 어드바이저스, 조지 소로스의 소로스 펀드 매니지먼트 등 거물 투자자들의 패밀리오피스가 관세·침체 리스크에 대응해 특정 종목을 과감히 정리하거나 비중을 축소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카지노 운영사 라스베이거스 샌즈(Las Vegas Sands Corp)는 미·중 무역 전쟁이 마카오 사업에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우려로부터 직격탄을 맞아, 세 곳 모두 보유 지분을 전량 매도했다.
또한 쿠퍼먼의 오메가 어드바이저스는 마이크로소프트 지분을 전량 처분했고, 알파벳 보유량을 90% 가까이 축소했다. 스탠리 드러켄밀러가 이끄는 듀케인 패밀리오피스는 아마존을 포함해 총 37개 포지션을 감소시키거나 매도했다. 쿠퍼먼은 6월 CNBC ‘스쿼크 박스’ 인터뷰에서 “지금 주식시장은 글로벌 불확실성에 비해 자신감이 과도하다”며 “‘대형 약세론자’도 ‘대형 강세론자’도 아니다”라고 신중론을 강조했다.
“I’m not a big bear, but I’m not a big bull either.” – Leon Cooperman, 2025년 6월 CNBC 인터뷰 중
13F 공시란?
미국 내에서 1억 달러 이상의 상장 주식을 운용하는 기관투자자는 분기마다 보유·거래 내역을 공개해야 한다. 다만 JP모건, 베세머트러스트 등 외부 기관에 운용을 위탁하면 공시 의무가 면제된다. 이는 사적 재산 운영이라는 패밀리오피스 본연의 익명성을 유지하는 통로로도 활용된다.
AI 열풍 속 엔비디아·TSMC로 ‘U턴’
관세 변수와 무관하게, 패밀리오피스들은 반도체 업종에 대한 확신을 더욱 공격적으로 확대했다. 테퍼의 아팔루사는 엔비디아 지분을 500% 늘렸고, 소로스 펀드 매니지먼트도 주식 및 옵션을 합해 약 93만2,000주 규모를 사들였다. 인공지능(AI) 인프라 수요 증가가 관세 부담을 상쇄할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AI 테마는 다른 반도체주에도 확장됐다. 아팔루사는 인텔 주식 800만 주, 대만의 TSMC 주식 75만5,000주를 신규 또는 추가 매수했다. 드러켄밀러와 소로스 역시 TSMC 비중을 늘렸다.
오메가 어드바이저스는 AI 전력 소비 확대에 착안, 아틀라스 에너지 솔루션스, 선오코, 에너지 트랜스퍼 LP 등 에너지 제공업체 지분을 대폭 늘렸다.
‘기회투자’로 애널리스트 예상을 뒤엎다
장기적 관점의 ‘버핏 스타일’이 강점인 패밀리오피스는 단기 변동성 속에서도 과감히 저가 매수 전략을 구사했다. 아팔루사는 4월 19% 급락한 유나이티드헬스 그룹 주식 230만 주를 매입했다. 또 경기 침체 우려로 흔들린 항공주에서도 유나이티드항공과 델타항공 지분을 신규 보유했다. 소로스와 마이클 플랫의 블루크레스트 캐피털 매니지먼트도 유나이티드헬스 비중을 늘렸고, 두 항공사 주식 모두에 새로 진입했다.
패밀리오피스란 거액 자산가의 개인 금융회사다. 헤지펀드와 달리 외부 자금을 받지 않으며, 투자 기간과 위험 선호도를 완전히 독립적으로 설계할 수 있다. 덕분에 단기 쇼크 이후 가격이 회복될 때까지 수년간 기다릴 자금력과 심리적 여유를 동시에 갖춘다.
전문가 시각: ‘정밀 조정’과 ‘주제별 집중’의 병행
이번 2분기 변동은 ‘거시 리스크를 피하면서, 구조적 성장 테마를 집중 공략’하는 패밀리오피스 특유의 전략을 확인시켰다. 관세·지정학 변수로 직격탄이 예상되는 카지노·빅테크 주식을 줄이는 동시에, AI·의료·인프라처럼 분명한 성장 확신이 있는 섹터는 오히려 비중을 늘렸다. 이는 대형 기관투자자에게 나타나는 보편적 ‘리밸런싱’ 패턴이지만, 개별 가족의 리스크 허용 범위를 반영해 보다 빠르고 과감하게 실행됐다는 데 의미가 있다.
특히 에너지·반도체 양축 강화는 ‘AI 시대의 필수재’로서 전력과 계산 자원의 수요가 폭증할 것이라는 장기 관점과 궤를 같이한다. 한국 투자자 역시 패밀리오피스 포트폴리오 흐름을 참고해, 단기 뉴스에 휘둘리지 않는 ‘주제별 집중’ 전략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본 기사는 2025년 8월 21일(현지시간) 공개된 CNBC Inside Wealth 뉴스레터 원문을 바탕으로, 주요 내용과 숫자를 그대로 반영해 번역·구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