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가 2020년 팬데믹 시기 도입했던 ‘노동시장 중시’ 전략을 전면 재점검하며, 잭슨홀 심포지엄에서 새로운 통화정책 프레임워크를 공개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2025년 8월 21일, 인베스팅닷컴의 보도에 따르면, 제롬 파월 의장은 23일(현지시간) 와이오밍주 잭슨홀에서 열리는 연례 경제정책 심포지엄 기조연설을 통해 5년 만에 대폭 수정된 정책 원칙(statement of principles)을 발표할 예정이다.
이번 개편안은 ‘물가가 조금 높더라도 고용 최대화를 우선하겠다’는 2020년 선언을 완전히 폐기하진 않지만, 안정적 인플레이션을 노동시장 호황의 전제조건으로 다시 강조하며, 저물가·저성장 국면에서만 확장적 완화 조항을 적용하도록 구분할 방침이다.
1. 2020년 실험의 배경과 한계
팬데믹 초창기 연준은 ‟광범위하고 포용적인(broad-based and inclusive) 고용”을 목표로, 일시적 인플레이션 위험만으로 금리를 인상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는 2007~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만성 저물가와 저성장, 그리고 세큘러 스태그네이션※1 우려가 짙었던 2010년대 경험에서 비롯됐다.
그러나 2021~2022년 공급망 붕괴와 재정 부양책이 결합하며 미국의 소비자물가지수(CPI)는 한때 9%대까지 치솟았다. 이로 인해 ‘상승한 인플레이션을 나중에 평균 2%로 수렴시키겠다’는 평균물가목표제(AIT) 조항은 시장의 신뢰를 잃고, 오히려 연준의 대응이 늦어졌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2025년은 2020년이 아니다. 우리는 이제 금리 운용 여력이 있다” — 리처드 클라리다 전 연준 부의장
클라리다 전 부의장은 Pimco 글로벌 경제고문으로서 “금리가 0%에 갇혀 있던 시기엔 AIT가 유효했지만, 기준금리가 5% 내외로 정상화된 현재는 단순 인플레이션 타기팅으로 회귀할 필요가 있다”고 평가했다.
2. 새 프레임워크의 핵심 — “안정적 물가가 최상의 고용을 낳는다”
파월 의장은 최근 두 차례 FOMC 기자회견에서 “물가안정 없이는 모든 국민에게 혜택을 주는 강한 노동시장을 달성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이는 앨런 그린스펀 전 의장이 즐겨 쓴 ‘물가안정 → 잠재성장률 확대 → 고용 극대화’ 도식을 재현한 것으로, 공급 충격이 잦은 현 국면에선 전통적 우선순위로 복귀하겠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연준의 7월 29~30일 회의록도 “위원회가 광범위한 경제상황에 탄력적으로 적용될 원칙을 거의 확정했다”고 밝히며, 이전 문구 중 평균물가목표제의 문법을 상당 부분 축소할 것임을 시사했다.
3. 시장과 정치권의 시각
공화당 일각은 2020년 개편 당시 ‘소득 불평등 해소’를 언급한 연준을 ‘워크(Woke) Fed’라고 비판해 왔다. 반면 진보 성향 의원들은 높은 금리로 인해 흑인·히스패닉 노동자층이 disproportionate하게 타격받을 것이라고 우려한다. 이번 조정안이 양측의 시각차를 완전히 해소하긴 어렵겠지만, “고용 목표를 포기한 것”이라는 인상을 줄이지 않기 위해 문안 조정이 막바지 진통을 겪는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 미국 실업률은 3.5% 내외로 팬데믹 이전과 유사한 완전고용 수준이지만, 임금 상승률 둔화와 분배 구조 개선 지표는 아직 뚜렷하지 않다. 이에 따라 연준이 “물가부터 잡고 보자”는 메시지를 내놓더라도, 노동시장 ‘포용성’ 지표를 병렬로 제시해 정치적 균형을 꾀할 것이란 관측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4. 용어·개념 설명
※1세큘러 스태그네이션(Structural or Secular Stagnation) : 장기적으로 투자 수요와 잠재성장률이 낮아지면서 경기부양을 위한 기준금리가 자연스럽게 0% 부근으로 밀려드는 현상을 뜻한다. 2010년대 주요 선진국이 겪은 상황으로, 인플레이션보다 디플레이션 위험이 더 컸다.
평균물가목표제(AIT) : 특정 시점 물가가 2%를 초과하더라도, 과거에 2%를 밑돌았던 기간을 상쇄해 장기 평균을 2%로 맞추겠다는 전략이다. 저물가 고착화 구간에서 시장 기대 인플레이션을 끌어올리기 위한 도구로 쓰였다.
5. 향후 일정과 정책 여력
연준의 현 기준금리(연방기금금리) 목표 범위는 4.25%~4.50%다. 지난해엔 5.25%까지 올라 2000년대 중반 평균 수준을 회복했으며, 2008년 3월부터 2022년 9월까지 2.5%를 넘지 못했던 장기 저금리 환경과 대조된다.
시장참가자들은 파월 의장이 새 프레임워크 발표와 동시에 “정책 금리 인하 여력”을 언급할 가능성에도 주목한다. 기준금리가 과거보다 훨씬 높은 만큼, 향후 경기 침체 국면이 오더라도 과거처럼 양적완화(QE)로 직행하지 않고, 금리 인하만으로도 경기 부양이 가능하다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6. 전문가 의견
듀크대학교 엘런 미드 교수(전 연준 고문)는 “‘실업률이 낮으면 물가가 오른다’는 전통적 필립스 곡선 사고가 달라졌다”면서도 “물가안정을 먼저 확보하고, 그 토대 위에서 포용적 고용을 달성한다는 파월 의장의 재 framing은 합리적”이라고 평가했다.
또한 미드는 “그린스펀식 균형 모델”을 재도입하되, 경기 급랭 시엔 2020년 버전의 완화 규정을 순환적으로 활용하는 이중 구획 방식을 제안했다. 이는 과거 ‘플랜 A(정상 시기)와 플랜 B(비상 시기)’를 명시적으로 구분하지 않았던 연준의 관례에서 탈피하는 시도라는 점에서 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7. 결론
결국 잭슨홀 심포지엄은 연준이 ‘노동시장 우선’이라는 파격 실험을 되돌리면서도, 공식 의무인 최대고용(Mandate • Employment) 추구를 포기하지 않는 모습을 어떻게 설득력 있게 제시하느냐에 초점이 맞춰질 전망이다. 시장은 새로운 문구 하나하나에 베팅을 걸며, 향후 12개월 간 금리·채권·달러 흐름을 재설정할 준비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