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VS Health가 미국 내 최대 규모의 약국혜택관리(PBM) 사업자임에도 불구하고, 길리어드 사이언스(Gilead Sciences)의 신형 HIV(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 예방 주사제 ‘예즈투고(Yeztugo)’를 당분간 자사 상업용 플랜(Commercial Plans) 약가 목록(formulary)에 추가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2025년 8월 20일, 로이터 통신 보도에 따르면 CVS 대변인 데이비드 휘트랩(David Whitrap)은 전자우편을 통해 “임상적, 재무적, 규제적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내린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한 ‘오바마케어(ACA·Affordable Care Act)’ 기반 플랜에서도 예즈투고를 포함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 이유로는 미보건복지부(HHS) 산하 기관 권고를 따르는 ACA 예방 프로그램 구조를 들었다.
현재 미국 예방서비스 실무그룹(USPSTF)이 권고한 HIV 예방(PrEP·Pre-Exposure Prophylaxis) 약제는 총 세 가지다. 제네릭으로 제공 중인 1일 1정 복용 경구제 트루바다(Truvada), 길리어드의 데스코비(Descovy), 그리고 ViiV 헬스케어의 격월(2개월) 근육주사 아프레투드(Apretude)가 그것이다.
업계 소식통에 따르면, 길리어드와 CVS는 연 2회 투여 방식의 예즈투고 도입 조건을 놓고 여전히 가격 협상을 진행 중이다. 해당 약제의 미국 내 표시가(list price)는 연간 2만 8,000달러(약 3,800만 원)를 웃돈다.
“CVS의 결정은 크나큰 실망이자, 공중보건 향상의 기회를 놓친 것”이라고 국제 에이즈 비영리단체 AVAC의 미첼 워런(Mitchell Warren) 대표는 지적했다. 그는 “예즈투고는 감염 44년 차인 HIV 유행을 종식시키는 전환점이 될 수 있다”면서도, “현재의 높은 가격과 미국 제약 가격 구조의 지속가능성 문제를 방증한다”고 꼬집었다.
PBM과 거대 3사 구조
PBM(Pharmacy Benefit Manager)은 제약사와 소비자 사이 ‘중개자’ 역할을 하며, 고용주와 보험사를 대신해 대량 구매 할인과 보험 적용 범위를 협상한다. 미국 시장에서 CVS 케어마크(CVS Caremark), 유나이티드헬스 그룹의 옵텀RX(OptumRX), 시그나(Cigna) 계열 익스프레스 스크립츠(Express Scripts) 등 3대 PBM이 전체 전문의약품 처방의 약 70%를 통제하고 있다.
유나이티드헬스의 옵텀RX 측은 “예즈투고의 보험 적용 여부를 수 주 내로 검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익스프레스 스크립츠는 로이터의 논평 요청에 답하지 않았다.
반면 길리어드는 언급을 삼갔다. 다만 이달 초 실적 발표 자리에서 “올해 말까지 미국 내 보험사 75%가 예즈투고를 보장하고, 2026년 6월까지 90%로 확대하겠다”는 로드맵을 재확인했다. 다니엘 오데이(Daniel O’Day) CEO는 “미국에서 약값으로 지출되는 1달러 중 절반은 PBM·도매상 등 실질적 치료를 제공하지 않는 중간 단계에서 빠져나간다”고 지적했다.
실제 연방정부 의료보험인 메디케어(65세 이상)와 재향군인부(VA) 프로그램은 이미 예즈투고를 급여 목록에 등재했다. 캘리포니아·뉴욕 등 여러 주(州)의 메디케이드(Medicaid)도 뒤따랐다.
임상 효능과 정책 변수
지난 6월 고위험군 대상으로 FDA 승인을 받은 예즈투고는 대규모 임상에서 감염 예방 효과가 ‘거의 100%’에 달해, HIV 확산 억제에 대한 기대감을 키웠다.
다만 최근 미 연방대법원이 USPSTF에 대한 HHS의 광범위한 감독권을 재확인하자, 일각에서는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Robert F. Kennedy Jr.) 장관 후보자가 취임 시 태스크포스(TF) 구성을 변경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의료계는 “TF 인적 구성 불확실성이 예방 서비스 보험 보장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현재 16인으로 구성된 USPSTF는 과학적 근거와 공청회 결과를 바탕으로, 조기 발견·악화 방지를 위한 예방 서비스를 권고한다. 보험사는 이에 해당하는 서비스를 환자 본인부담금 없이 제공해야 한다. HIV 예방 부문에서는 앞서 언급한 3개 약제만 허용됐으며, 예즈투고는 권고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길리어드 측은 “HIV 감염자 1인당 평생 치료비가 100만 달러를 넘어선다”며, 장기적으로 예방치료가 비용 효율적이라고 강조한다.
용어 설명
PBM은 Pharmacy Benefit Manager의 약자로, 보험사·고용주 대신 제약사와 가격 및 공급 조건을 협상하는 조직이다. 약가 결정 과정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약국과의 네트워크 계약·처방 데이터 관리까지 수행한다.
PrEP(사전노출 예방요법)은 HIV 음성인 고위험군이 약물을 복용하거나 주사해 감염 가능성을 낮추는 전략이다. 지속 복약(Oral)이나 격월·반년마다 접종하는 주사제(LA-CAB, Lenacapavir) 등이 있다.
USPSTF(U.S. Preventive Services Task Force)는 무소속 전문가 16인이 참여해, 근거 기반의 예방의학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연방 자문기구로, 권고 등급에 따라 보험 적용 의무가 달라진다.
전문가 시각
첫째, 주가 측면에서 보면, 예즈투고의 보험 보장 확대는 길리어드 매출 성장을 견인할 잠재력이 크다. 그러나 CVS·옵텀·익스프레스 스크립츠 등 ‘빅3 PBM’ 장벽이 지속될 경우, 단기간 성장세가 제한될 가능성이 있다.
둘째, 정책 리스크도 무시할 수 없다. USPSTF 구성이 변동될 경우, 예방 제품에 대한 보험 의무화 범위가 축소될 여지가 있어, 제약사와 환자단체 모두 적극적인 로비와 데이터 축적이 필요하다.
셋째, 가격 구조상의 지속가능성 문제가 제기된다. 워런 대표의 지적처럼, 현재 연 2만 8,000달러 수준의 고가 주사제가 보편화되려면, 결국 가격 인하 또는 결과 기반(value-based) 계약 같은 새로운 메커니즘 도입이 필요하다.
넷째, 공중보건 관점에서는, 투약 순응도가 높고 투여 횟수가 적은 예즈투고가 HIV 감염자 수를 줄이는 데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실제 효과는 보험 보장 범위와 환자 접근성에 의해 크게 좌우된다.
마지막으로, 투자자 관점에서는 현실적인 가격·커버리지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현금흐름 예측을 재조정해야 한다. PBM 네트워크 협상력과 정책 방향성을 면밀히 모니터링하라는 것이 필자의 조언이다.