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통화시장] 미국 달러화가 주 초반에 이어 보합권에서 움직이며 투자자들이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의 주말 연설을 앞두고 중앙은행의 독립성 훼손 가능성을 주시하고 있다.
2025년 8월 21일, 로이터 통신 보도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연달아 연준 정책에 공개적으로 압박을 가한 데 이어, 이번에는 리사 쿡 이사에게 사퇴를 요구하면서 논란이 재점화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시간·조지아 주에서 보유한 주택담보대출과 관련해 쿡 이사가 이해충돌에 놓여 있다는 동료 정치인의 주장을 근거로 들었다.
쿡 이사는 “사퇴 압박에 굴복할 의사가 없다“고 단호히 밝혔으며,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트럼프 대통령이 쿡 이사를 해임하는 방안을 내부적으로 논의 중이라고 전했다. 이에 대해 TD 증권 아시아·태평양 금리전략 수석인 프라샨트 뉴나하는 “감독·규제 기능에 대한 일시적 의문이 제기될 수 있으나, 단기 통화정책에는 직접적인 영향이 크지 않다“고 분석했다.
달러 및 주요 통화 동향
시장 반응은 제한적이었다. 달러화는 뉴욕장 후반 잠시 하락했으나, 아시아 오전장에서는 방향성을 잡지 못한 채 횡보했다. 엔/달러 환율은 1달러당 147.41엔으로 전일 대비 큰 변화가 없었고, 유로/달러도 1.1642달러에서 안정됐다. 파운드화 역시 1.34535달러 부근을 유지했다.
여섯 가지 주요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보여주는 달러 인덱스(DXY)는 98.301에서 횡보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동안 파월 의장이 금리를 과감히 인하하지 않는다며 수차례 비판해 왔고, 투자자들은 정책 결정 과정의 정치화를 우려해 왔다.
시장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파월 의장 임기가 2025년 5월 종료되면 더 완화적인(비둘기파) 인사를 새 의장으로 지명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이달 초 공석이 된 이사회 자리를 메우기 위해 스티븐 미란 경제자문위원회(CEA) 위원장을 지명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정치개입은 안전통화 프리미엄 훼손”
호주커먼웰스은행(CBA) 크리스티나 클리프턴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연준의 독립성이 흔들린다는 인식이 강해지면 수익률 곡선(단·장기 금리 차)이 가팔라지고, 달러의 안전자산 지위가 희석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쿡 이사가 만약 사임한다면 트럼프 대통령이 금리 인하 쪽에 표를 던질 신규 이사를 추가로 임명할 창구가 열린다” — 크리스티나 클리프턴, CBA
파월의 잭슨홀 연설: 시장의 핵심 변수
투자자 관심은 주말 와이오밍주 잭슨홀에서 열리는 경제정책 심포지엄으로 향하고 있다. 특히 7월 고용지표 부진 이후 9월 16~17일 FOMC에서 금리 인하가 단행될지 여부가 최대 관전 포인트다.
TD 증권의 뉴나하는 “노동시장 냉각이 정책 조정 필요성을 시사한다는 점에서 파월 의장이 비둘기파적 신호를 보낼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의 FedWatch 툴*에 따르면 트레이더들은 9월 25bp(0.25%p) 인하 가능성을 82%로 반영하고 있으며, 연내 누적 50bp 이상의 추가 완화도 가격에 일부 반영돼 있다.
* FedWatch 툴은 선물시장을 기반으로 FOMC 금리 결정 확률을 실시간 계산하는 파생지표다. 일반 투자자에게는 생소할 수 있으나, 글로벌 채권·통화 트레이더들의 필수 참고 지표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MFS 인베스트먼트 매니지먼트의 베누아 앤 전무는 “트럼프 정부의 관세정책이 인플레이션에 미칠 파급효과가 아직 불확실하다”며 과도한 기대는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만약 파월 의장이 뚜렷한 완화 시그널을 주지 않는다면 9월 인하 베팅이 급격히 줄어들 수 있다”고 경고했다.
오세아니아 통화: RBNZ·RBA의 온도차
한편 뉴질랜드달러(NZD)는 전날 1.2% 급락하며 4월 이후 최저치인 0.58205달러에서 약세를 이어갔다. 뉴질랜드 중앙은행(RBNZ)은 시장 예상대로 금리를 내렸지만, 경기 상황에 따라 추가 인하 가능성을 열어둠으로써 하방 압력이 가중됐다.
호주달러(AUD) 역시 0.13% 내려 0.64245달러를 기록, 2주 만의 저점을 맴돌았다. 호주 준비은행(RBA)은 아직 관망 기조를 유지하지만, 중국 경기 둔화 우려와 함께 원자재 가격 조정이 지속되면 추가 완화 압박을 받을 전망이다.
전문가 시각 및 향후 체크포인트
시장 참가자들은 달러 인덱스 98선을 단기 변곡점으로 제시한다. 파월 의장이 시장 기대와 달리 매파적(긴축) 뉘앙스를 보일 경우, 엔·스위스프랑 등 전통적 안전통화로 자금이 이동하면서 달러지수가 당분간 97대까지 밀릴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반대로 9월 인하를 시사하는 명확한 언급이 나온다면, 달러지수는 99선을 시험할 것이며 장·단기 수익률 곡선이 재차 평탄화될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신흥시장 통화에 대한 자금 유입이 일시적으로 탄력받을 수 있어, 원/달러·위안/달러 환율 추이에 대한 모멘텀 분석이 필요하다.
현재로서는 연준 독립성 훼손 우려와 글로벌 성장 불확실성이 맞물리며 변동성이 확대될 소지가 크다. 투자자들은 잭슨홀 회의 이후 발표될 8월 비농업부문 고용, PCE(개인소비지출) 물가 등 핵심 지표에도 주목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달러화는 파월 의장의 시그널과 연준의 정치적 독립성이라는 두 변수에 민감하게 반응할 전망이다. 잭슨홀이 지나면 시장은 곧바로 9월 FOMC와 미 대선 레이스의 영향을 동시에 가격에 반영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